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포스가 꼭 ‘대구의 백종원’ 같다. 마흔을 눈앞에 둔 이태운씨. 그는 봉리단길(대봉도서관 앞 먹거리타운) ‘차세대 외식업 CEO’로 주목받는다. 새로운 버전의 이자카야인 ‘이노사케’에 이어 신개념 숯불갈비 카페 같은 ‘화친도가’, 한옥카페 같은 한식주점 ‘이가(李家)’ 등 3개의 식당을 이 거리에 연이어 론칭했다. 아내가 꾸려가는 ‘개정 인터불고 유통단지점’까지 측면지원해준다.
불과 1년 전까지는 대구식 이자카야의 개척자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국내는 물론 일본과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로 마케팅 투어를 하면서 외식사업가로 방향을 튼다. 아내와 함께 하늘의 별만큼 많이 널려 있는 동서양 메뉴를 ‘이태운 버전’으로 융복합시켜 식도락가에게 먹는 즐거움을 주고 싶다. 2~3년 멀리 보며 항상 새로운 개념의 식당 창업 청사진을 갖고 있다.
요리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요리 이외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다. 도처에 배워야 할 것이다. 인테리어도 발품 판 만큼 자기 색깔이 나온다. 그래서 비록 패션과 디자인 전문가는 아니지만 외국 패션잡지 및 건축과 인테리어 전문지를 롤모델로 삼아 새로운 컬러와 모양의 추이를 따라간다. 그가 중시하는 개념은 ‘마리아주(Mariage)’. 마리아주는 프랑스어로 ‘결혼’을 뜻하며 술과 안주의 환상적인 조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음식과 궁합이 맞는 조명, 인테리어, 음악, 그리고 와인, 사케, 막걸리, 전통주 등이 기존 소주·맥주문화와 어떻게 마리아주되어야 하는가도 고민한다.
곧고 우뚝한 콧날, 맑은 피부에 정감 있고 사려깊은 미소. 푸드 컨설턴트·식당 코디네이트 유전자를 함양시킨 그의 마지막 꿈은 식탁이 몇 개 없는 심야식당의 늙수그레한 오너셰프. 장만한 재료가 떨어지면 문 닫고, 일주일에 하루는 꼭 쉬는 ‘노랑 벤치’ 같은 식당을 관리하고 싶단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라서 그런 핑크빛 감상은 금물이란다.
◆ 바닥이 곧 자격증이다
이태운 사장은 대구에서 태어났다. 계명문화대 무역과를 다닌 그는 대학 동문이자 고교 친구와 제대 후 산업체 특별전형으로 수성대 조리학과에 들어간다. 요리학원에서 이론을 배우고 할 겨를이 없었다. 바로 진검을 잡았다. 수성못 근처 현재 파스쿠치 자리에 있었던 레스토랑 ‘명성그린힐’에 주방 보조로 들어간다. 주방장이 2주간 자리를 비울 동안 필요한 요리 노하우를 그에게 다 전수해주었다. 행운이었다. 그는 이때 자기한테 남다른 요리본능이 있다는 걸 안다. 이 무렵 요리의 기본기를 대충 다 배운다.
신버전의 이자카야 ‘이노사케’
신개념 숯불갈비집 ‘화친도가’
한옥카페 같은 한식주점 ‘李家’
음식·술과 궁합 맞는
인테리어·조명·음악
조화 개념 가장 중시
시장 조사차 3개월 한번 상경
이어 희망로 중식당 ‘예궁’에 들어간다. 7명이 포진한 주방의 막내가 된다. 그는 그곳에서 해당 메뉴의 식재료를 제때 웍(중식당용 배부른 프라이팬) 앞에 갖다 놓아야 하고, 주문받은 메뉴에 어떤 재료를 매칭시켜야 하는가도 배워나갔다. 식재료 배분과 음식 배식의 스킬을 연마했다. 처음에는 수프 하나도 국자로 제대로 떠넣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에 몇백 그릇을 떠야 하는데 수프 국물이 자꾸 떨어지면 일에 지장을 초래한다. 와인을 잔에 따를 때 시계방향으로 돌려서 와인 방울이 떨어지지 않게 갈무리하듯 그릇을 45도 정도 기울이고 국자 손잡이를 짧게 잡고 한 번에 붓는 감각을 길렀다.
