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플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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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09   |  발행일 2016-09-09 제43면   |  수정 2016-09-09
실화 각색한 음악버전 ‘벌거숭이 임금님’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플로렌스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플로렌스

내 주변엔 비전공자이지만 파바로티를 한 방에 보낼 엄청난 가창력의 하와이맨(?)과 어느 곡이든 전천후 기타반주가 가능한 절대음감의 퇴직영어교사와 오합지졸 중창단에 신의 묘수를 불어넣는 탁월한 지휘자가 계신다. 이분들을 보노라면 음악이란 타고난 재능과 이를 갈무리하는 열정의 오묘한 화합물이란 사실을 항상 되새기게 된다.

할리우드의 연기 여신 메릴 스트립과 영국의 로맨틱 스타 휴 그랜트가 주연하고 스티븐 프리어스가 연출한 ‘플로렌스’는 재능이 뒷받침되지 않은 돈키호테적 열정만으론 완성될 수 없는 음악의 세계를 실화에서 비롯된 풍자적 에피소드로 흥미롭게 해부한 코믹드라마다.

막강재력의 음치여인을 타이틀롤(title role; 주역)로 내세운 음악버전 ‘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는 이 영화는 패러독스적 유머를 통해 재미와 교훈을 선사한다. 못다 피운 피아니스트의 꿈을 ‘성악가 되기’로 상쇄시키고자 했던 상속녀 플로렌스 포스터 제킨스(1868~1944)의 실화를 각색한 영화의 플롯은 관객에게 황당한 실소에서 참을 수 없는 폭소를 거쳐 종국엔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부모에게 상속받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회원제 사교클럽 ‘베르디’를 설립해 매니저이자 남편인 싱클레어 베이필드(휴 그랜트)와 함께 운영하던 플로렌스(메릴 스트립)는 레스토랑 연주로 연명하던 젊은 피아니스트 멕문 코스메(사이먼 헬버그)를 전속 반주자로 영입하곤 본격 성악가의 길로 나선다. 이 과정엔 음치인 그녀를 호도해 개인적 잇속을 챙기는 레슨교수 카를로(메트로폴리탄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당대의 저명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비양심적 조력(?)도 한몫하지만 아내의 꿈을 일관되게 배려하는 베이필드의 충정과, 플로렌스와의 잘못된 만남에 어리둥절해 하다가 점점 그녀와 일체화되어가는 멕문의 파트너십도 주효하다. 리츠칼튼에서의 소규모 연주회와 음반 발행을 거쳐 마침내 클래식 연주자의 꿈의 무대인 카네기홀에 서게 되는 대형사고(?)를 치게 된 플로렌스는 절대음치인 그녀의 노래에 대한 조롱 어린 호기심에서 모인 숱한 관객 앞에서 혼신의 열창을 해대곤 몸져눕게 된다.

“비록 난 못했지만 안 하진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며 병석에서 되뇌는 플로렌스의 음악적 열정은 서자 출신의 영국 이민 배우 베이필드를 남편으로 품은 그녀의 따뜻한 인간애와도 상통한다. 플로렌스가 피아니스트 시절을 그리며 쇼팽의 마단조를 치는 사이, 그녀의 마비된 왼손을 대신해 화음반주를 넣는 멕문을 연기한 사이먼 헬버그의 ‘황당한 상황을 교묘히 숨기면서도 우수를 드리운’ 표정은 압권이다. 오전 2시 상영관을 나서니 새벽비가 아직 세차다. 스트립이 너무 늙어 안타까웠다는 옆 관객의 넋두리에 가슴이 저려왔다.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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