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우뇌형 야구 해설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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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6 07:52  |  수정 2016-09-26 07:52  |  발행일 2016-09-26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우뇌형 야구 해설가의 죽음

매년 9월10일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World Suicide Prevention Day)입니다. 이날은 2003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주도로 제정되었는데, 전세계적으로 많은 행사를 통해 우리 생명의 소중함과 날로 증가하고 있는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한국은 2003년 이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12년 연속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던 해설가 하일성씨의 자살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슬픔을 주었습니다. 9월8일 자살을 했다는 보도를 보고, 혹시라도 이틀 뒤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함께 보냈다면 다시 한번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하일성 해설가는 가끔 중계 중에 야구팀이나 선수들의 이름도 엉뚱하게 말하고, 자신이 커브를 던질 타이밍이라고 해설했는데 투수가 계속 직구를 던지면 “이 투수 오늘 계속 역으로 가나요”라고 하기도 하고, 경기 결과가 자신의 예측과 반대로 나오면 “정말 야구 몰라요”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어쩌면 조금은 허세가 있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해설로 야구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허구연 해설가는 예리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한 해설로 유명한데, 이 두 해설가의 야구중계를 듣는 재미는 실제 경기를 보는 것보다 흥미진진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타자가 친 타구가 오른쪽에 치우쳐 수비하던 중견수에게 잡히는 상황이 나오면, 허구연 해설가는 “이번 타자는 주로 밀어치는 타자로 타구의 70%를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로 보냈거든요. 중견수가 이를 미리 간파하고 조금 오른쪽으로 수비 위치를 변경했던 것이 주효했네요, 참 영리한 선수입니다”라고 설명하는데, 하일성 해설가는 “아, 중요할 때 중견수가 하나 해주네요, 저런 플레이는 지쳐있는 투수에게 엄청난 힘을 주는 것이거든요. 파인 플레이예요”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두 해설가는 가히 좌뇌형 해설가와 우뇌형 해설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데이터와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예리한 해설을 하는 허구연 해설가는 우리 좌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야구중계를 보는 우리와 함께 흥분하면서 공감대를 끌어내는 하일성 해설가는 감성을 담당하는 우리 우뇌를 닮았습니다. 두 해설가가 있었기에 우리는 좌뇌와 우뇌가 모두 즐거운 야구중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역사가 오래되어 많은 기록이 있는 메이저리그 중계 덕에 데이터 위주의 해설자가 넘쳐나는 가운데, 이렇게 따뜻하고 감성적인 해설을 해주던 하일성씨와 같은 해설가가 그립고, 그래서 그의 자살은 더 안타깝습니다.

자살은 우리 마음의 감기라고도 하는 우울증에 의한 경우가 많습니다. 자살사망자의 60~70%는 우울증으로 인한 결과라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는 100만명에 이르며,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도 20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는 사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간 활발한 뇌연구를 통해 뇌 속의 도파민이나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우울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경우에 따라서 우울증은 이들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특정 약물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살 예방의 첫걸음은 우울증에 대한 치료입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우울증 치료에 필요한 정신·심리 상담 치료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치료를 권유하면 자신을 정신력이 약한 사람으로 취급한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살 예방의 날을 기회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증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회에서는 이런 이유로 치료받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편견도 갖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아가길 기대해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과 어이없이 헤어지는 일이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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