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위대한 것에 대한 자각은 사소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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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03 08:56  |  수정 2016-10-03 08:56  |  발행일 2016-10-03 제18면
[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위대한 것에 대한 자각은 사소함에서…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내가 이렇게 소리친들, 어느 천사가 있어

내 목소리를 들어줄까? 한 천사가 느닷없이

나를 가슴에 끌어안으면, 나보다 강한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텐데/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내는 무서움의 시작일 뿐이므로/

우리 이처럼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모든 천사는 무섭다

나 이러한 심정으로 어두운 흐느낌의 유혹의 소리를

집어 삼키는데, 아, 대체 우리는 그 누구를

필요로 하는가? 천사들도 아니고 인간들도 아니다

영리한 짐승들은 해석된 세계 속에 사는 우리가

마음 편치 않음을 벌써 느끼고 있다/우리에게 산등성이

나무 한 그루 남아 있어 날마다 볼 수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건 어제의 거리와, 우리가 좋아하는

습관의 뒤틀린 맹종, 그것은 남아 떠나지 않았다

오 그리고 밤, 밤, 우주로 가득 찬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파먹어 들어가면, 누구에겐들 밤만이 남지 않으랴

그토록 그리워하던 밤, 쓸쓸한 이의 가슴 앞에 힘겹게 서 있는,

약간의 환멸을 느끼는 밤, 밤은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 쉬울까?

아, 그들은 그저 몸을 합쳐 그들의 운명을 가리고 있구나

너는 아직 그것을 모르는가? 우리가 숨쉬는 공간을 향해

한 아름 네 공허를 던져라/그러면 새들은

더욱 당차게 날개짓하며 넓어진 대기를 느낄지도 모를 일 …

그 모든 건 사명이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완수했는가? 모든 것이

네게 애인을 점지해주는 듯한 기대감에

너는 언제나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는가? (네가 그녀를 어디에 숨겨도, 크고 낯선 생각들은 네 가슴속을 들락거리며 자주 밤마다 네게 머무르는데)

꼭 하고 싶거든, 위대한 사랑의 여인들을 노래하라, 하지만

그들의 유명한 감정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리

네가 시기할 지경인 사람들, 너는 그들이 사랑에

만족한 이들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움을 알았으리라

결코 다함이 없는 칭송을 언제나 새로이 시작하라,

생각하라, 영웅이란 영속하는 법, 몰락까지도 그에겐

존재하기 위한 구실이었음을, 그의 궁극적 탄생이었음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제1비가’ 중에서)



인공적인 문명에 젖어 잊고 있던 자연의 힘을 요즘 많이 느낍니다. 지진에 피해는 없으신지요. 위대한 존재를 잊지 말며 살아있는 모든 것이 필멸(必滅)할 것임을 예언처럼 알리는 이 비가(悲歌)를 릴케는 두이노 성에서 장미 가시에 찔려 얻은 희귀병을 앓으며 썼습니다. 모든 것이 쇠락하여 겸허해지는 가을날입니다. 사각사각 연필을 깎아 무엇이라도 쓰고 싶게 만드는 서늘한 공기가 낡은 방을 휘돌아 나갑니다. 열린 창으로 시지프스가 운명을 견디며 돌을 굴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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