[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심원정(心遠亭)과 명연(鳴淵), 묘향사의 ‘유불선 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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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14   |  발행일 2016-10-14 제39면   |  수정 2016-10-14
무심히 지나쳤던 이곳…알고보니 선비들의 무릉도원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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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면 송림사 일주문과 마주하고 있는 영남의 대표 원림 심원정(心遠亭). 2015년 세계기념물기금이 세계의 50대 세계기념물로 지정하면서 학계는 물론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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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사(김양순)가 이름을 새겨 놓을 정도로 명소였던 팔공산의 별천지 명연(鳴淵)은 굿당으로 변질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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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대안사찰로 이목을 끌고 있는 묘향사 대웅전의 후불탱화는 이 시대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화엄사상의 관점에서 수묵담채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韓 첫 세계기념물감시목록 등재 심원정
‘영남판 소쇄원’ 아직 폐가 몰골 아쉬움
묘향사 가다 샛길 계곡 ‘우는 폭포’ 명연
하늘이 숨긴 명승지엔 지금 굿당만 즐비


지난 한글날, 자전거 탄 한 아주머니가 침산교 인근 화성아파트 쪽에서 금호강 자전거길로 좌우를 살펴 보지도 않고 들어오는 걸 보았다. “아주머니, 보고 들어오셔야 합니다” 하고 안전운행을 걱정하며 건넨 말을, 뒤따르던 남편이 곡해해서 듣고는 여성을 무시한다며 다짜고짜 따라와 주먹질에 쌍욕을 해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구나! 대낮에 전혀 뜻밖의 황당무계한 봉변을 당한 나는 해명을 했으나 사태가 진정되지 않았다. 자질구레한 일로 공권력을 부르기도 뭣해서 자구책을 동원해서 상황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살이에서나 자전거길에서나 가장 위험한 사람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돌발상황을 만드는 사람이다. 사고유발자들이다. 보행로나 차로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아찔한 경험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보행자가 주인인 인도라고 보행자의 안전이 보장되진 않는다.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다반사인 현대는 항상 위험사회다. 안전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켜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방향을 바꿀 땐 언제나 먼저 가고자 하는 방향부터 살피고 난 다음 행동하는 여든까지 가는 세 살 버릇을 만들어야 베스트라이더다.

언젠가부터 나는 보행자 중심도로에서 무기 같은 자전거로 갑질을 하지 않으려고 경음기를 달지 않는다. 사람 다니는 길에서는 을의 자세로 느릿느릿한 자세로 다닌다. 갑자기 선회하는 보행자를 만나면 구두경고를 하곤 한다. 자동차의 클랙슨이 인간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교통약자들에게 공포와 불안감을 조성하고 운전하는 인간의 횡포를 조장하는 것처럼, 자전거의 경음기 또한 보행자를 윽박지르기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 것 같아 내린 조치다. 혼용무도(昏庸無道), 한 길을 달리는 자전거는 언제나 인류가 직립보행하던 때의 인간윤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문명이라는 이름의 이기를 떼고 나면 더욱더 인간화된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또한 인간의 비명만큼 훌륭한 경음기도 없으니 말이다.

하늘도 땅도 가을색이다. 가을은 포토바이킹의 메뚜기 한철이다. 어디로 튀어볼까? 갈 곳이 너무 많아 행복한 고민이 낙엽처럼 쌓이누나! 칠곡군 동명면 송림사 명성에 가려 빛을 못 보다가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대구·경북의 낭중지추 문화유산 심원정과 명연, 묘향사를 찾아간다. 들판의 벼처럼 고개 숙인 인간의 자세로 시공을 초월해 보자!

자연을 즐기려면 즐거운 불편을 실천하는 시민들이 하중도의 코스모스처럼 만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팔달교를 넘었다. 팔달교에서 운암역까지 팔거천자전거길은 진척이 없어 천변길을 달렸다.

