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시리즈 통·나·무] 다음주 아너소사이어티 가입하는 박언휘종합내과의 박언휘 원장

  • 최미애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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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16   |  발행일 2016-01-16 제5면   |  수정 2016-01-21
“내가 못 보는 곳에도 도움은 필요할 거란 생각에 거액 기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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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위치한 병원에서 만난 박언휘 박언휘종합내과 원장. 대구 54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할 예정인 박 원장은 “이번 기부로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도 도움의 손길이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제가 알지 못하는 곳에도 도움의 손길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2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박언휘종합내과에서 만난 박언휘 원장(57)은 그 어느 때보다도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다음 주 박 원장은 올해 첫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회원으로 가입한다.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으로 1억원을 기부하기로 했지만 박 원장에게 기부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병원 개업 후 박 원장은 독감 백신 기증, 의료 봉사 등으로 지역 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버팀목이 되어 왔다.

◆ 울릉도 열악한 환경 보고 의사 꿈꿔

박 원장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것은 자라온 환경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울릉도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줄곧 섬 안에서 생활했다. 당시 울릉도는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박 원장의 반 친구 중에는 패혈증이나 맹장염에 걸려서 죽는 경우는 물론 감기가 악화돼 목숨을 잃는 학생도 있었다.

박 원장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사줬는데 그때 읽었던 책도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박 원장은 퀴리부인과 슈바이처를 다룬 위인전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때 슈바이처와 같은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중학교까지 울릉도서 살았는데
친구들이 감기·맹장염만 걸려도
목숨 잃는 것 보고 의사 꿈 키워

의료봉사서 만난 한 할머니가
장애 아들 위해 약 타는 걸 보고
장애인 봉사에 더 관심 갖게 돼

한 달에 하루만 병원 쉬는 것은
돈을 벌어야 도울 수 있기 때문


의사가 되기 위해 박 원장은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몸이 약해 걸핏하면 코피를 흘리기 일쑤였다. 이런 박 원장을 본 부모는 그가 책을 펴면 불을 껐다. 하지만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전깃줄 끝에 달린 전구를 들고 공부에 몰두했다. 결국 박 원장은 경북대 의대에 들어가 어린 시절 꿈꿔온 의사라는 목표에 한 발 다가갔다.

박 원장에게 늘 즐거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대학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등록금도 제대로 못낼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졌던 것. 이때 박 원장은 잠시 학교를 쉬고 학원 영어강사로 일해야 했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어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던 박 원장의 눈가가 금방 촉촉해졌다.

박 원장은 “제가 자살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교수님이 ‘의사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야단을 쳤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고 슈바이처와 같은 사람이 되기로 다시 결심했다”고 말했다.

◆ 진료와 봉사로 쉴 틈 없어도 행복

박 원장은 10년 전부터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이번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연말 캠페인 모금액이 전년보다 저조하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 사회를 위해 1억원을 내놓기로 했다.

박 원장은 “내가 나름 아집이 있어 주로 장애인, 홀몸노인을 대상으로 비타민도 가져다주고 무료 예방접종도 했다. 하지만 내가 못 보는 부분에도 도움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부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의료봉사와 독감백신 기부 등을 해온 박 원장은 좋은 기억도 있지만 안타까웠던 일들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1990년대 중반 의료봉사를 갔던 곳에서 만난 할머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매번 할머니의 건강 상태와 관계 없는 약을 처방받아 가기에 박 원장은 할머니에게 약을 받아가는 이유를 물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장애가 있는 아들을 위해 약을 처방받았던 것. 할머니의 집을 찾아가 아들의 몸 상태를 본 박 원장은 이후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박 원장은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봉사 활동도 하느라 쉴 틈이 없다. 단, 매달 첫째 일요일에는 병원 문을 닫는다. 이외에 다른 일요일에는 오전만 근무하고 오후에는 무료 진료 봉사를 하러 간다고. 남을 돕는 것도 내가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만 쉬는 강행군을 자처하고 있다.

일각에선 박 원장이 이렇게 기부를 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혹시 정치에 뜻이 있어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 하지만 박 원장은 정치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고 의사로 사는 것이 즐거울 뿐이다.

박 원장은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랐다. 사랑을 베풀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 원장은 “예전 영화에 보면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이 있었는데, 요즘은 착한 일을 해도 결말이 좋지 않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더 많아진 것 같다”며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기부를 결심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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