예궁에 입사하자마자 연말연시 비상이 걸린다. 육체적으로 가장 고된 경험을 이때 하게 된다. 출근하면 20㎏짜리 양파 2망을 깐다. 대파 10단을 다듬어야 한다. 물론 찬물에서 작업해야 한다. 워낙 긴장하고 고되다 보니 화장실 갈 틈도 없었다. 짜장·짬뽕·우동용 면발 뽑는 방법도 배웠다. 계절마다 물과 소금의 양을 바꿔야 한다. 초창기에는 그가 만든 면발이 쉽게 불어버려 새 면발로 많이 교체해 주어야만 했다. 그때만 해도 그에겐 ‘일머리’가 별로였던 것 같다. 레시피대로 요리를 만들었지만 음식은 그것과 전혀 다르게 나왔다. 오너셰프만의 비밀 레시피가 달리 있다는 걸 알았다.
◆ 싸고 좋은 재료는 없다
식재료를 사기 위해 매천시장, 칠성시장, 서문시장이나 주요 식자재백화점을 종횡무진 다녔다. 그때 ‘싸고 좋은 식재료는 없다’는 것을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하절기 중식당 주방은 ‘불지옥’. 에어컨도 가동 안됐다. 기름이 튀어 팔에 화상을 자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만의 ‘비상약’이 있다. 감자 전분을 붙이거나 계란 껍질을 붙여서 임시 처방한다. 역시 현장에 진짜 지식이 있었다. 다른 요리학원에 가면 죽어도 알 수 없는 시크릿 정보를 중식당 시절에 익혔다. 세 끼를 정시에 다 챙길 수 없다. 아침은 오전 11시30분, 점심은 오후 4~5시, 밤참은 선택.
2년6개월 있다가 아카데미극장 골목에 있었던 ‘시안’에 주방장으로 갔다. 예궁의 과장과 함께 오픈 멤버로 가기로 돼 있었는데 과장이 개인 사정으로 안 가게 돼 얼떨결에 그가 주방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담감이 컸다. 보통 밤 10시에 퇴근하는데 그는 다음날 오전 1시까지 남아 일했다.
슬럼프가 엄습한다. 과연 요리가 내 길인지 고민한다. 비전을 분석해 봤다. 사직서를 내고 두 달 쉬다가 슬그머니 경력을 숨기고 북구 대구보건대 근처에 있는 주점 ‘짜샤’에서 알바로 일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시급 3천200원짜리 인생이었다.
낮에 투잡을 위해 새로운 일을 찾았다. 북구에 있는 ‘오션갤러리’란 뷔페에 취직한다.
뷔페 주방은 중식당보다 훨씬 편했다. 해병대 훈련병 같은 예궁 시절이 그에겐 ‘약’이 된 것이다.
그는 그 무렵 서울 홍익대 등을 돌면서 잘나가는 이자카야 벤치마킹에 나선다. 자기만의 식당을 창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본기를 더 익히기 위해 일식집으로 들어간다. 북구 유통단지에 있는 ‘귀선’이었다. 중식의 단점은 통조림과 냉동재료에 의존하는 것인데 비해 일식은 생물을 많이 취급한다. 하지만 지역의 일식은 누룽지탕·찜까지 취급하는 ‘한식의 연장’이란 느낌이 강했다.
◆ 나만의 이자카야를 찾아서
대구 중구 대봉도서관 앞 봉리단길 이자카야 스타일의 주점인 ‘이노사케’ 이태운 사장은 신개념 숯불구이집인 ‘화친도가’, 신개념 한식주점인 ‘이가’ 등 새로운 버전의 식당을 연이어 오픈을 했다. 특히 이가는 전국 유명 막걸리와 전통주를 앞세우고 중식당 기운이 묻어 있는 차돌박이들깨탕·반달치즈감자전·아롱사태수육을 안주로 깔았다. |
2010년 31세였다. 자금이 없었지만 지인이 도와준다고 해서 독립했다. 여러 곳을 물색해봤지만 인연이 안 됐다. 마침 그가 어렸을 때 살았던 대봉동을 기웃거렸다. 그렇게 해서 봉리단길에서 ‘이노사케’(이씨의 술집)를 연다. 특별한 메뉴가 있는 건 아니었다. 연어사시미와 소고기다다키를 잘 만들었다. ‘얼리지 않은 한우를 사용한 다다키는 그 집이 유일하다’는 소문이 번져나갔다.