팔거천자전거길이 본격 시작되는 3호선 칠곡운암역에서 동명교 앞까지 팔거천 북편 자전거길을 이용해서 동명네거리까지 갔다. 팔거천변 삼일자동차운전학원 지나 대우골프연습장 앞에서 징검다리를 건너야 막다른 길과 마주하지 않는다. 팔거천엔 크고 작은 징검다리를 놓아 무동력 통행을 돕고 있다. 수심 낮은 금호강자전거길 구간에 자전거 지름길을 만드는 아이디어로 활용하면 좋을 롤모델이다. 팔거천자전거길은 칠곡중앙대로 동명교까지 미친다. 한티재라이딩 때 이용했던 옛 영남대로인 칠곡중앙대로 대체 자전거도로를 타니 안전 면이나 인체환경 면에서 훨씬 좋았다. 송림저수지 오르막길을 살짝 지나 송림사까지 가는 길도 단축된 느낌이 들었다.

팔공산 서쪽의 일주문 노릇을 하고 있는 송림사는 이 시대의 대세인 미니멀리즘한 5층전탑의 존재감으로 이 일대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블랙홀 구실을 하고 있다. 송림사 일주문 옆 슈퍼와 마주하고 있는 심원정은 문이 걸어 잠겨 있어 폐가처럼 보인다. 도로 위에서는 볼 일도 없으려니와 자전거를 멈추고 서서 겉모습을 본들 건축학과 교수들도 잘 모르는 이곳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으랴.

담양 소쇄원처럼 경북의 대표적인 원림(園林)으로 알려진 심원정은 구한말 영남선비 기헌 조병선과 그의 아들 조수호가 구서천 바위 위에 새긴 집이다. 심원정은 2015년 10월 세계기념물기금(WMF)에 의해 한국 최초로 세계기념물감시목록 50개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면서 살아있음을 알렸다. 조병선은 심원정의 정자 이름을 도연명의 시 음주(飮酒) 20수 가운데 제5수의 ‘심원지자편(心遠地自偏)’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윽이 살면서 그 뜻을 저절로 얻는다’는 뜻이란다.

그는 심원정 건립의 자초지종을 밝힌 수석기(水石記)에서 ‘자연의 지세를 따라 이룩했고 억지로 만들지는 않았다’고 하여 최소한의 인공색을 가미한 ‘비움의 건축’ 원리를 전했다. 특히 실내외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25영(二十五詠)에 이름을 지어, 돌 하나 바위 하나에 뜻을 새겨 생명감을 불어넣은 경물사상은 압권이다.

기헌선생기념사업회는 심원정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기증하여 잠긴 문화재보다는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으로 활용되는 길을 열었다. 망우당의 후손들이 가진 재산을 희사하여 망우공원을 조성한 지혜가 엿보인다. 현재 심원정은 이의 가치를 알아본 학자나 언론인들이 전하는 것처럼 아름답게만 보이진 않았다. 세계기념물 값을 하도록 대구·경북이 뜻을 모아 그 태생적 아름다움을 찾아주려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묘향사 가는 길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우는 폭포 명연(鳴淵)은 촛불암 표시가 있는 곳을 따라 가서 계곡을 따라 가니 신세계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곳에 숨어 있었다. 팔공산로 가좌삼거리에서 기성 전원마을을 지나 묘향사 가는 중간 지점 샛길로 한티재 고개 가는 지름길로 찾아가야 만나게 되는 ‘하늘이 숨겨둔 기이하고 절묘한 승지’(天藏奇絶之勝也)인 명연. 명연 바위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金陽淳’은 무당 이름이 아니라 순조 때의 경상감사 김양순의 이름이다. 김양순은 경상감사를 거쳐 이조참판, 사헌부 대사헌을 지낸 문신이다.

