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중앙동, 동광동 일대 문화관광 테마거리는 국내외 관광객의 도심 투어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
주말을 앞둔 이른바 ‘불금(불타는 금요일)’인 16일 밤 부산 광복로 거리가 나들이 나온 시민과 국내외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
부산의 광복로는 국내 제2의 도시, 원도심에 걸맞게 내·외국인 관광객으로 항상 발 디딜 틈이 없다. 이 거리의 역사는 부산의 근대화와 맞물려 있다. 1888년 개천을 복개해 도로를 만들면서 거리가 조성됐다. 개항 이후 유입된 일본인이 이곳에 자리잡았고 각종 공공기관과 업무·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부산의 대표적인 번화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광복로 역시 굴곡진 역사를 보듬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광복로 인근에 자리잡았던 부산시청의 이전과 부도심 성장 등으로 쇠퇴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2005년 시범 가로 조성사업을 계기로 광복로는 다시 생기 넘치는 거리로 돌아왔다.
1990년대 시청이전·IMF로 쇠퇴
2005년 문화공간 디자인개선사업
상인·전문가·행정기관 ‘삼위일체’
30여차례 회의로 사업내용 구체화
추진과정 갈등땐 주민 나서 설득
사업 완료後 광복로문화포럼 결성
간판점검·성탄축제유치 등 활동
동광동의 40계단 테마거리 입소문
반세기 前 역사 담은 조형물 즐비
◆주민 참여로 만든 광복로
2005년 시작된 광복로 시범 가로사업은 과거의 활기를 되찾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문화관광부의 거리 문화·공간 디자인 개선 사업에 선정된 것.
광복로가 상권의 최전성기를 맞은 것은 1953년 미화당백화점이 들어선 이후로 보면 된다. 이 백화점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됐고 이 일대는 호황기를 누렸다. 하지만 미화당백화점이 IMF 외환위기 이후 부도가 나면서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의 백화점 건물이 텅 비었고, 인근 상가 1층에도 빈 점포가 수두룩했다. 서면(부산 진구)·연산동(연제구) 등의 부도심 활성화도 광복로의 쇠퇴에 일조를 했다.
이에 부산시는 2005년부터 광복로를 문화·관광의 중심지로 되살리기 위해 단순한 가로가 아닌 축제 등 문화적인 활동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기 위한 사업을 마련했다. 사업의 방향은 도로 시설물과 옥외광고물을 정비하는 것이었다. 우선 걷기 좋은 거리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고 보도 정비를 추진했다. 차도의 폭을 8m에서 5m로 축소하고, 대신 폭 3~4m인 보도를 6~7m로 확장했다. 업소별로 3~4개 무질서하게 설치됐던 간판도 1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철거했다.
보행자 전용도로 조성도 검토했지만 우회도로가 많지 않은 광복로의 특성상 추진이 어려웠고, 일부 점포의 반대도 있었다. 다만 자동차의 과속을 방지하기 위해 일자 형태의 도로를 S자 형태로 바꿨다.
이 사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주민 참여였다. 사업 초기만 해도 구체적인 방향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 이때 주민(상인)과 전문가, 행정기관이 참여하는 ‘광복로 시범가로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이들은 서로 대립하기도 하고 함께 절충안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30여 차례 회의를 거쳐 사업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했다. 설계업체는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했다. 간판 정비사업을 할 때도 이를 거부하는 점포가 있으면 직접 주민이 나서 설득도 했다.
당시 시범가로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우신구 부산대 교수(건축학과)는 “사업 시행 후 시민 입장에서 볼거리도 많아졌고, 관광객을 포함한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소극장도 점차 늘어났다”며 “하지만 상권활성화로 임대료 상승을 못 견디고 광복로를 떠나는 상점도 일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주민 참여는 2008년 시범 가로사업을 마무리한 이후에도 이어졌다. 추진위원회에 참가했던 주민을 중심으로 ‘광복로문화포럼’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광복로 활성화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2009년부터 포럼은 부산기독교 총연합회에서 개최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문화축제를 광복로로 유치했다.
김태곤 광복로문화포럼 사무국장은 “보통 정비 사업을 완료하고 2년 만에 과거 상태로 복귀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지속적으로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광복로는 간판 설치를 점검하는 등 지역 상인이 직접 나서서 관리를 한다”고 설명했다.
◆문화관광 테마거리
지난 16일 오후 4시쯤 부산시 중구 동광동을 찾았다. 기찻길을 연상시키는 바닥 디자인이 인상적인 길을 따라 가자 높은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계단 중간쯤 20대 여성 관광객 두 명이 서로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 계단 아래에는 옛날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세탁소·분식점이 있었다. 세탁소 맞은편에는 다소 이질적이지만 20~30대의 취향에 맞춘 카페가 곳곳에 있었다.
이 계단을 포함해 KB국민은행 중앙동지점부터 팔성관광에 이르는 이 거리는 ‘40계단 문화관광 테마거리’로 불린다. 부산 중구청은 2002~2004년 이곳에 각종 조형물을 통해 1950~60년대 분위기를 재현해 관광명소로 개발했다. 이후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는 부산 도심 투어코스의 하나로 알려지면서 다른 지역에서 온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이곳을 찾은 박수연씨(28)는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고 40계단 테마거리를 찾아왔는데, 다른 관광지와 달리 번잡하지 않고 보기 힘든 예스러운 거리라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40계단 일대에 조성된 예술 창작공간인 ‘또따또가’는 원도심인 중앙동·동광동 일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또따또가에는 문학·사진·회화 등 다양한 분야의 개인작가 46명과 31개 단체가 중앙동·동광동 일대 22개의 건물에 입주해 있다. 지난 8월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 지역문화브랜드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0년부터 이곳 창작공간에 입주한 금속공예작가 고정화씨(41)는 “사업 초기에는 가게 앞을 하루에 1명 정도 지나갔는데, 요즘은 10명 이상 지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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