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규홍의 시시콜콜 팝컬처] 튜닝의 시대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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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6   |  발행일 2016-08-26 제40면   |  수정 2016-08-26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것’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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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차 튜닝 사례

각자 취향 온전히 못 누리는 소비자들
뭔가 살짝 자기식으로 고쳐 쓰는 튜닝
‘주는 대로 받아쓰기 싫다’ 반항의 산물

서로 어색한 것 하나로 묶는 믹스 매치
원래 형태 못 알아볼 수준 ‘마개조’까지
이젠 튜닝 수준 넘어 온갖 변종 대유행


지난 회에서 못다 했던 사이다 이야기 하나. 대학에 와서 처음 접했던 술이 ‘막사’다. 다들 잘 알겠지만, 이건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은 학사주점의 메뉴였다. 1학년 신입생 시절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할 거라곤 예상 못했던 ‘A학점’ 술집에서 마신 막사는 혀끝부터 목넘김까지 그렇게 맛있는 술이 또 없었다. 누가 처음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막걸리와 사이다의 기발한 조합은 술과 토닉워터 식의 브랜딩처럼 정식화되어 있던 문화였다. 한동안 외면 받던 막걸리가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젊은 세대 사이에 복권되었지만, 예전 막사의 인기까지 되돌아오진 않았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막걸리와 사이다의 조합이 가져다주는 맛과 재미가 이것 말고도 숱하게 널린 탓도 있다.

요즘 많은 사람은 점점 자신만이 즐기는 변형(transform)을 찾고 또 뽐내는 유행에 빠져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졸업 후 선택한 자기 일에 제대로 써먹는 부분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 했던 공부야 대학 진학에 맞춰진 게 사실이라 치고, 대학에서 전공한 지식이 현장에서 어디까지 통할까. 말이 살짝 옆으로 비켜나긴 했는데, 대학에서 배운 공부보다 그 나이 즈음에 학교 밖에서 배운 것들이 더 많다는 말이다. 술 섞는 법 말고도 넥타이 잘 매는 법, 자동차 운전, 화장하는 기술, 길흉사에 갖추는 예의, 또 뭐가 있나. 아, 남들에게 젠 채 할 수 있는 고상한 취미 같은 것까지 아우르는 사회화 과정을 겪는다.

그렇지만 아무리 산뜻하고 쓸모 있는 지식이나 물건이라도 자신만이 독점해서 만들거나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척 놀랜드(톰 행크스 분)조차도 무인도에서 필요한 도구를 주변에 굴러다니는 것들로 엮어서 쓰지 않나. 뭐 그처럼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뭔가를 살짝 고쳐 자기 식으로 쓰는 일에 묘한 멋이 있긴 하다. 그래서 튜닝이라는 말이 일찌감치 퍼졌고, 이제는 튜닝의 수준을 넘어서 온갖 변종이 대중문화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생각나는 걸 차례대로 하나씩 들춰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튜닝이란 것부터 다시 짚어보면, 여기에 담긴 핵심 코드는 반항이다. 주는 대로 받아쓰기 싫다는 거다. 유연 전문화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설명되는 포스트 포디즘 시대의 소비자인 우리들도 각자 취향을 온전히 누릴 수는 없다. 틀에 박혀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을 자기 입맛대로 고쳐 쓰는 사람이 늘어나고, 이들은 정석보다 편법을 더 반긴다. 여기에는 튜닝하면 떠오르는 자동차 개조, 탈옥이란 이름이 붙은 아이폰 개조, 게임 능력치조작 목적으로 만든 파워업키트 같은 것이 있다. 당연히 여기엔 감시자나 처벌을 내리는 쪽이 존재한다. 그래서 소비자 개인의 취향과 시장 공동체의 질서 사이에 팽팽한 대립이 튜닝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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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닝과 조금 다른 차원에서 시도되는 믹스 매치(mix match)도 있다. 이건 기성품이 가진 특질을 건드리지 않는 대신에, 서로 어울리기에 어색한 것들을 하나로 묶는 놀이다. 그래서 여기엔 다른 누군가의 간섭이 벌어지지 않고 오히려 믹스 매치를 권하는 마케팅이 음험하게 벌어지기도 한다. 이 방면으로는 나도 어느 경지에 막 들어선 분야가 있으니, 양복에 스니커즈 운동화를 매칭하는 패션이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면 부끄러운 고백과 허세 같은 자랑이 뒤섞여 이 지면을 다 채워도 모자란다. 다 됐고, 사실 이것도 무턱대고 입고 신으면 본태가 안 살아난다. 뭣보다 바지 밑단 길이와 통 넓이, 운동화 색깔과 종류 같은 걸 세심히 골라야하는 과정이 까다롭다. 1~2㎝가 전체 모양새를 결정한다. 내가 맵시 있게 입진 못해도 딴 사람 입은 것을 볼 줄은 안다. 그렇지, 이게 흔히 말하는 감식안이다.