안동김씨 일족과 관련된 일에 남다른 관심이 깊은 서지수집연구가 김부일(전 대구민학회장)은 “김양순을 연구하다가 명연(鳴淵) 관련 서적을 5권이나 모으게 되었다”면서 “이곳이 지금처럼 굿당이 아니라 경상감사가 이 지역 시인묵객들과 어울려 시문을 짓고 풍류를 즐기던 오늘날의 컨벤션센터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는 명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연은 금강산 장안사에서 백천동을 지나 오르다 보면 나타나는 연못 이름을 따서 부른 것으로 보이는데, 물이 소에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인간의 구슬픈 울음소리와 비슷하다 하여 ‘울소’로도 불린다. 인근 구덕리에 세거했던 창녕조씨 일족들을 중심으로 명연 13인회가 활동했다고 한다.

심원정과 이웃한 명연의 존재를 알려준 그는 “창녕조씨의 별옥인 심원정과 명연은 한 덩어리”라면서 “이와 관련된 문집류가 다수 존재하는 만큼 문헌 연구는 물론 문집발간 노력을 해서 성역화 수준의 주변정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인묵객의 명연에서 촛불암의 정한수가 된 명연의 폭포수는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방치하고 있는 관계당국의 직무유기를 질타하는 것처럼 세상 속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명연에서 뒤돌아 나와 산속으로 400~500m 올라가면 마더 테레사가 나오는 후불탱화로 유명한 팔공산 묘향사가 있다. 팔공산둘레길에 포함된 신생의 이 사찰은 대웅전을 비롯한 후불탱화 제작 과정에서 드러난 파격적 불교미학으로 21세기형 대안사찰로 회자되고 있다. 대안불교 조계종이라거나 조계종 소속 대한불교 대안종이라고도 격찬을 받고 있는 묘향사의 주지 혜민스님은 1년에 100일 이상을 예초기를 들고 일을 하며, 나무를 200그루 이상 심고 득명리의 팔공산림을 들꽃 누리로 만들고 있는 대표적 녹승(綠僧)이다.

“나무는 1년에 200그루씩 심고 꽃은 200종류가 넘을 겁니다. 꽃과 나무는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거나 괴롭히지 않는 화엄의 상징이거든요.”

불교에서 화엄(華嚴)이란 잡화엄식(雜華嚴飾)에서 나온 말로, 천지가 찬란한 꽃으로 가득 찬 세계다. 화엄(꽃)은 곧 한번 피었다 지는 꽃이 아니라 영원히 지지 않는 공덕의 꽃을 의미한다. 스님께서는 가로 30㎝, 세로 36㎝ 크기 그림 165개 작품을 모아서 폭 2m, 길이 12m에 달하는 대형벽화로 21세기형 후불탱화를 봉안한 까닭으로 부처님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묘향사를 보리심(깨달은 마음)을 키우는 도량, 마음의 쉼터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창조적 파괴의 미학으로 제작된 21세기형 불교걸작의 탄생 배경은 그러했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니 이교도의 마음에도 친근감이 들었다. 부처님 뒤의 후불탱화에 눈길이 갔다. 풍류만다라하신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예초기 소리가 염불소리를 대신하는 묘향사는 비틀스의 ‘Hey Jude’나 ‘Yesterday’가 불경소리처럼 울려퍼지는 어머니 사찰이기도 하다. 스님께서는 나무 한 그루를 줄 테니 어머니 나무로 잘 가꿔보라고 했다.

이하석 시인 고희기념 ‘천둥의 뿌리’ 출판기념회 참석을 다짐하고 찾아온 심원정과 명연 라이딩은 묘향사에서 “차 한 잔 더 하고 가라”는 스님의 말씀에 이끌려 무상의 시간여행 속으로 빠져 들었다. 대왕재를 넘어 다운힐 코스인 팔공산로를 달리고 달려, 모성애로 가득한 밤으로의 여행을 마쳤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코스

금호강자전거길∼팔거천 자전거길(칠곡 운암역)∼동명네거리∼구덕리 심원정(心遠亭)∼기성전원마을∼기성리 명연(鳴淵)∼득명리 묘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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