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전어 이야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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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30   |  발행일 2016-09-30 제40면   |  수정 2016-09-30
전어, 여름 회·가을 구이…‘깨 서말’ 고소한 유혹이 시작됐다

전어의 고향은 원래 남해. 그게 서해로 번졌다. 전어의 출발선은 광양시 ‘망덕포구’. 백두대간의 출발지 겸 종착지인 망덕산(일명 ‘망뎅이’) 앞 망덕포구는 550리 섬진강과 맞물린 천혜의 전어밭이다. 망덕포구엔 전국 첫 전어 조형물이 있다. 전어철에는 배 두 척이 선단을 이루고 전어잡이 소리를 하면서 어로현장으로 나간다. 그 소리를 지키는 보존회도 광양시에 있다. 현재 망덕포구에서 10대를 이어 살고 있는 박창오씨. 그는 전국에서 전어 활어회를 처음 시작했다. 사천시 마도, 보성군 율포, 진해 대포 등도 ‘한국 전어의 고향’이다. 망덕포구에서 섬진대교를 건너 19번도로를 따라 해안쪽으로 30분쯤 가면 오른편에 ‘술상전어마을’이 있고 이어 남해 선소마을, 삼천포항, 마산 어시장을 거쳐 진해만으로 오면 전어의 몸집이 튼실해진다.

이 도톰한 전어를 진해 사람들은 ‘떡전어’로 부른다. 그 유래가 흥미롭다. 조선시대 한 관리가 산란기에는 전어를 못 잡도록 하자 이에 항거하는 한 어부를 참하려는 찰나 바다에서 전어떼가 뛰어올라 ‘덕(德)’ 자를 그렸다고 한다. 그곳이 내이포, 지금의 진해 옹천 지역. 그때부터 거기서 잡힌 전어를 ‘덕전어’로 불렀고 그게 떡전어로 변하게 된다. 진해만 전어는 썰었을 때 핏빛이 진한 게 특징이다.

◆ 팔도 전어축제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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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도 다양하게 요리를 해먹을 수 있지만 아직 전국민적으로 인기있는 요리스타일은 구이·회다. 드물게 초장을 듬뿍 끼얹어 ‘통마리회(맨 아래)’를 즐기는 마니아도 있다.

2000년부터 전국이 가을전어에 환장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전국 횟집에서 집 나간 며느리가 좋아하는 전어 현수막이 나붙기 시작한다. 지자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전어축제를 론칭한 탓이다. 서해안의 경우 인천권의 소래포구를 필두로 아래로 내려오면 충남 서천군 홍원항, 남해안권으로 오면 보성군 율포로부터 전남 광양, 경남 하동·남해·사천·마산·진해, 부산까지 전 수역이 전어권이다. 하지만 동해안권은 상대적으로 전어 불모지. 포항에서도 한때 전어가 많이 잡혔는데 신항만방파제가 물길을 막아 전어 명맥이 끊어졌다.


난류성 어종인 전어의 고향은 남해
매년 수온 오르자 서해안서도 잡혀
9월 되면 기름기 많아 회보다 구이

포항 신항만방파제 영향 명맥 끊겨
꼬리가 노랗고 다소 거칠면 자연산
써는 방식에 따라 맛도 달라지는 회
몸통 사선으로 썬 ‘뼈회’가 대중적
구이는 뼈가 살처럼 느껴져야 ‘합격’



경남 마산시와 충남 서천군, 부산시 강서구 명지시장 등이 주도적으로 2000년부터 전어축제를 시작하면서 전어를 관광상품으로 띄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전어는 가을의 전령사는 아니었다. 난류성 전어는 해마다 수온이 오르면서 서해안권에서 잡히기 시작한다. 20여년 전만 해도 서해안에서는 전어를 보기 힘들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전어메카로는 서천군 홍원항이 주목받는다. 남해안권에서는 8월부터 회 맛이 오른다. 9월로 접어들면 기름기가 너무 많아 회보다 구이가 낫다. 남해 전어축제는 서해보다 얼추 한달 정도 빨리 시작한다. 낙동강 하구 부산 서쪽 끝에 있는 ‘명지시장’은 전어축제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개최한 곳 중 하나다. 올해는 8월23일에 열었다. 서해 홍원항은 10월9일까지 축제를 연다.

◆ 재밌는 전어의 생리

자연산 전어는 ‘하루살이’로 불린다. 워낙 성질이 지랄 맞은 탓이다. 그래서 ‘양식 전어’가 투입됐다. 전어 양식산과 자연산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꼬리를 보는 것이다. 깊은 바다에 사는 자연산은 꼬리가 노란빛이고 빗자루처럼 거칠다. 반면 양식장에 갇혀 사는 양식은 수면 가까운 곳에 지내기 때문에 태양빛을 많이 받아 검은색을 띠며 둥글게 잘 정리돼 있다. 대도시에서 파는 작은 전어는 대부분 양식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고수들은 전어를 수조에 넣기 전에 해수의 간을 본다. 너무 짜면 못 살기 때문에 민물을 섞는다. 그래도 자연산은 이틀을 못 버틴다. 양식은 더 오래 산다. 식당주로선 양식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전어는 야행성이다. 배는 새벽에 나간다. 작은 배에서 두어 명이 자망으로 잡는 건 ‘따닥발이 전어’, 큰 배에서 12~15명이 잡는 건 ‘이수구리 전어’라 한다. 따닥발이는 큰 그물로 잡아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배에서 작은 그물로 잡은 다음 하나씩 손으로 떼어낸다. 신선한 데다 스트레스를 덜 받아 맛이 더 좋다.

