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의 산] 화왕산(火旺山·해발 756.6m, 경남 창녕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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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07   |  발행일 2016-10-07 제39면   |  수정 2016-10-07
‘둘레 십리’ 평원 가득 억새…파도를 헤치듯 길을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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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배바위 방향으로 보이는 화왕산성과 억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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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스로 하산하면서 보이는 풍경. 기암괴석이 노송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2009년 화재사고 후 축제 열리지 않아
정상 직전 전망대까진 40분이면 충분

정상에 오르면 북쪽 사면이 기암절벽
마주한 배바위 사이 분지에 억새평원
둘레는 망우당이 倭 대치한 화왕산성

배바위 오르면 산성·억새밭 전체 조망
하산때 팔각정까지 가파른 암릉 ‘조심’


구름인가 싶을 정도로 안개가 짙게 깔렸다. 가을 아침에 안개가 짙으면 기온이 많이 오른다는 신호다.

가까운 거리라 느긋하게 집에서 나섰지만 목적지인 창녕에 도착해서까지 스멀거리는 안개가 걷히지를 않는다. 도성암을 오르는 포장길을 걷다가 막 문을 연 듯 부산한 상가 매점에 들러 커피를 주문했더니 믹스커피밖에 없다며 그냥 한 잔하라고 권한다. 억새축제는 언제인지 여쭈었더니 2009년 화재사고 이후는 축제가 열리지 않는단다.

자욱하던 안개가 흩어지듯 산으로 밀려 올라가고 햇살이 엷게 퍼지며 파란하늘을 드러낸다. 도성암 바로 앞에 작은 다리가 갈림길이다. 오른쪽 화왕산장 방향은 1, 2등산로로 오르는 길이고 다리를 건너 도성암 담장 오른쪽으로 오르면 3등산로다. 도성암에 잠시 들렀다가 되돌아 나와 포장길 끝 담장으로 돌아 오른다. ‘3등산로 정상 1.6㎞’로 적힌 이정표를 따라 오르면 곧 소나무가 빼곡한 삼림욕장 같은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10분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1, 2등산로 갈림길인데, 1등산로로 가로지르다 보면 계곡 사이로 올라 화왕산성 서문으로 오르는 2등산로를 만나게 된다는 설명이다. 중간중간 몇 곳에 벤치를 놓아두어 쉬어가며 여유롭게 올라도 정상 바로 전 전망대까지는 40여분이면 충분하다. 솔밭 사이로 난 길은 정상으로 곧장 가도록 돼있고, 전망대는 능선에 올라 왼쪽으로 40m를 가야 있다.

대부분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데크가 깔린 전망대에 올라서면 창녕읍내와 진행하게 될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놓치면 정상에서부터 하산 직전까지 볕을 피할 그늘이라고는 없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소나무 숲은 억새로 바뀌고, 달아오른 햇살은 여름 한낮같이 따갑다.

정상석과 삼각점이 나란한 정상은 북쪽 사면이 절벽을 이루고 있고, 마주한 배바위 사이에 분지 같은 억새평원이 펼쳐진다. 그 둘레에 화왕산성이 억새밭을 에워싸듯 둘러쳐져 있다.

정상 일대의 분지는 오래전 화산이 폭발하면서 형성되어 분화구였던 곳에 3개의 연못이 생겼다고 하고, 그 가운데 용지가 있다. 용지는 사방으로 석축을 쌓아올려 물을 가두었고, 창녕조씨 시조가 이곳에서 탄생했다는 득성 설화를 간직한 득성비가 있다.

분화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평원에는 둘레만 십리에 이른다는 억새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경계면을 따라 가야시대 때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둘레가 2.7㎞에 달하는 화왕산성이 있다. 천연의 요새인 험준한 기암절벽을 이용해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식산성으로 임진왜란 때 크게 명성을 떨친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의 활동무대였다.

정유재란(1597~98)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는 7만5천명의 대군을 이끌고 지금의 울산지역과 부산, 사천지역으로 쳐들어와 전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화왕산성을 에워쌌다. 성안에서는 곽재우 장군이 창녕, 현풍, 밀양 등 고을의 군사를 이끌고 왜적과 마주하였다. 왜적은 화왕산성을 노리다 함양 황석산성으로 발길을 옮겨간다. 전주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화왕산성보다는 전주와 더 가까운 황석산성 함락이 더 시급하다는 판단이었겠다. 화왕산성에서 7일간 대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황석산성 전투는 군사와 백성 7천여명이 전사하며 대패하였고, 화왕산성에서 소식을 전해들은 군사와 백성은 피울음을 쏟았다고 한다. 그 연유에서인지 화왕산으로 오르는 계곡에 붉은 노을이라는 뜻의 자하곡(紫霞谷)이란 이름이 붙었다.