상당히 높은 취향 감식안을 드러내는 통로로 현대미술과 오디오에 관한 취미가 있다. 내가 볼 때 현대미술은, 대표적으로 추상단색화나 개념미술은 적지 않은 작가가 이전에 있던 도상을 짜깁기하고서 턱하니 드러내놓는다. 그 미술가들은 자기 입으로, 또 평론가들의 글을 빌려 그런 믹스 매치를 자찬한다. 보고 있으면 우스운데, 이 내용은 지금 내가 미술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관계로 패스.

현대미술 컬렉션만큼이나 부러움과 시기 경멸을 동시에 받는 믹스 매치가 또 있으니 그건 오디오 조합이다. 물론 여기도 전기전자 계통의 지식이 있는 개인이라면 자체적인 튜닝이 가능하다. 오디오의 믹스 매치는 당연한 진리처럼 이 바닥에 퍼진 것도 사실인데, 내가 꾸며 놓은 오라 인티그레이션 앰프와 필립스 CDP와 셀레스천 스피커의 매칭도 실은 막귀를 가진 나로서는 다른 권위자들의 안내를 따른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런 종류의 반항은 어여쁘게 여긴다. 프로슈머(생산자와 소비자의 합성어)란 말의 등장 배경도 여기에 있지 않나. 이를테면 가구류를 반 조립 상태로 팔고선 사간 사람이 완성하는 절차 또한 소비자의 취향 존중이란 명분보다 노동과정에 들어갈 조립과 설치 인력을 줄이는 취지를 숨기는 의도가 더 짙다.

튜닝과 믹스 매치를 거치면 드디어 이 분야의 끝판왕을 만나게 된다. 이걸 ‘마개조(魔改造)’라고 불러보자. 영화 ‘매드맥스’에 나왔던 괴상한 형태의 탈 것들을 생각하면 된다. 원래 가졌던 형태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바꾼 것을 재미삼아 부르는 마개조는 ‘오타쿠’ 사이에서 생긴 말이다. 교과서 제목을 긁어 지워서 엉뚱한 말을 만들어내는 장난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건담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보다보면 지구 군이 상대편의 부서진 모빌 슈트(로봇 대신 이렇게 부르더라)를 모아서 이쪽 동체와 장비를 갖다 붙여 쓰는 대목이 있다. 만화 속 설정이라서 황당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쓰는 무기류 가운데 이런 마개조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머리, 몸통, 내부 사지를 이어 붙인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의 모습까지 연상되는 무기들을 확인하고 싶다면 밀덕(밀리터리 덕후)과 관련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되겠다.

이 글도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마개조에 가까운 논리의 이어붙임으로 빠져들었다. 원래는 대학 지식과 취향의 문제를 버무려 융복합과 같은 말을 도마 위에 올리려고 했는데, 이건 다음에(반성합니다).

P&B 아트센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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