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물 - 이 세계] 청도 온누리국악예술단 구승희 단장

  •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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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09  |  수정 2016-07-09 07:38  |  발행일 2016-07-09 제8면
22년 경력의 31세 단장 “국악 대안학교 만들고 싶어”
[토요인물 - 이 세계] 청도 온누리국악예술단 구승희 단장
구승희 단장이 청도 온누리국악예술단 전수관에서 아쟁을 연주하고 있다.
[토요인물 - 이 세계] 청도 온누리국악예술단 구승희 단장

아버지가 만든 사물놀이패
20대 중반에 단장직 떠안아
터키 경주문화엑스포 참여
가장 한국적 공연으로 호평
연말 사회적 기업 신청계획


갓 서른을 넘긴 구승희씨(여·31·아쟁 전공)는 베테랑 국악 연주자다. 국악에 입문한 지 올해로 22년. 14명의 단원을 둔 온누리국악예술단장이기도 한 그의 짧지 않은 국악인생을 들여다봤다.

◆청도 온누리국악예술단을 아시나요

온누리국악예술단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구 단장이 초등학교 4~5학년 때였다. 초등생으로 구성된 국악단이 1996년 대구경북사물놀이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고 이듬해 남원에서 열린 전국 사물놀이경연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대회를 휩쓸었던 것.

국악단이 20여년의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당당히 다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13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다. 당시 청도군의 홍보공연팀 자격으로 참가해 가장 한국적인 공연을 펼쳐 현지 이스탄불에서 찬사와 호평을 받은 것이다. 폐막식 전야제 공연자로 공식 초청돼 ‘한국의 소리’를 세계에 알렸다.

국악단 창단과 구 단장의 국악 입문 계기는 조금 극적이다. 대구에서 태어난 구 단장은 여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처음 청도에 왔다. 국악을 접하게 된 건 순탄치 않은 가정사 때문이다. 구 단장이 초등 3학년 시절 국악에 문외한이던 아버지(구상본씨·온누리국악단 초대 단장)가 3남매(성(姓)이 다른 오빠와 여동생이 있다) 간의 화합을 위해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찾던 중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 바로 사물놀이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가족 사물놀이패가 온누리국악단의 출발이었다.

가족 사물놀이패로 시작한 온누리국악단은 이후 조금씩 입소문이 났고, 당시 지역의 결손가정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외연이 확대됐다. 이들은 폐교된 유등초등에 둥지를 틀고 동고동락했다. 사물놀이에서부터 상모 과정, 관현악기, 무용, 판소리 등을 차례로 배웠고 국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전문 국악연주자로 성장했다.

◆20대에 국악단을 떠맡게 됐습니다

하지만 2006년 예기치 못한 시련이 닥쳤다. 국악단을 창단하고 이끌어오던 구 단장의 부친이 가정사 때문에 갑작스럽게 단장직을 내려놓은 것.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구 단장은 모든 걸 떠안아야 했다.

혼자 국악단에 남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구 단장은 할 줄 아는 것은 악기 연주뿐이어서 처음에는 강습에만 몰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학업도 일시 중단하며 5~6년간을 방황하던 사이 국악단원들도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났다. 하지만 창단 때부터 동고동락해온 오빠 임형석씨(피리)와 여동생 임정아씨(가야금), 그리고 동갑내기 친구 박현진씨(대금)가 그의 버팀목이자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대학시절 당시 저희보다 실력이 부족한 국악인도 나름의 활동을 하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온누리국악단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고 함께 뜻을 모았습니다.”

국악단을 추스르고 이듬해인 2012년 청도에서 연 정기연주회는 이 같은 시련을 이겨내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무대가 됐다. 북을 소재로 7명이 출연하는 창작 작품인 ‘천년의 소리(20분 공연작)’ 등 이들의 공연은 궂은 날씨에도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

“공연장은 이내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단원들도 모두 울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도 힘에 겨웠지만 온누리국악단이 아직 살아있다는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객석에 계신 분들도 함께 많이 울고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국악 통한 대안학교 만들고 싶어요

재기에 성공한 온누리국악단이지만 완전히 홀로서기를 위해선 여느 예술단체와 마찬가지로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한 달에 5회 꼴로 초청받아 공연을 나가지만 단원의 생계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후원회가 결성돼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구 단장은 “단원들도 방과후 교실 강사로 뛰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라며 “최근 정부의 각종 공모사업은 물론 사회적기업 같은 방식에도 조금씩 눈을 뜨게 됐다. 올해 경북도사회적기업육성사업에 선정돼 다행”이라고 했다.

구 단장은 온누리국악단도 도립이나 시립국악단처럼 월급을 주는 안정적 시스템을 구축해 청년국악인들이 국악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올 연말 사회적기업에도 신청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구 단장에게는 또 다른 바람도 있다. 청도에서 국악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단원들이 청도에서 자라왔다. 힘든 시절 온누리국악단이란 울타리에서 받은 소중한 것을 다문화가정이나 결손가정의 아이들에게 다시 되돌려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창 젊은 나이에 단장직이란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힘겹게 국악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국악이란 대체 무엇일까. 인터뷰 말미에 다시 묻고 싶었다.

“국악은 제 인생에서 참 고마운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재혼 후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시작한 것이 국악이었습니다. 국악을 통해 해외공연 등 쉽게 경험하기 힘든 것을 경험했습니다.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국악 공부를 더 할 생각입니다.”

글·사진=청도 박성우기자 parks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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