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영의 잇드라마] ‘치즈인더트랩’과 팬덤의 생성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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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04   |  발행일 2016-03-04 제40면   |  수정 2016-06-17
또 뻔한 삼각멜로물!…제 덫에 갇힌 제작진과 뿔난 시청자
상업적 계산 깔린 가짜 팬덤과 각색
원작 서사·캐릭터 붕괴로 주객 전도
[이민영의 잇드라마] ‘치즈인더트랩’과 팬덤의 생성

유정(박해진)의 서늘한 눈빛과 비틀린 미소는 수상했다. 홍설(김고은)은 풋풋하고 싱그러웠으며, 어디나 꼭 하나쯤 있을 법한 민폐남 상철과 따라쟁이 민수 캐릭터도 공감이 갔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하농’은 이유가 있겠거니 견디고 들었으나 백인호(서강준)가 온몸을 들썩이며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는 순간 더는 참을 수 없어졌다. 지겹지만 애틋한 베토벤이 그토록 경망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로맨스 스릴러를 빙자한 캠퍼스 연애스토리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은 이미 관심 밖의 드라마였다. 드라마의 성공(?)을 축하하기 여념없는 기사들만 놓고 보자면 치인트는 꽤 성공한 것으로 보였으나, 실제로는 서서히 지겨워졌으니 말이다.

드라마 치인트는 2010년부터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네이버 대표 웹툰 ‘치즈인더트랩’(순끼 作)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수출돼 해외 팬까지 거느리고 있는 이 인기 웹툰의 드라마 소식은 원작 팬들을 설레게 한 반면, 일각에서는 드라마화의 실패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법 들렸다. 원작 팬들의 이러한 관심을 가리켜 ‘치어머니’란 말도 등장했다. 웹툰 치인트와 시어머니를 합친 이 말은 ‘치어머니 뿔났다’ ‘치어머니 잔소리’ ‘치어머니 시집살이’ 등 시어머니란 단어가 가진 불편한 이미지를 합성하면서 트집 잡기에 안달 난 집단으로 원작 팬을 구획시켰다. 원작 팬의 관심은 드라마에 부정적인 팬덤(fandom)이나 극복의 대상으로 규정되었고, 원작자 순끼의 비판대로 제작진은 이것을 드라마 홍보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제작진의 의도대로 치어머니는 드라마를 홍보하고 드라마 초기 시청률을 견인한 주도 세력이 되었으며, 치인트가 tvN 월화드라마 자체 시청률을 경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민영의 잇드라마] ‘치즈인더트랩’과 팬덤의 생성

이러한 전략 하에 만들어진 것은 비단 치어머니만이 아니다. 치인트 8회 방영 직전 ‘백설커플’(백인호+홍설)이라는 말이 판타지오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등장했다. 이를 지지하는 시청자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응답하라 1988’이 일으킨 어남택 vs 어남류처럼 대세를 이루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서사적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 크다. 원작을 둔 모든 드라마가 마찬가지겠지만, 원작의 드라마화에서 중요한 것은 각색이다. 원작을 그대로 옮겨오든 원작의 모티브만 활용하든 각색을 통해 드라마만의 논리와 서사를 제대로 구성해내면 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이 바뀌는 것은 별 문제도 아니다. 재해석, 재창조, 변용 이런 말들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원작을 충실히 따르겠다던 드라마는 원작의 서사를 붕괴시키고 전형적인 삼각관계로 구도를 전환했으며, 이 과정에서 주인공 유정의 분량은 대거 축소되었다. 드라마에 남은 것은 백인호의 사랑과 그의 성장기 정도였다. 제작진은 백설커플 지지층이라는 새로운 팬덤이 드라마의 논리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라 믿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 전략적으로 기획된 가짜 팬덤을 언론에 계속 노출함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갑자기 바뀐 백인호라는 주인공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했다. 물론 이 기획은 철저하게 실패다.

팬덤은 대중들의 자율적 의지로부터 생성되는 경우도 있지만 상업적인 계산 하에서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다. 치인트의 경우 실제 생성된 팬덤 집단은 두 부류 정도로 구분할 수 있지만, 사실 이들의 경계는 모호하다. 원작의 스토리와 캐릭터 붕괴에 분노하고 있는 원작 팬들, 홀대받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실상은 당사자들만 알 일이다) 박해진의 팬, 여기에 웹툰을 보지 않은 시청자, 박해진에 관심 없던 대중들까지 원작가의 분노에 공감하고 박해진을 동정하는 순간 집단에 합류하게 된다. 한국 커뮤니티뿐 아니라 중국 최대 SNS 웨이보에 이르기까지 치인트의 팬덤은 점점 더 거대해지는 중이다. 제작진이나 기획사의 의도가 실패한 것은 이 지점이다. 서강준을 아무리 ‘한류의 신성’ ‘심쿵 만찢남’이라 외쳐봐야 작금의 사태에서 동정 받을 수 있는 것은 원작과 박해진이다. 원작과 박해진에 이입하는 순간 상대는 가해자로 변한다. 드라마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된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이들의 본질이 ‘안티-치인트’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 안티-치인트를 되돌리기엔 제작진은 너무 멀리 왔다. 판권을 산 중국 최대 동영상 사이트 유쿠가 드라마 촬영본 전부를 요구했으며, 일본, 싱가포르 역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자칫 한국드라마의 질적 논란으로까지 비화되어 수출의 적신호가 될지도 모른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제작진은 이제 와서야 확장분 방영을 미끼로 진화에 나섰지만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분위기다. 제작진의 판단 미스가 너무 컸다. 자신들이 만든 덫 속에 스스로 갇힌 꼴이다. 칼럼니스트 myvivian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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