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터뷰] 권태신 韓經硏 원장…위기의 한국경제를 말하다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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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24  |  수정 2015-10-24 09:02  |  발행일 2015-10-24 제22면
“창조경제센터가 스타트업 육성에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줘야죠”
<신생 벤처기업>
[Y인터뷰] 권태신 韓經硏 원장…위기의 한국경제를 말하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이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경제의 해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위기다. 중국의 경기 둔화는 우리나라 수출 실적에 직격탄을 날렸고, 언젠가 있을 미국 금리인상은 외국 자본 유출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또 유례 없는 글로벌 저성장이 국제 유가를 짓누르는 가운데 한국 경제는 1천130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를 시한폭탄처럼 품고 있다.

이 와중에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정쟁에만 함몰돼 있고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구조 개혁 과정에서 알 수 있듯 그 누구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

지난 16일 영천 출신의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을 만나 위기의 한국경제에 대한 해법을 들어봤다. 경북고를 졸업한 권 원장은 재정경제부 차관, 주(駐)OECD 대표부 대사, 국무총리실장 등을 역임한 관료 출신 경제학자다.


강성노조·노동환경 경직에
인건비 등 생산비 너무 올라
한국지엠 CEO, 어려움 토로

일자리확대·경제살리기 위해
노동시장 등 4개부문 개혁을

한국 선진경제로 도약하려면
개방형 플랫폼 전략 절대 필요
現 정부 창조경제서 답 찾아야

주력 산업들의 경쟁력 추락 중
체질 개선으로 돌파구 찾아야



-정부는 노동개혁을 연내 마무리하겠다며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 노동시장이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얼마 전 외국기업 최고경영자 초청 세미나에서 그들이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어떻게 보는지 들어볼 수 있었다. 주로 강성노조와 경직적인 노동환경 탓에 한국에서 사업하기도 어렵고 투자를 늘리기도 힘들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들 가운데 한국지엠(GM)의 세르지오 호샤 사장은 매년 노사협상에 매달려야 해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더구나 협상 타결에는 임금인상이라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한국지엠의 지난 5년간 인건비는 50% 이상 증가해 미국이나 독일 등에 버금가는 수준에 도달했다. 호샤 사장은 또 지난해 노조원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사무동에 난입해 기기를 때려 부쉈다며, 전 세계에 이런 관행이 존재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강성노조로 인해 한국지엠의 생산비용은 설립된 해인 2002년 대비 2.39배(2014년 기준)가량 상승했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가 약 1.4배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비용 상승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하는 이유가 강성노조에 있다는 뜻인가.

“해마다 강성노조와의 힘겨운 협상으로 생산비가 급등할 것이란 사실을 알면 어떤 외국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하고 싶겠나. 또 강성노조와 경직적인 노동시장 문제로 일자리도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2002년에 총생산물량의 95%는 국내생산, 나머지 5%는 해외생산이었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국내생산이 45%, 해외생산이 55%로 해외생산 물량이 훨씬 많다. 우리의 낮은 노동시장 경쟁력이 국내 일자리를 없애고 다른 나라 좋은 일만 시키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 일자리를 늘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노동개혁이 선결돼야 한다. 우리 국민의 일자리, 좌절하고 있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큰 틀에서 노동개혁 이슈를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근로자들 가운데 실제 목소리를 내는 주체는 ‘정규직 노조가 조직된 대기업·공기업·금융기관의 근로자’로 전체 근로자의 7.6%에 불과하다. 이들이 기득권을 내려 놓는 것이 우리 자녀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청년 실업 문제와 관련, 기업의 책임은 없는가.

