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올레’ 은동役 오만석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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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02   |  발행일 2016-09-02 제43면   |  수정 2016-09-02
“군대가 내겐 훌륭한 연기 선생님…‘죽기살기로 해보자’ 결심도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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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의 은동은 현재의 오만석을 꽤 현실적으로 반영한다. 케이블 방송국의 메인 아나운서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은동처럼 오만석 역시 땀과 열정으로 다져진 안정적인 연기와 노래 실력으로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굳혀 나가고 있다. 특히 분수를 넘지 않는 자기 확신과 믿음은 늘 한결같은 배우로 그를 기억하게 만든다. 어떤 배역이든 꼭 맞는 부속처럼 자신을 위치시키고, 여러 감정을 담아내는 듯한 호소력 짙은 눈과 목소리는 종종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오만석의 강력한 무기로 작용했다.

그런 그가 극중 은동처럼 현실의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뮤지컬, 드라마, 예능, 연극 그리고 영화까지 데뷔 후 쉴 틈 없이 달려온 그로서는 사실 한번쯤은 맞닥뜨려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만 하다 끝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감하게 내려놓는 것도 엄청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과연 내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게 된다.” 그런 고민이 많았을 때 접한 시나리오가 ‘올레’다. “‘올레’는 어느 정도 꿈을 갖고 노력을 해왔고, 진행 과정 속에 있다가 중간의 나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를 좀 더 깊게 고민할 수 있는 영화였다. 나를 돌아보고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뮤지컬·드라마·연극·예능 종횡무진
‘아재판 제주 꽃청춘’ 5년만에 스크린
박희순·신하균과 세 친구 일탈 그려

“오랜만에 대학MT 온 듯 즐기며 촬영
이참에 제주서 살 생각으로 집도 알아봐
막걸리 맛있어 촬영 끝나면 매일 만취

애매한 외모·재능에 한예종 입학후 방황
군대서 자유로운 감정표출 소중함 절감
복학후 미친듯 연기연습 뮤지컬 주연賞도”



‘올레’는 대학 선배 부친의 부고 소식에 제주도로 모인 세 친구의 4박5일간의 일탈을 그린다. 은동은 13년 동안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수탁(박희순), 희망퇴직 대상자가 된 대기업 과장 중필(신하균)과 함께 제주도에서의 낭만을 꿈꾼다. 사실 은동 역시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 문드러져버린 속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 퇴직을 결심했다. 이렇듯 어딘가 결핍 있는 세 남자의 현실은 고스란히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다. 하지만 ‘올레’ 덕분에 홀가분한 기분과 자유를 만끽하고 돌아왔다는 그다. “관객에게도 그 기운을 전해주고 싶다”며 한층 밝은 표정으로 나타난 오만석과 오랜만에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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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5년만이지만 그동안 뮤지컬, 드라마, 연극, 예능에 출연하며 바쁘게 지내왔다. 극중 은동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땐 없었나.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마침 ‘올레’의 배경이 제주도라 모처럼 휴식을 취하는 기분으로 즐겁고 편안하게 촬영했다. 그렇게 몇 달 있다보니 떠나기가 싫더라. 아예 이참에 제주도에 내려와 살 생각으로 지인들을 통해 집까지 알아봤는데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웃음)

▶이번 작품이 힐링의 기회도 됐을 것 같다.

“정말 그랬다. 바쁘다보니 여행을 가는 건 고사하고 친구들과 사적으로 만날 시간도 없다. 진짜 친한 (이)선균이와도 가끔 통화로 안부만 전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촬영은 내게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희순형과 하균씨와는 제주도에 함께 놀러온 친구처럼 재밌게 지냈다. 그래서 촬영하면서도 일하러 온 건지 힐링을 받으러 온 건지 헷갈릴 때도 많았다. 아무튼 오랜만에 대학 MT 온 느낌을 만끽했다.”

▶채두병 감독은 당신이 술 값을 잘 내서 좋았다고 하던데.

“반드시 고쳐야 할 술 버릇이다.”(웃음)

▶극중 기타 연주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연주한 건가.

“그렇다. 극중에 삽입될 곡을 따로 배워서 연습했다. 특히 하균씨는 현란한 개인기를 보여주는 아르페지오 주법을 완벽히 마스터 했다. 그런데 많은 부분이 편집돼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클 것 같다. 랩과 반주하는 장면 대부분 우리가 소화했다.”

▶이번 촬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뭔가.

“막걸리가 너무 맛있었다. 아마도 모두가 공감할 거다. 촬영이 끝나면 거의 매일 막걸리를 마셨는데 공기가 좋으니까 아무리 많이 마셔도 다음 날 숙취가 생기지 않았다. 우리가 하도 많이 마시니까 막걸리 협찬을 받은 줄 알더라.”(웃음)

▶극 중 세 친구의 나이가 서른 아홉으로 설정돼 있다. 마흔을 앞둔 그 때를 떠올려 본다면.

“남자들이 보통 40대에 접어들면 많은 생각들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30대 때 생각이 많았다. 오히려 40대가 된 지금은 나를 편히 받아들이는 것 같다. 30대 때는 정말 생각과 고민이 많았다. 내가 잘 살고 있는건지,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지, 미래의 내 모습은 어떨지 등 삶의 본질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그런데 마흔살을 넘기고 나니 별다른 생각이 없어졌다. 최소한 뭘 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은 덜하게 되는 것 같다.”

