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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에이즈예방協 대구경북지회 사무국장) |
2014년 7월, 14개 시민사회단체는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요양병원의 입원 거부와 책임을 방기한 정부 부처’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상 차별행위’로 진정서를 제출한 바 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입원 거부가 환자의 생명권을 손상시키는 중대한 인권 침해 상황임을 동의하고 있는 듯하나, 이것이 장차법상의 차별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에이즈 감염인의 요양병원 입원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왔던 것은 질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높은 편견과 차별이다. 이러한 의식은 다수의 의료진들에 의해 더욱 공고화됐고 에이즈에 대한 의학적 근거는 무시된 채 차별 행위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확장돼왔다. 또한 의료법 시행규칙 제36조는 의료인들의 강력한 방패막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진정서 제출 이후 시민사회단체에서 23개 공공(시도립·시군구립)요양병원과 5개의 민간요양병원에 문의한 바, 28개 모든 요양병원은 ‘법 때문에 안 된다’ ‘격리병실이 없어서 안된다’ ‘전염성 있는 환자는 받을 수 없다’ 등 비합리적인 이유로 에이즈 환자의 입원을 거부했다. 하지만 요양병원의 입원 거부 사유가 의학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2011년 5월 복지부의 유권해석에서 이미 확인해주고 있으며, 최근 의료법 시행규칙 제36조의 개정을 통해서 더 이상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요양병원의 입원 거부의 차별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게 됐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법과 의료인, 정부가 선두에 서서 환자의 존엄한 생명과 인간답게 살 권리를 빼앗아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고령 에이즈 감염인은 얼마나 될까? 2014년 12월말 전체 환자 수의 11.8%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최근 갑작스럽게 거동을 할 수 없게 된 40대 남성 A씨는 의식불명 판정을 받고, 와상상태로 인공호흡기 착용과 콧줄을 통해 식사를 해야 함에도 입원을 받아주는 요양병원이 없어 질병관리본부, 대구시 등에 호소했지만 방안을 찾지 못했다. 현재 가정 내 가족 간병을 통해 연명하고 있다.
HIV(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인 장기요양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내 1천200여개의 요양병원과 3천여개에 달하는 요양시설에 HIV 감염인이 차별 없이 입원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의료법 시행규칙 제36조 개정에 발맞추어 지자체 차원에서도 홍보 및 관리 감독을 강화함으로써 제반 제도와 환경을 정착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또한 에이즈 감염인이 퇴원 후 지역 사회로 복귀가 가능한 장기요양 그룹홈 등의 마련도 함께 고려돼야 할 것이다.
일명 연명의료법이 지난 1월26일 국무회의에 통과되면서 2018년부터는 에이즈 환자도 호스피스 대상에 포함되며, 요양병원이 호스피스 병상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대구·경북지역에서도 이러한 변화에 따른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 노력의 첫 걸음으로 24일 대구시의회와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가 공동주최로 ‘에이즈 감염인 요양병원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한다. 이는 법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실천적 논의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에이즈 30년, 이제는 우리가 상처를 주었던, HIV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치유에 힘을 쏟아야할 시점이다. 누구나 생의 마지막은 존엄하게 맞이할 권리가 있다. 에이즈 환자라고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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