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41] 성주 응와종가 ‘집장’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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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14   |  발행일 2016-01-14 제22면   |  수정 2016-01-14
보리밥과 잘 어울리는 ‘속성 된장’…불천위 제사상에 오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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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한개마을 응와종가의 불천위 제사상에 오르는 집장. 응와 이원조가 평소 즐겨 먹었던 음식이라 한다. <응와종가 제공>


성주의 한개마을(성주군 월항면 대산1리)은 한옥이 즐비한 대표적 전통마을로, 2007년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됐다. 조선 초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한개마을은 성산이씨(星山李氏)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집성촌이다. ‘한개’라는 이름은 ‘큰 나루’라는 의미다. 옛날 마을 앞에 있던 나루 이름이 바로 한개였고, 마을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 때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1450년경에 입향한 이후 성산이씨가 모여 살아온 전통 씨족마을이다. 마을에 구불구불 이어진 토석담 길이 인상적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골목을 끝없이 걷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 마을은 훌륭한 인물도 많이 배출했다. 사도세자가 뒤주 안에서 굶어죽을 때인 영조 시절, 세자의 호위무관으로서 뒷날 정조가 되는 세손을 업고 와 대세를 만회하려 했으나 오히려 곤장을 맞고 벼슬에서 쫓겨나 낙향한 뒤 세자를 사모하는 마음에 북쪽을 향해 사립문을 내고 평생토록 절의를 지킨 돈재(遯齋) 이석문(1713~1773)과 그의 증손자로 공조판서까지 지내고 사후에는 불천위에 오른 응와(凝窩) 이원조(1792~1871)는 그 대표적 인물이다. 이석문은 그래서 ‘북비공(北扉公)’으로도 불린다.

이 응와종가의 불천위 제사상에는 다른 종가의 제사상에 오르지 않는 음식이 오른다. 집장이다. 집장은 이 종가에서만 해 먹는 음식은 아니고 널리 만들어 먹던 음식이지만, 제사상에 오르는 것이 눈길을 끄는 점이다.


◇조선학자 응와 이원조
판서 등 지내며 63년간 벼슬 생활
망국 폐단 ‘不得已·無奈何’ 꼽아
평소 소박한 음식 집장 즐겨 먹어

◇여름철에 담그던 집장
콩·밀 메줏가루에 채소 등 버무려
1∼2주 삭힌 후 물기 없이 졸이면
새콤·고소한 맛…반찬·쌈장 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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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에서 지내는 응와 이원조 불천위 제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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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와종가 종택 사랑채인 사미당.

◆이원조가 좋아해서 그 제사상에 오르는 집장

집장이 응와 이원조 불천위 제사상에 오르는 것은 이원조가 평소에 집장을 즐겨 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세 후 제사 때는 항상 집장을 마련해 한 접시 올려왔다.

“우리 집은 항상 집장을 신경 써서 만들었어요. 대감 할아버지(응와 이원조)께서 평소에 그렇게 잘 잡수셨대요. 그래서 7월 불천위 제사 때 특별히 집장을 올립니다. 요즘 보통 집장을 밥솥에 하던데, 그렇게 하면 제대로 뜨질 않아요. 색깔도 다르고. 우리 집에서는 하루 종일 걸려도 은근한 불에 올려서 만듭니다. 오늘 오후에 하면 내일 오후, 딱 하루를 은근한 불에 올려 만들어냅니다. 제가 처음 시집왔을 때는 집에 왕겨를 많이 쌓아두고, 항아리에 채소하고 재료를 버무려 담아 뚜껑을 덮은 후 왕겨에 불을 붙여 만들었어요. 근래에는 왕겨도 없고 해서 하루 종일 불에 올려 중탕을 해서 만듭니다.”

누룩과 채소(박, 가지, 고추, 부추 등)를 준비하고, 찰밥을 해서 뜨거운 상태로 준비한 누룩과 채소를 섞으면서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쌀엿이나 조청을 추가해 만든다. 부추는 중탕할 때 넣기도 한다. 채소 중에는 박을 가장 많이 넣는다. 그래야 맛이 있기 때문이다.

