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어·먹갈치·꽃게·세발낙지·홍어…목포5味로 “夏·夏·好·好”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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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01   |  발행일 2016-07-01 제34면   |  수정 2016-07-01
■ 2부 여름 이야기-목포

20160701
민어는 동절기 홍어와 함께 하절기 목포5미의 맏형 구실을 한다. ① 민어회 ② 민어 특수부위 ③ 민어탕 ④ 지금이 제철인 병어회. ⑤ 경단5처럼 생긴 목포의 대표 간식인 쑥굴레. ⑥ 덮밥 같은 꽃게장무침비빔밥.

여름철엔 홍어보다 민어가 단연 최고
냉장고서 사나흘 숙성후 먹어야 제맛
한때 미식가들 염장해 굴비처럼 먹기도
복달임도 민어탕…부레 씹는 맛 일품

준치·병어로 만든 무침비빔밥과 함께
가장 목포스러운 ‘깡다리조림’도 일미

◆민어의 거리를 가다

처음 알았다. 목포에 ‘민어의 거리’가 있는 줄. 목포역 근처 오거리를 지나 옛 초원호텔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왼편 길 초입에 표지판이 보인다. 여느 명물 거리와 달리 유별나게 북적대지 않는다. 민어를 취급하는 다섯 업소(영란·포도·중앙·유림·유달)가 드문드문 모여있는데 다들 사이가 좋은 모양이다. ‘원조’란 단어를 간판에서 찾을 수 없다. 각자 단골을 고루 확보한 때문이다. 목포는 체인점은 인기가 별로다. ‘맛은 확대재생산 돼선 안 된다’는 게 목포의 고집.

민어철, 목포에서 가장 푸대접 받는 건 홍어. 여름날 홍어는 개도 안 먹는단다. 홍어는 동절기의 대표 어종인 탓. 어리바리한 관광객은 그것도 모르고 ‘목포 하면 무조건 홍어’라고 믿는다. 하절기 목포 최고의 어종은 단연 민어.

민어는 스토리가 풍성하다. 하절기 산란을 준비하는 민어는 교미기의 개구리처럼 밤새 울어댄다. 개구리 소리 같다고 해서 영어로 ‘Brown croaker’로 불린다. 민어는 동·남해안과는 인연이 없다. 서해안에 집중된다. 특히 신안군 임자도가 민어의 대표 산지다. 잡히면 판로를 위해 거의 목포로 온다.

목포권에서는 복날에도 개장 대신 민어로 보신탕을 끓여 먹는다. 민어탕은 ‘목포의 육개장’이라고 보면 된다. 목포에서는 쇠고기로 국을 잘 끓여 먹지 않는다. 개 대신 생선으로 보신탕을 끓여 먹으며 복달임을 한다.

수온 변화로 지금 민어는 금값이다. 일제강점기부터 80년대 중반까지 파시(波市·바다 위 생선시장)가 있었던 임자도 어황도 예전만 못하다. 올해 민어 가격은 사상 최고다. 민어는 커야 맛있다. 클수록 ㎏당 값이 올라간다. ㎏당 6만6천원 수준.

민어는 잡히면 바로 상하기 시작한다. 팔기 전에 아가미 밑을 눌러 피부터 뺀다. 전문 식당에서는 내장 등 부속물을 빼내고 냉장고에서 사나흘 숙성시켜 낸다. 민어를 활어로 먹는 것은 맛으로 치면 한 수 아래다. 한때 삼학도 선창 미식가들은 염장 민어를 방망이로 두들겨 굴비처럼 먹었다.