▶일탈할 기회가 생긴다면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건 뭔가.

“글쎄. 일탈까지는 아니고 내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해 모든 것을 접고 공부를 하기 위해 훌쩍 떠날 것 같다. 평소 연출과 극작, 작곡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공부해도 되지만 모든 것을 다 비우고 새롭게 출발한다는 마음을 가지려면 왠지 떠나야 할 것 같다. 아무튼 할 수 있는 것,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싶다.”

▶연기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학창시절 막연히 ‘연기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맞다. 초등학교 때 ‘토끼의 재판’이라는 희곡을 읽는데 선생님이 너무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부산에 살 때였는데 나중에는 자료를 남겨야 한다면서 부산 교육청에 가서 녹음도 했다. 그때도 녹음실 엔지니어 아저씨들이 ‘잘하네, 잘하네’ 연신 칭찬을 하는 거다. 어린 나이였지만 칭찬을 받다 보니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자신감이 생겼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교회 성극과 고등학교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연기와 꾸준히 연을 이어갔는데, 하다보니 적성에도 맞고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이후 한예종에 입학했다.”

▶당신의 정확한 발성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남다른 트레이닝의 결과라고 하던데.

“학교 다닐 때 그쪽 공부를 좀 했다. 따로 음성학 공부를 했고 대본을 받으면 국어사전과 표준발음사전을 보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파고 들었다. 그러다보니 늘 국어사전을 끼고 다녔다. 궁금한 게 있으면 펴보고 이게 장음인지 단음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직성이 풀렸다. 유난을 떤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뭐 그럴 때 있잖나.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 배우들이 다들 완벽한 표준발음을 구사하는 것처럼 배우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사극을 할 때 선배님들이 ‘제대로 알고 하네’라며 칭찬을 해주면 그게 되게 뿌듯하더라.”

▶뮤지컬 배우로서의 존재감도 높은 편이다. 그 가능성은 언제 알게 됐나.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뮤지컬을 보러 다녔다. 물론 보는 건 좋아했지만 내가 뮤지컬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다만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학기 중에는 강의실에 혼자 남아 매일 두세 시간씩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서 실력이 좀 늘었는지, 한번은 연극 쫑파티 때 노래 부를 기회가 생겨서 했다. 그때 다들 뮤지컬을 해보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시작은 했지만 솔직히 내가 노래를 잘한다고는 생각 안한다. 그냥 전달을 좀 잘하는 편이라서 노랫말이 잘 들린다는 얘기는 듣는다. 이것도 발음 공부 덕일 수 있는데 나름 나만의 무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듣고 보니 열정과 노력이 지금의 당신을 만든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자신감이 넘쳤다. 막연하게 잘할 것 같았고, 실제로 공부도 잘한 편이라서 한예종도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다. 그런데 들어가고 나서는 바로 바닥을 쳤다. 자신감 있게 들어갔지만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알게 됐다. 생긴 것도, 키도, 재능도 모든 게 애매했다. 남들보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2학년 때는 방황을 많이 했다. 이런 실력과 상태로 어떻게 들어왔지 자조하면서 매일 술을 먹었다.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2학년 2학기 때 학사경고를 받았다. 우리 학교는 학점이 2.6 이하면 학사경고인데 난 2.58을 받았다. 세 번 학사 경고면 자동 퇴학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연기전공 과목에서 D를 받으면서 크게 좌절했다. 그래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힘들게 들어간 학교라 쉽게 포기할 순 없었다. 죽기 살기로 한 번만 더 해보고, 또 안되면 그때 그만두자는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군대는 규율과 틀을 준수해야 하는 생활이다. 그런 생활을 하다보니 자유롭게 학교에 다녔던 게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학교에선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다면, 군대에선 무조건 참고 감정을 억누르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2년을 지내다가 복학하니 새로운 세상이더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미친듯이 연기 연습을 했고 그 과정에서 울컥한 무언가가 내면 밑바닥에서 올라왔다. 연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다.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집에도 안가고 연습실에 혼자 남아 벽치고 땅치고 울다가 웃다가 별 짓을 다했다. 국어사전을 옆에 끼고 맨발로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녀 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군대가 나에겐 훌륭한 연기 선생님이었다. 그때 다시 결심했다. 10년만 죽기살기로 해보자고. 그 10년째 되던 해가 2005년이었는데 뮤지컬 ‘헤드윅’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나 드라마보단 뮤지컬이나 연극 활동에 주력하는 느낌인데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특별히 무대를 선호하는 건 아니다. 스케줄의 문제일 수 있는데 공연은 최소 6개월에서 1년 전에 대관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배우들 캐스팅을 미리 정해야 한다. 때문에 공연 스케줄을 먼저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가능하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병행하는 식으로 조율을 해왔는데 사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지금도 일주일 내내 공연과 학교 수업, 방송출연 등으로 스케줄이 꽉 차있다. 최근 종영한 OCN ‘38사기동대’도 일주일에 하루밖에 촬영을 못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촬영했다. 그래서 뮤지컬 ‘그날들’이 끝나면 당분간 좀 쉴 생각이다. 일부러 이후 스케줄도 안 잡고 있다. 쉬면서 운동도 하고 여행도 갈 생각인데 제주도는 꼭 다시 가보고 싶다. 막걸리도 마실 겸.”(웃음)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김현수 프리랜서 dada24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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