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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초부터 형성된 대구 돼지국밥의 발상지인 서성로 돼지골목의 현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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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로 돼지국밥은 초창기와 달리 순대가 중요한 식재료로 등장했고 고춧가루와 된장 등이 섞인 양념장을 미리 국밥에 올려주는 게 특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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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로 돼지골목의 산파역 중 한 명인 8번식당 여주인 김희자씨(오른쪽)가 둘째딸 박정숙씨와 함께 수육을 썰고 있다. |
스토리 브리핑
한국은 ‘돼지공화국’. 전북 진안의 경우 태아 같은 돼지를 갖고 ‘애저찜’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남부와 달리 중·북부쪽으로 가면 순대국밥이 강세.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이화시장,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전북 군산시 조촌동, 인천시 동구 송현동,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등 전국 각처에 ‘1급 순대국밥거리’가 산재해 있다. 그럼 ‘돼지국밥 1번지’는 어딜까?
크게 대구·부산·밀양·제주도 정도로 정리된다. 일단 섬 전체가 돼지로 들끓는 곳은 단연 제주도. 제주도는 육개장도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로 끓일 정도. 잔칫날에는 아강발(족발)과 사골을 넣어 우려낸 육수에 몸(모자반)을 넣어 ‘몸국’을 끓인다. 흑돼지오겹살구이는 제주 최고의 별미안주. 잔치국수도 사골육수에 말지만 흥미롭게도 돼지국밥만은 인기가 별로다.
부산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돼지국밥집. 부산역전, 국제시장 옆 부전시장, 조방(조선방직) 앞, 부산 서면시장, 사상터미널 앞, 평화시장 등이다. 가장 오래된 곳은 11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부산역 앞 초량 ‘평산옥’으로 사골 육수에 소면을 말아 내는데 꼭 일본 라멘 ‘돈고츠’를 연상시킨다. 구포시장 근처 ‘덕천고가’는 산악시인 권경업씨가 꾸려가는데 한말 낙동강권 보부상한테 사랑받은 ‘진땡(眞湯)’과 ‘장국’을 판다.
부산의 돼지국밥문화를 거슬러 올라가면 ‘밀양’과 조우한다. 밀양돼지국밥 탄생지는 무안면 무안리. 일제 강점기 최성달씨가 밀양 무안면 시장터에 ‘양산식당’이란 국밥집을 선보였고 그후 며느리인 김우금을 거쳐 현재 세 아들(최수도·수용·수곤)이 동부식육식당·제일식당·무안식당을 경영하고 있다. 한국 돼지국밥문화의 중흥조는 부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발전해나간 건 단연 대구다. 6·25전쟁 직후 서성로에서 대구의 첫 돼지국밥촌이 형성된다.
◇중구 서성로
6·25 직후 형성된 대구 첫 돼지국밥촌
‘全대통령도 반한 맛’ 8번식당 유명세
◇수성구 범어시장
업소에 매긴 순번을 상호로 사용 특이
2호집, 37년 한자리 지켜낸 터줏대감
◇그 외 명가
봉덕·명덕시장은 ‘양덕 돼지국밥촌’
고령·파크·밀양 등 특색있는 맛 자랑
#1. 서성로 돼지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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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부터 현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성구 범어동 범어시장 내 2호집의 돼지국밥. 맛을 위해 국에 밥을 미리 말아 내지 않고 부추 대신 파를 사용하고, 양념장도 올리지 않는 게 특징이다. |
한때 한강 이남 최고의 공구상거리였던 서성로. 대구의 첫 돼지골목으로도 유명하다. 1950∼60년대 1기, 1970년대 초 2기 식당이 생겨난다. 1기의 대표주자는 지금은 사라진 ‘서성식당’(주인 정순연씨는 작고). 그다음 순대·수성·김천·대구 식당이 서성식당과 함께 골목 초입 모퉁이 한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현재 이 골목을 지키는 건 ‘3인방(밀양·8번·이모식당)’.