완성된 집장은 색이 검으면 안 되고 불그스레해야 잘 된 것이라고 한다.

집장 같은 소박한 음식을 즐긴 이원조는 벼슬생활을 63년이나 한 학자 관료의 모범적 전형을 보여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남긴 다음 글은 이 시대 공직자들도 새겨들어야 할 내용일 것이다.

“오늘날 나라 일을 맡은 자들은 오직 눈앞의 일만 처리하며 구차하게 세월 보내는 것을 계책으로 삼고 있다. 사사로움을 좇아 일을 처리하면서 ‘부득이하다’고 하고, 고치기 어려운 폐단이 있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한다. 이 ‘부득이(不得已)’ ‘무내하(無奈何)’ 여섯자야말로 나라를 망치는 말이다. 요즘같이 기강이 해이해진 시기에 법령을 시행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바가 없지 않지만, 위에 있는 자들이 만약 과감하게 쇄신하면서 백관들을 독려한다면 어찌 천하에 끝까지 고치지 못할 폐단이 있을 것이며, 어찌 참으로 부득이한 일이 있겠는가.”

◆오래전부터 만들어 먹던 ‘속성 된장’

집장은 16세기 중반에 김유가 저술한 ‘수운잡방(需雲雜方)’, 17세기 말엽에 하생원이 쓴 ‘주방문(酒方文)’ 등에 나온다. 먹기 시작한 지가 오래되었고 널리 해 먹던 장임을 알 수 있는데,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집장은 된장처럼 여러 달 발효시키는 것이 아니고, 담가서 며칠 후 먹는 속성 된장이다. 보통 콩과 밀을 혼합해 띄워 메주를 만들고, 이것을 가루 내어 소금·채소와 버무린 다음 항아리에 담아 고온에서 띄운다. 항아리 입구를 기름종이로 봉하고 겉을 진흙으로 바른 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두엄 속이나 잿불 밑에 묻어 1~2주일 정도 삭혀 만든다.

‘즙장(汁醬)’이라고도 하고, 채소가 많이 들어가 ‘채장’이라고도 하며, 삭은 집장의 색이 검은빛이기 때문에 ‘검정장’이라고도 한다. 퇴비를 사용해 띄우기 때문에 ‘거름장’이라고도 불리었다. 경남에서는 ‘보리겨떡장’이라고도 했다.

여름철에 주로 담그는데, 숙성 기간이 짧아 담근 지 며칠 지나면 먹을 수 있다. 새콤하고 고소한 맛이 나서 보리밥과 잘 어울린다.

이 집장은 지방마다 재료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중부 이남에서 만들어 먹던 별미 장의 하나이다. 만드는 방법은 지방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강원도와 경북은 멥쌀가루와 불린 콩을 함께 쪄서 둥글게 빚어 1주일 정도 띄워서 바싹 말려 가루를 낸 후 무, 당근, 풋고추, 대파, 다시마, 멸치, 물엿, 소금을 섞어 잘 삭힌 다음 물기 없이 조린다.

충남은 밀쌀을 빻아서 물로 촉촉하게 적셔 시루에 찐 밀떡을 엿기름물로 반죽하여 따뜻한 곳에서 12시간 동안 삭힌 다음 풋고추, 가지, 고춧가루, 마늘을 넣고 소금 간을 하여 항아리에 밀봉해 퇴비 속에서 1주일간 삭힌다.

경남에서는 삶아 찧은 메주콩에 맷돌로 간 보리를 섞어 메주를 만들어 띄운 후 말려서 만든 메줏가루와 고춧가루에 끓여서 식힌 소금물을 넣어 반죽한다. 그리고 소금물에 삭힌 풋고추와 소금물에 절인 가지를 섞어 밀봉, 퇴비 속에 묻어 발효시킨다.

막 익어서 따끈따끈한 집장은 콩, 밀, 무의 달착지근하고 부드러운 맛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지고, 가지·호박이 잘근잘근 씹히는 맛이 독특하다. 그대로 반찬으로 먹거나 쌈장으로 먹으며 찌개처럼 끓이기도 한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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