어릴 때 다니던 시골 초등학교에 작은 도서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즐겨 보던 책은 전쟁과 관련된 책이었다. 그 대표적으로 서애 류성룡 선생의 ‘징비록’은 몇 번이고 읽은 기억이 있다. 패하거나 실수한 것을 바로잡으면 다음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징비록. 역사의 현장. 성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배바위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니 산성과 억새밭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막 피어나기 시작한 억새가 바람에 출렁댄다. 진행할 방향은 산불 감시초소가 보이는 곳. 억새밭 탐방로와는 다르게 바람에 억새가 길을 가린다. 양팔로 헤엄을 치듯 헤치며 길을 더듬는다.

소방무선중계소와 산불감시초소를 차례로 지나고 안부에 내려섰다가 암릉 길로 바뀐다. 건너편 관룡산 능선과 정면 비들재 방향의 바위능선이 용의 비늘을 보는 듯하다. 755m 봉우리에 올라서면 등산로 표시등이 설치되어 있고, 바윗길 방향으로 안내 리본이 몇 개 걸려있다. 주의해야 하는 구간이다. 바위가 노출된 방향은 로프나 시설물이 없어 위험하다. 진행하던 방향, 비들재 방향으로 15m만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1등산로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부터 팔각정까지는 갈림길이 없는 바윗길이다.

가파른 암릉을 내려서다 잠시 돌아본 능선은 화강암의 바위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하다. 저녁 노을이 질 무렵이면 자하곡의 이름처럼 산이 붉게 물들 것 같은 느낌이다. 왼쪽 장군바위 능선과 나란한 바윗길에 유난히 소나무가 많다. 군데군데 송이버섯 채취구역 출입금지 표지도 붙어있다. 한눈팔다가 위험할 수도 있는 구간. 조심조심 팔각정을 지나자 화왕산장 식당 상가를 지나 오전에 올랐던 갈림길 도성암을 지난다.

대구시산악협회 이사·대구등산아카데미 강사 apeloil@hanmail.net


☞ 산행길잡이

자하곡 주차장-(10분)-도성암-(45분)-전망대-(7분)-정상-(20분)-배바위-(10분)-산불감시초소-(10분)-755봉우리 갈림길-(50분)-팔각정-(10분)-도성암 갈림길-(10분)-주차장

가을의 전령사로 불리는 억새가 유명한 화왕산은 정상 일대 억새평원까지 접근성이 좋아 찾는 이가 많은 산이다. 마주한 관룡산과 연결해 종주산행을 해도 하루 산행으로 무리가 없다. 주 등산로는 자하곡 도성암을 중심으로 1, 2, 3 등산로가 인기가 높다. 삼림욕을 하듯 완만한 3코스로 올라 기암절벽의 1코스로 하산하면 약 7㎞로 3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 교통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IC에서 내려 좌회전으로 계속 직진해 오리정네거리, 송현네거리를 차례로 지난다. 교차로에서 300m 간 뒤 오른쪽으로 굽은 도로를 따라 약 200m를 더 가 왼쪽으로 도성암, 화왕산 드라마촬영장으로 진입하면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이 나온다. 창녕IC에서 약 3㎞ 거리다.

☞ 내비게이션

경남 창녕군 창녕읍 말흘리 16-3(자하곡 주차장)

☞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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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자하곡 입구 창화사 부근에 있는 높이 1.37m의 마애여래불은 자연암석을 반원형으로 다듬은 후 돋을새김으로 부처를 새긴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로, 보물 75호로 지정되었다.

창녕박물관과 교동고분군

송현네거리에서 남쪽으로 200m 지점에 자리 잡은 박물관은 토기류, 석기류, 고인돌, 고분석실내부 등이 전시되어 있고, 본관과 계성고분이전복원관 등 야외 전시실이 있다. 현재는 리모델링 공사로 야외 전시장만 둘러볼 수 있고 12월18일 재개관 예정이다.

박물관이 있는 송현리 일대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교리 일대에 사적 514호로 지정된 150여 기의 고분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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