돼지골목을 만드는데 택시 기사가 ‘수훈갑’. 1980년대만 해도 하루 300대 이상의 영업용 차량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기사에겐 1천원의 할인혜택이 주어졌다. 나중엔 그게 주차난의 원인이 된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이 골목 안에선 공공연하게 ‘밀도살’이 성행했다. 가마니 위에서 모두 6각(6등분)을 쳤다. 앞다리 2개, 뒷다리 2개, 갈비짝 2개. 단골들은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들으면서 태연스럽게 국밥을 먹었다.
이 골목에서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데는 ‘8번식당’. 특전사 출신인 막내 박시웅씨를 비롯해 사위·외손주 등까지 모두 11명이 가족경영을 하고 있다. 김천 출신으로 76년 이 거리로 와서 ‘돼지아줌마’로 변신한 여주인 김희자씨. 한창 바쁠 때 58시간 잠도 포기한 채 내리 고기를 썰기도 했다.
8번식당이 갑자기 유명해진 건 순전히 전두환 대통령 때문. 전 대통령은 12·12로 정권을 잡은 뒤 고향인 합천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비서진은 수육을 어디에 주문할 건가를 놓고 고심한다. 어느 날 서성로 미림찻집에 군 관계자 3명이 나타났다. 입이 무거운 주인을 물색했다. 관상을 본 결과 8번식당 여주인이 당첨된다. 그녀는 돼지 3마리를 잡았다. 밤새워 고기를 장만했다. 훗날 현장답사 나온 장교 한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 대통령도 고기 맛에 만족했다’고 귀띔해주었다. 졸지에 ‘8번식당은 전 대통령이 미는 식당’으로 주목받는다. 김복동 전 국회의원의 모친이 타계했을 때도 8번식당은 경북대 영안실로 고기를 보냈다. 요즘은 돼지국밥에 주력. 하지만 70년대만 해도 상가·잔칫집, 회사 회식 및 야유회용 수육·편육 주문이 쇄도했다.
요즘과 달리 그 시절 돼지국밥에는 편육도 많이 넣어주었다. 일단 돼지머리를 솥에 넣고 살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삶는다. 뼈와 살코기를 분리한 뒤 살코기는 삼베 보자기에 싸 압축기에 넣고 압력을 가한다. 그렇게 하루 정도 묵히면 젤리처럼 된다. 그걸 자르면 편육이 되는데 여성들이 더 좋아했다. 암퇘지 자궁인 ‘암뽕’은 특히 대구에서 인기다.
요즘 어른들은 정통 국밥 스타일, 젊은 층은 순대국밥을 더 애용한다. 북한에서 유명했던 순대가 대구에 등장한 건 6·25 때. 하지만 대구식 순대는 속에 찹쌀 등을 넣지 않고 소·돼지피를 넣었다. 찹쌀이 들어가기 시작한 건 90년대부터. 물론 대구시청 옆 ‘아범 순대’도 순대국밥의 명가.
#2. 범어시장 뒤편 2호집
서성시장 돼지국밥을 얘기할 때 함께 언급해야 될 국밥집이 있다. 수성구 범어동 그랜드호텔 서쪽 뒤편 범어시장에 있는 ‘2호집’. 79년부터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범어시장은 2000년 5월8일 새벽 화재로 시장은 사라지고 현재 그 자리에 아파트가 서 있다. 상당수 상인들은 그 바닥을 떴고 현재 세 집만 남았다.
일단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매입해 온다. 오전 7시30분 사골을 고기 시작하면 사골은 맹물과 만나 애벌·재벌 육수를 빚는다. 일단 뼈류와 고기류, 내장과 기타 특수부위를 3단계로 따로 삶아낸다. 내장류 삶은 물은 버리고 고기 삶은 육수에 사골·족발·머리를 6시간 이상 우려낸다. 뼈를 삶을 때 절대 고기를 함께 넣지 않는다. 맛이 혼탁해질 것을 우려해서다.