“무엇보다 지금 채용이 힘든 이유는 불황이 구조화되고 있는 탓이다. 경기상황이 개선되면 투자도 늘고 일자리도 느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다. 따라서 경기진작을 위한 재정·통화정책 등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할 때라고 본다. 이와 함께 기업은 기존의 성장 전략에 안주하지 말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등 혁신에 힘써야 한다. 그래야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또 M&A(인수·합병)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M&A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거나 큰 폭의 변화를 주며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지지부진한 것 같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해외 M&A 거래금액은 4천억원으로 전체 M&A 거래금액 51조2천억원의 0.78%에 지나지 않는다. 휴대폰 제조업체인 중국의 샤오미가 작은 규모였을 때 삼성이 인수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뺏기는 일도, 경쟁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청년 실업문제가 대기업의 탐욕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700조원을 넘는 사내 유보금 중 일부만 시중에 풀어도 경기 진작은 물론 일자리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는 비판이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영리조직이다. 이익을 내기 위해 근로자를 고용하고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수익을 내고 그 돈을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에게 보상하고 다시 투자하는 데 쓴다. 이 과정에서 상품을 사는 소비자, 일하는 근로자, 지분을 투자한 주주 등 모두의 효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사내유보금이란 기업이 번 이익에서 배당을 하고 남은 걸 회계적으로 기록해둔 것에 불과하다. 매년 유보금이 적립되는 걸 기록해 둔 수치인데, 이는 회계상 수치지 현금이 아니다. 또 회계적으로 대차대조표의 원리상 사내유보금으로 기재는 돼 있어도 실제 기업이 보유한 형태는 기계, 설비투자, 현금 등 다양하다. 따라서 사내유보금을 털어서 투자를 하라는 말은 기존의 공장을 헐고 다시 공장을 지으라는 말과도 같으니 난센스다. 실제로 상장사 대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내유보금 중 84.4%는 유형자산, 재고자산, 무형자산 등에 투자돼 있다고 한다. 결국 회계용어를 가지고 정치권 등에서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확대 재생산된 결과가 사내유보금 과세 등으로 현실화된 셈이어서 씁쓸하다.”

-그렇다면 우리 대기업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보는가.

“우리 기업들은 꾸준히 일자리를 늘리고 있다. 올해 전국경제인연합회 발표에 따르면 주요그룹 13개의 올해 신규채용 규모는 연초 계획보다 10% 늘어난 10만3천명가량을 뽑는다고 한다. 이런 것이 가장 중요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닌가 생각한다. 더욱이 어려운 경기상황에도 불구하고 매년 사회공헌에 대한 지출 규모도 확대하고 있다. 2012년의 경우 매출액 대비 사회공헌 지출액 비율은 0.22%로 미국 기업의 2배, 일본 기업의 2.4배 수준에 이르며 세전이익 대비 3.58%로 미국 기업의 3.3배, 일본 기업의 1.3배에 달한다고 하니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경제도 좋지 않다. 미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태다. 일각에선 이 같은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의 글로벌 경기불황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보는가.

“미국은 ‘뉴 노멀’이라 하고 중국은 ‘신창타이(新常態)’라 부른다. 둘 다 장기적인 경제의 저성장이 새로운 표준이 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양자가 내포한 의미는 다르다. 미국식 뉴 노멀은 금융위기 이후 장기정체가 구조화(Secular Stagnation)되고 있는 가운데 저성장·저소득·저수익률 등 3저 현상이 새로운 표준이 됐다는 의미다. 이와 달리 중국의 신창타이는 하나의 경제발전 전략이다. 양적 성장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기적 경기 침체의 구조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수출이 중요한 우리 기업들에는 악재 중의 악재가 될 것이다. 그 결과도 나타나고 있다. 성장의 수출기여도가 떨어지고 있다. 최근 경제성장률에 수출이 기여하는 비율을 따져보니 지난해 1분기에 63.6%였던 것이 올해 1분기에는 12.5%로 급감했다. 그러나 우리 경쟁자들도 같은 여건에 놓여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선 시장 창출형 혁신으로 새로운 수요를 개발해야 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이팟의 원조는 바로 ‘아이리버(iRiver)’란 우리나라 제품이다. 소프트웨어 등으로 음원을 내려받아 편리하게 휴대기기에 담아 이동하면서 듣는 기기다. 원래부터 있던 게 아니라 그 콘셉트를 창조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창의적인 제품 개발로 새로운 수요와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 동시에 다양한 기업 인수합병과 연구개발투자에 매진해 경쟁자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한국이 선진경제로 도약하려면 구글, 페이스북 등과 같이 참여와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 개방형 플랫폼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며 “개방형 혁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개방형 플랫폼 전략을 통한 개방형 혁신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애플의 전략이 대표적인 사례다. iOS(아이폰 등에 사용되는 애플의 운영체제)와 앱스토어가 기본 플랫폼 역할을 하고, 애플과 수많은 애플리케이션 업체, 콘텐츠 업체가 서로 공생하고 같이 진화하는 게 개방형 플랫폼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애플 외에도 구글·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기업이 IT 기반 플랫폼을 조성해 프로그램·콘텐츠 공급자들과 수요자들이 서로 거래하거나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공급자와 소비자들 간 자유로운 거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자유롭고 활발한 의사소통으로 지식이 공유되고, 지식공유는 새로운 가치 창조로, 새로운 가치는 새로운 제품 탄생으로 이어져 결국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사례를 찾을 수 있는가.

