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두 엄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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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08 08:01  |  수정 2016-08-08 08:01  |  발행일 2016-08-08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두 엄마 이야기

#1 “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강남으로 이사했습니다. 요즘 대치동 엄마들과 어울려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과고와 외고를 비롯하여 유명 특목고, 자사고에 가는 아이들은 초등 6학년 때까지 고1 과정 수학을 끝내야 합니다. 영어 유치원을 거쳐 초등 시절에 해리포터 영어 원문 정도는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논술과 철학까지 공부해야 합니다. 엄마는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 있는 시간에 만나 차를 마시고 정보도 교환하면 되지만, 아이들끼리 그룹을 지어 뭘 하려고 하면 시간 맞추기가 너무 힘듭니다. 최근 아이들끼리 밤 10시30분에 만나 무엇을 하려고 했는데, 한 명이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어 자정 넘어 모인 일까지 있습니다. 대치, 도곡, 서초동 등 강남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앰뷸런스 소리가 날 때마다 ‘오늘은 또 어느 집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났나’ 하며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올해 서울 대치동으로 이사 간 어느 엄마의 이야기다.

#2 “TV, 컴퓨터, 장난감이 없어도 아이들은 너무 좋아합니다. 학원에 안 가도 되니 아이들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한나절 내내 걷기도 하고, 해질 때까지 하늘과 바다를 실컷 보며 모래사장에서 노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요.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노을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많이 돌아다니고 나면 그 다음 날은 늦잠을 자고 뒹굴다가 간단하게 먹고는 도서관으로 갑니다. 아이들은 단숨에 2권 정도는 읽습니다. 그 다음 날은 ‘그림 같이 아름다운 오름을 오르거나 올레길을 걷고, 미술관에서 한 나절을 보내기도 합니다. 스쳐 지나가며 사진이나 찍는 관광객으로서가 아니고 느리게 걷고, 느리게 행동하고, 느리게 생각하며 아이들과 함께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어제는 애들 아빠가 휴가를 내어 제주에 합류한 기념으로 흑돼지 고기를 먹으러 갔는데, 예산보다 너무 많이 먹어 사흘은 좀 아껴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꿈같은 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한 달 동안 제주 살이를 하고 있는 질녀가 카톡으로 보내온 글이다.

부모님 세대는 수학, 과학 문제를 많이, 빨리, 정확하게 풀고, 모든 교과 내용을 많이 암기하는 학생이 명문대를 가고 좋은 직장을 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컴퓨터가 해결해 주고, 잡다한 정보는 암기하지 않아도 검색하면 언제라도 찾아볼 수 있다. 기본적인 계산 능력과 암기력 등은 앞으로도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이제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협동심, 예민한 감수성,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질적인 정보를 연결하고 엮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의력이 생존을 위한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네 계좌로 돈 조금 보냈다. 아이들에게 흑돼지 고기 한두 번 더 사주어라. 이 시간들이 너나 아이들에게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너 참 잘 산다.”

질녀에게 카톡으로 몇 줄 적어 보내고, 이어서 루소의 말도 한 마디 더 보탰다. “자연을 보라, 자연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가라. 자연은 쉼 없이 아이를 단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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