주종(酒種)의 선택도 무척 중요했다.
사케를 전문가처럼 알아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지식적인 부분은 대다수 손님은 잘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 가격대로 이 맛을 즐겼을 때 만족하느냐 못하느냐’에 손님은 더 관심이 있다. 7만원선인 월계관 준마이 다이긴조 등 모두 12가지 사케를 선택했다. 먹어보고 괜찮다 싶은 것만 팔았다. 병 디자인도 충분히 고려했다. 지금은 사케 전문 주류상이 있지만 그때는 없었다. 일단 손님이 사케를 맛보고 싶어하면 절대 저가를 권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가격에서 제맛을 느낄 수 있다고 고집했다. 그는 “10만원대 초반의 사케에서는 화사한 봄꽃 향기가 머문다”고 설명한다.
늘 그렇지만 식재료가 생명이라고 믿는다. 음악은 물론 조도와 분위기도 엄청 중요하다. 특히 음악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는 바람에 그는 직원에게 ‘절대 노래를 건드리지 말라’고 지시한다.
그만의 식당용 음악 원칙이 있다.
일단 음악감상실이 아니니 대화에 지장을 주는 클라이맥스가 있는 노래는 가급적 자제한다. 어딜 가도 들을 수 있는 최신곡은 가급적 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음악 선곡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노사케 창업시 수개월 걸려 100여 곡을 골라 3년간 집중적으로 틀었다. 조광기를 달아 기후와 기온에 따른 불 밝기를 조절했다.
그는 항상 “내가 만족해야 손님도 만족한다”고 믿는다. 손님 위주가 아니라 철저히 나 위주면 결국 그게 손님 위주로 간다는 걸 알았다. 별별 손님의 입맛을 다 맞혀줄 수는 없는 법. 음식의 간은 조절 가능하기도 하지만 막무가내식 개인의 취향은 ‘손님은 왕’이라는 식으로 무조건 수용하지 않는다. 선별적으로 수용한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그는 일찌감치 감지했다.
음식 못지않게 서빙의 스킬도 중요하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직원은 그걸 충족시켜주어야 하는데 호텔이 아닌 이상 그런 직원을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자꾸 그가 해결사로 등장한다. 초창기 손님들에게 이노사케는 ‘대봉동 대봉도서관 길에 가면 불 켜져 있는 집’으로 통했다. 이노사케가 뒤에 봉리단길을 불야성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2년 전까지는 직접 장을 봤다. 매일 구입해야 하는 식재료는 30여 가지. 이노사케를 거쳐간 직원이 문을 연 가게가 10여 군데 된다. 지금은 5군데. 모두 지인이 꾸려간다.
새로운 업장을 오픈했다. 화친도가의 경우 등심 사이의 막과 지방을 제외한 고기를 주고 직접 화로에 구워먹게 했다. 삼겹살을 이용한 수제꼬치도 있다.
연남동, 이태원, 홍익대 앞 등 시장 조사차 3개월에 한번씩 상경해서 유행하는 메뉴와 업소 스타일을 훑어보고 온다. 전통주만 파는 서울 연남동의 퓨전한식당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가란 한식주점을 차렸다. 인테리어라인도 꼼꼼하게 직접 챙겼다. 메뉴도 지난 식당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반달치즈감자전, 아롱사태수육, 차돌박이들깨탕, 아스파라거스 등심말이 등을 냈다.
수직적 욕심이 아니라 수평적 열정 때문에 그의 메뉴에는 설렘이 어른거렸다. 세 식당 모두 중구 대봉동 대봉도서관 앞 먹자골목에 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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