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시리즈 통·나·무] 이상춘 현대강업 대표와 父親 이충우씨

  • 입력 2016-01-09 07:39  |  수정 2016-01-09 09:28  |  발행일 2016-01-09 제5면
경북 유일 父子 아너소사이어티…“현대판 경주 최부잣집” 칭송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20160109
‘현대판 최부잣집의 재림’이라 불리며 지역민 사이에서 ‘이부잣집’으로 칭송받고 있는 이상춘 대표(왼쪽)와 이충우씨가 본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주 하면 떠오르는 명문가가 있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잣집’이다.

최부잣집은 300년 동안 12대에 걸쳐 1만석 이상의 부를 유지했던 한국의 대표적인 부자 집안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최부잣집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오히려 최부잣집은 현대사회에서도 칭송을 받고 있다. 그들은 단지 부자였을 뿐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최부잣집이 만들어낸 미담은 늘 교과서 한 편을 장식할 만큼 현대인에게 귀감이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부유층의 도덕적 의무는 먼 얘기처럼 들린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초 ‘경주에 현대판 최부잣집이 나타났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한 집안에서 1명이 나오기도 힘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에 부자(父子)가 잇따라 가입한 것이다.

더군다나 먼저 가입한 아들은 경북에서 처음으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하며 지역사회에서 고액기부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이다.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첫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인 이상춘 현대강업 대표(47)와 32번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인 아버지 이충우씨(77)에 대한 이야기다.

부자 아너소사이어티는 지역에서는 현재까지도 유일한 사례다.

지난해 12월28일 이들 부자를 취재하기 위해 경주 황성동의 일명 ‘이부잣집’ 본가를 찾았다.

5년 전 경북1호로 가입 아들
주변에 ‘기부의 기쁨’ 알려
회원 8명 발굴 ‘아너상’ 받아
“재산상속 대신 이웃과 나누자”
아버지도 설득해 동참시켜
장학금·성금 등 기탁하기도
감동한 이웃들 ‘이부잣집’불러

◆경북 고액기부의 지평을 열다

2007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미국 공동모금회의 ‘토크빌 소사이어티’(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 세계적 부호가 가입한 고액기부자 모임)를 벤치마킹해 ‘아너소사이어티’를 출범했다. 1억원 이상을 기부한 사람들을 일종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해 기부문화를 활성화시키자는 목적이었다.

아너소사이어티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경북에서는 유독 가입행렬이 뜸했다. 그러던 중 2010년 6월 한 남성이 5년간 매년 2천만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경북의 첫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이상춘 대표다.

그가 고액기부를 하게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이 대표는 “당시 모 일간지를 통해 아너소사이어티에 대해 알게 됐다. 투명한 기관을 통해 지속적인 기부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나에게 적합한 기부방식이었다. 1억원을 기부하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만큼 남들을 위해 큰 몫을 떼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전국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올해의 아너상’을 받기도 했다.

지역에서 8명의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을 발굴해 나눔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무슨 대단한 설득력이라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질문을 던져봤다. 돌아온 대답은 ‘기부철학을 지인들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이 대표는 “주위에 성공한 지인들에게 ‘기부를 하면 기쁨이 찾아온다’고 늘 이야기하고 다녔다. 평소에 지인들이 나를 믿고 따라와줬기 때문에 내가 한 이야기를 잘 들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판 최부잣집의 초석을 다지다

이 대표는 지난해 초 아버지 이충우씨를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시켜 경북에서는 처음이자 전국 여섯째 부자(父子) 아너가 됐다.

이 대표는 “아버지께는 평생 피땀 흘려 얻은 땅이 있었다. 이를 자식들에게 상속하지 말고 기부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씨는 “아들의 말이 정말 자랑스럽게 들렸다. 부모마음으로는 뭐라도 남겨 주고 싶었지만, 아들의 뜻에 따라서 내가 번 돈을 남들을 위해 쓰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자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이웃들은 이들을 ‘이부잣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현대판 최부잣집’도 이들 부자에게 꼭 붙어다니는 수식어다.

이들에게 붙은 별명은 그저 수식어에 그치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모교를 비롯한 지역 학교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지역 사회복지기관이나 단체에 정기적으로 성금을 기탁하면서 정말로 최부잣집 못지않은 미덕을 베풀고 있다.

아버지 이씨는 “어릴 때부터 시골마을에서 대가족이 살았는데 나눠먹지 않으면 도저히 입에 풀칠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나누는 것의 중요함을 알게 됐고, 아들까지 그렇게 자란 것 같아서 자랑스럽다”며 기부 이유를 말했다.

이들 부자는 요즘도 지인들과 만날 때마다 기부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 이씨는 경로당에서 작은 기부나 나눔의 중요성을 알리고, 이 대표는 지역 재경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액기부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있단다.

이 대표는 “과거의 최부잣집 사람들도 다 같이 잘살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웃을 도왔을 것이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라며 “내가 잘살고 있는 것도 다 누군가의 도움 덕분이다. 그래서 나도 다같이 잘 살고 싶다는 생각에 그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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