“바로 박근혜 정부 들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창조경제 사업이다. 중간점검을 하자면 일단 플랫폼 구축에 성과가 있었던 것 같다. 민·관이 합동으로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 17개소를 개소했고, 이를 통해 전략산업 분야에서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 동반성장을 촉진한다고 한다. 또 각 센터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지원한다. 기업가정신을 고취하는 교육, 컨설팅 서비스부터 실제 비즈니스를 위한 연구개발 지원, 투자 유치, 인력 채용, 마케팅에 이르는 다양한 지원이 제공된다 하니 인프라 구축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콘셉트가 바로 개방형 플랫폼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도 이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설립돼 운영 중이다. 지역에 기반을 둔 벤처·스타트업을 내실 있게 키워내는 데에도 이 플랫폼이 하나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산업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동차·철강 등과 같은 이른바 ‘중후장대형’ 제조업이 수출을 이끌면서 발전해온 우리나라의 성장전략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주력산업인 중후장대형 산업들의 경쟁력이 점차 후발주자들에 의해 따라 잡히고 있는 반면 우리가 추격하는 국가들과의 경쟁력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런 가운데 바이오의약, 첨단의료기기, 시스템 반도체, 로봇 등 우리가 10여년 전부터 미래성장동력 산업으로 지목하고 육성을 시도한 산업들에서는 이렇다 할 만한 기업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주력 산업은 여전히 중요하다. 미국의 애플·페이스북 등과 같은 혁신적 IT기업이 나온다 하더라도 현재 우리 주력 산업들이 담당하고 있는 성장과 고용을 대체할 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경제 활성화’를 통한 혁신적 IT기업 육성은 그대로 추진하되, 우리 주력산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노동시장 등 4대 부문 구조개혁 같은 체질개선 노력이 중요하다. ”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인터넷 기술과 재생에너지의 결합이 3차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를 통한 수평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들이 부상할 것이며,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어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줄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모든 산업에 걸쳐 ICT기술을 접목한 ‘스마트화’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 발표된 정부의 ‘제3차 에너지기술개발계획안’에서는 ICT기술을 에너지제품 전방위로 확대하여 미래사회 변화에 대응할 계획이다. 특히 에너지신산업 창출을 지원하기 위해 에너지네가와트시스템(발전량을 늘리지 않고도 절전이나 에너지 효율 향상 등을 통해 잉여 에너지를 얻어내는 시스템), 신재생하이브리드, 탄소포집(CCUS), 에너지 사물인터넷(IoT) 등을 집중 지원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3차 산업혁명’ 수준으로 확대되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영남일보가 올해 창간 70주년을 맞았다. 영남일보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영남일보 창간 70주년을 축하한다. 근 1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 세상을 보여주고 지역의 정론을 이끌어온 영남일보에 깊은 감사말씀도 드리고 싶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영남일보가 영남지역의 중심을 잡고 지난 70년간 지켜온 정론직필의 길을 앞으로도 걸어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약력>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美벤더빌트대 경제학 석사 △카스비즈니스스쿨 경영학 석사 △행정고시 19회 △재무부 저축심의담당관 △대통령비서실 재정금융행정관 △재무부 경제협력과장 △재정경제원 교육예산과장 △대통령비서실 경쟁력기획단 부이사관 △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 비서실장 △대통령비서실 산업통신비서관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비서관 △재정경제부 제2차관 △OECD 대표부 대사 △국무총리실장(장관급) △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글·사진=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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