전어는 평균적으로 만 1년이면 11㎝ 전후, 2년이면 16㎝, 3년이면 18㎝, 6년이면 22㎝ 전후의 크기다. 드물게 30㎝까지 자라기도 한다. 20㎝가 넘는 큰 전어는 떡전어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2년 전후 15㎝짜리, 일본 사람들은 10㎝ 전후 전어를 가장 즐긴다. 한국에선 가을전어, 일본에서는 어린 봄 전어를 최고로 친다. 일본에선 전어회 대신 스시 ‘네타(밥 위에 얹는 재료)’용으로 애용된다.

◆ 초창기엔 푸대접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충청도, 경상도, 함경도에 전어가 많이 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가을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말’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가을에 잡히는 전어의 맛이 일품이며 가격도 비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전어(錢魚)’에서 돈을 발견한다. 하지만 비싼 전어란 말도 한때는 맞았지만 한때는 틀렸다. 전어는 한때 한 ‘바께스’에 5천원 주면 2천원을 거슬러 줄 정도로 쌌다. TV 방송 매체 등에서 먹거리 기행에 전어가 소개된 이후로 가을 대표급 생선으로 등극했다.

어떤 이는 ‘전어(前魚)’로 부르기도 한다. 전어는 절대 뒤로 물러나지 않고 계속 앞으로 헤엄치기 때문이란다. 앞으로 가는 고기 전어, 그 말도 아닌 것 같다. 생선은 뒷걸음질칠 줄 모른다. 전어만 그런 건 아니다. 아무튼.

일본에선 전어를 ‘고노시로’라 하는데 이는 ‘자식 대신’이란 뜻이다. 유래가 있다. 옛날 어떤 부자에게 첩으로 딸을 주게 된 아버지가 관에 전어를 넣어 화장하고 딸이 죽은 것처럼 위장하여 어려움을 면했다는 이야기가 담긴 고노시로가 훗날 전어의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회도 써는 방식에 따라 맛이 사뭇 달라진다. 집집마다 지역마다 다르다. 대중적인 건 뼈회. 뼈가 그대로 든 몸통을 사선으로 썬다. 그럼 단면은 ㅅ자 또는 화살촉, 엽전 모양 등이 된다. 사천쪽에서는 통마리를 즐기는 마니아도 많다. 통마리는 대가리와 내장, 꼬리만 제거해서 몸통째 내는 거다.

광양권의 전어는 전라도와 경상도 전어의 절충형. 육질도 적당하고 기름진 정도도 미디엄 정도다. 전라도권은 경상도권보다 더 두툼하게 썬다. 그래서 광양만 망덕포구 전어는 한때 한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전어 맛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전라도권에서는 전어회 위에 각종 고명이 특별하게 올라간다. 참깨와 참기름이 뿌려진다. 보성군 율포 앞 득량만 전어는 전체적으로 흰색에 가까운 은빛에 등에는 까만 점들이 줄지어 박혀 있다. 푸른빛이 전혀 돌지 않아 경남의 전어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회는 쉽지만 구이는 어렵다. 대도시에 있는 전어구이집은 꼬리나 머리를 검게 태우고 속은 제대로 익히지 않은 채 내놓기 일쑤다. 뼈가 억세진 전어를 구이로 먹긴 하지만 뼈가 딱딱하게 씹힐 정도면 ‘낙제’. 통조림용 꽁치처럼 뼈는 있지만 살처럼 느껴져야 제대로 된 전어구이다. 1년산 작은 초가을 전어라야 이런 상태가 된다. 사천 대포 포구의 ‘미룡자연산횟집’ 정도가 구이 전문이랄 수 있다. 이 밖에 망덕포구의 ‘바다횟집’, 부산 명지시장 내 ‘산수갑산’ 등이 고수의 맛을 유지하고 있어 미식가들이 많이 찾는다. 경상도에서는 전어를 회나 구이로 먹지만 전라도에서는 ‘전어무침’이 빠지지 않는다. 전남 보성 율포 토박이들이 유별나게 즐긴다.

얼마전 달서구 상인동의 자연산 횟집인 ‘정이품’에서 지역에선 드물게 통마리 스타일의 전어회를 맛볼 수 있었다. 이 집은 회 본연의 맛을 위해 곁반찬을 최대한 줄였다. 홍어를 베이스로 전어, 방어, 농어, 숭어, 아나고 등 제철 회를 깐다. 가을에는 다른 집보다 더 빨리 자연산 전어를 삼천포 등지에서 공수해 온다. 올해도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 하순쯤 전어를 냈다. 대구에서 가장 먼저 ‘세꼬시 문화’를 전파한 업소답게 초장을 넉넉하게 올린 통마리 전어회는 생각과 달리 뼈가 억세지 않아 여느 선어회처럼 술술 잘 넘어갔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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