목포에서 처음으로 민어를 전문적으로 판 횟집은 ‘영란횟집’이다. 영란횟집은 1969년 문을 열었다. 2014년 작고한 1대 여사장 김은초에 이어 맏딸 박영란씨가 가업을 이었다. 여기 오면 민어 요리의 기승전결을 다 맛보게 해준다. 민어 살은 쑴벙쑴벙 투박하게 썰어 양배추 위에 얹어 낸다. 세 종류의 장(된장·간장·초장)이 회를 에워싼다. 회는 이 집만의 비법이 담긴 막걸리초장에 푹 찍어 먹어야 된다. 식초의 산미가 육질을 더욱 섬세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회를 먹고 나자 두 번째 접시가 나왔는데 특수 부위인 아가미·껍질·부레가 담겨있다. 부레에 특히 눈길이 간다. 소금간이 된 참기름에 찍어 먹었다. 너무 졸깃해 껌을 씹는 맛이다. 특수부위일수록 어금니가 맛을 기억하는 법이다. 민어가 꼭 그랬다. 처음엔 민어 껍질은 내지 않았다. 한 일본 교포가 물에 껍질을 살짝 데쳐 내는 ‘유비키’ 요리법을 알려줘서 개발할 수 있었다. 미식가는 민어 껍질을 ‘상추쌈’처럼 먹는 걸 즐긴다. 진짜로 민어 맛을 아는 어부들은 꼬리 살과 지느러미부터 집어 먹는다. 후식으로 나온 민어탕 국물은 남은 뼈를 사골처럼 고아서 그런지 맑은 기름이 표면에 감돈다.

◆목포는 활어보다 선어의 고장

남태평양 기단이 발달하면 목포 병어도 제철을 맞는다. 허투루 웃지도 않고 할 말만 새순처럼 내뱉는 ‘선창횟집’의 여주인 송광순씨. 종부의 포스가 느껴지는 그녀는 시어머니로부터 맛을 전승했다. 한때 목포에서 가장 부자로 불렸던 이훈동이 운영했던 조선내화 근처에 있는 ‘선경횟집’도 선창횟집에서 분파해 나갔다. 선창과 선경은 서해안에서 알아주는 병어·준치 전문점. 젊은 층은 선경, 50대 이상과 토박이들은 선창을 고집한다.

나그네는 선창으로 갔다. 선창은 준치·병어회로도 유명하지만, 미식가는 이 집의 준치와 병어로 만든 ‘무침비빔밥’에 한 표 던진다. 타 도시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깡다리조림’에 혹한다. 가장 목포스러운 생선으로 불리는 깡다리는 ‘강달어’ ‘황석어’로도 불린다. 조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어종이 다르다. 이 계절 신안·목포 지역은 깡다리가 절정의 맛을 뿜어낸다.

목포는 활어가 아니라 선어가 더 사랑받는다. 선어는 활어와 달리 그냥 씹으면 맛이 별로 감지되지 않는다. 특제 양념장과 소스가 섞여야 선어가 비로소 진미를 풍겨낸다. 원래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는 뻘물이 짙고, 그런 곳의 생선은 활어보다 선어로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목포의 메이저급 식당은 항상 선어용 4~5종 특제장을 갖고 있다. 대구권에서 유독 인기가 좋은 간장에 푼 고추냉이는 여기선 인기가 별로다. 병어회 옆에 묵은지, 창난젓, 참기름 섞인 날된장, 고추장, 초장이 ‘환상의 복식조’처럼 세팅된다. 나그네는 겉절이보다 더 아삭한 묵은지에 감전됐다. 대책 없이 군둥내만 풍기는 부패 직전의 묵은지가 아니다. 갯벌처럼 잘 삭았다. 이 항구에 족보 있는 식당은 모두 저마다의 숙성미를 가진 묵은지를 갖고 있다. 그게 없다면 목포 식당이 아니란다.

아무튼 나그네가 찾은 날 위판장 병어 가격은 올라도 너무 올라 버렸다. 30마리 한 상자에 50만원 선. 말을 잘 하면 공짜로 주기도 했던 그 잡어가 지금은 귀하신 몸이다. 준치무침비빔밥에는 조기탕이 따라 나온다.

식당을 나오자 멀리 유달산 정상부를 밝히는 경관조명이 해금처럼 좌정하고 있다. 조명은 밤 9시, 자동으로 소등됐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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