여긴 삼겹살 위주로 낸다. 이밖에 원하는 사람에게는 주지만 간, 곱창, 허파, 염통, 귀, 코 등은 맛을 텁텁하게 한다고 해서 넣지 않는다. 경남식인 부추는 사절. 국과 밥을 따로 낸다. 딸 이지애씨가 수성구 황금동에 직영점을 열었다. 2호집의 맛은 목련시장 ‘대성식당’, 정화팔레스 옆 ‘정화국밥’ 등으로 번졌다.
범어시장은 경산 자인사람들까지 찾았던 제법 큰 규모였다. 예전엔 상대가 안되던 수성시장이 이젠 거인처럼 더 발전해버렸다. 2호집은 처음엔 분식을 취급했다. 테이블도 없고 길다란 송판을 깔았다. 가스도 없어 연탄불로 요리를 했다. 얼마안돼 수성구청에서 단속을 나와 간판을 달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한 상호가 생각나지 않아 그냥 가게 순서대로 1호, 2호식으로 호수를 적었다. 한창 때는 1호, 2호, 3호, 5호, 7호, 현풍, 동남 등 7개 업소가 있었다. 그 중 2호집이 가장 롱런한 셈.
#3. 대구의 돼지국밥 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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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덕시장의 한 돼지국밥집 여주인이 펄펄 끓는 육수로 돼지머리 살코기를 토렴 중이다. 봉덕시장은 일반 삼겹살과 내장 대신 비계를 제거한 머리 살코기만 사용하고 된장을 올려 내는 게 특징. |
대구에는 시장 안에 들어선 돼지국밥촌이 몇개 있다. ‘봉덕시장’ 안에는 한양·삼정·김천·청도 등 5개 업소가 모여 있다. 여기는 특이하게 삼겹살·내장 부위 대신 돼지머리를 삶아서 비계 부위는 벗겨내고 나머지 살코기만 사용한다. 된장을 고춧가루 양념장과 함께 올려 간이 강한 게 특징이다.
또한 영남대병원 근처 ‘명덕시장’은 봉덕시장과 함께 대구의 ‘양덕 돼지국밥촌’으로 불리는데 현재 영천식당 등 10여개 국밥집이 몰려 있다.
파워블로거한테 인정받은 데는 달서구 용산동 ‘고령식당’, 대명동 파크맨션 뒤편 복개도로길 중간에 있는 ‘파크국밥’, 성당시장 내에서 생겨 현재 중구 종로에 이전한 ‘소두불식당’, 칠곡중학교 부근 ‘소문난부자돼지국밥’, 남구 앞산네거리 ‘밀양돼지국밥’ 등이다. 파크국밥에는 ‘묵은지’가 들어간다. 밀양돼지국밥은 겉절이 배추김치와 부추무침이 들어가 지역에서 가장 얼큰한 국밥으로 평가받는다.
돼지국밥도 지역색이 있다. 밀양식 돼지국밥은 부산과 달리 부추를 사용하지 않는다. 밀양은 비계조차 좋아하지 않는다. 사골 육수를 낼 때 소뼈 삶은 물을 섞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 부산으로 오면 부추는 필수. 육수에 직접 넣거나 그렇지 않으면 젓갈에 무쳐 곁바찬으로 낸다.
대구 돼지국밥 마니아는 크게 ‘삼겹살·내장섞어·살코기파’로 나눠진다. 또한 고춧가루 양념장을 고명으로 올리는 걸 꺼리는 파와 좋아하는 파로도 나눠진다. 다른 도시와 달리 내장 중 유달리 ‘암뽕’을 즐긴다. 부추보다 썬 파를 잘 올려준다. 봉덕시장의 경우 특이하게 일반 삼겹살 부위 대신 돼지머리 살코기만 사용한다. 반드시 고춧가루가 들어간 양념장과 된장을 함께 올려준다. 서성로 돼지골목의 경우 갈수록 순대국밥과 다양한 수육이 강세다. 삼겹살, 살코기, 암뽕, 내장 등이 가미된 섞어고기 등을 판다. 범어시장의 좌장격인 2호집의 경우 따로국밥처럼 밥에 국을 말지 않고 따로 낸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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