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팔공산 동산계곡 따라 ‘하늘정원’으로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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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11   |  발행일 2015-09-11 제38면   |  수정 2015-09-11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팔공산 동산계곡 따라 ‘하늘정원’으로
팔공산 능금마을 동산리의 사과밭. 사과가 한껏 붉어지고 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팔공산 동산계곡 따라 ‘하늘정원’으로
대율리(한밤마을)의 돌담길.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팔공산 동산계곡 따라 ‘하늘정원’으로
동산계곡 동산교 아래의 계류. 계곡 하류에는 넓은 암반을 타고 계곡물이 흐른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팔공산 동산계곡 따라 ‘하늘정원’으로
하늘공원으로 오르는 데크로드. 약 500m 오르면 팔공산 정상 청운대 인근에 조성된 하늘공원에 닿는다.


사과가 익어가는 동산마을은 지금 온통 빨강 굽이굽이 보이지 않는 길 까마득한 그 위 온몸이 하늘과 가까워지는 하늘아래 하늘정원

팔공산의 북사면, 한티재를 넘어 미끄러지다보면 스르르 속도가 줄어들다 그만 멈춰지는 곳이 있다. 산의 아랫자락인가 싶다가도 휘 둘러보면 아직 가파른 산세, 그러나 골짜기가 너르고 빛 좋게 열리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너른 골짜기엔 너른 사과밭, 이파리들을 밀치고 고개 내민 사과들의 얼굴이 달콤히 붉다. 그 얼굴 쫓다 보면 너른 계곡, 좁장한 계곡, 까마득히 깊은 계곡 속에 잠기다 하늘에 닿는다. 어느새 그 얼굴은 까맣게 잊었다.

 

◆ 동산계곡의 초입, 능금마을 동산리

팔공산 동봉과 시루봉 사이에 원시림으로 뒤덮인 동산계곡이 흐른다. 반딧불이가 서식할 정도로 청정한 계곡이다. 계곡의 입구는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일명 능금마을이다. 길 가 동산리 버스정류장 지붕에 빨간 사과 두 개가 얹어져 있다. 맞은편은 모두 사과밭이다. 붉게 익어가는 사과들이 동글동글 골짜기를 덮었다.

마을은 고려 말 진주강씨(康氏)가 개척해 부남(缶南)이라 했다 한다. 이후 진씨·최씨가 정착해 살면서 가을 단풍과 계곡의 맑은 물을 담아 황청리(黃淸里)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동산리가 되었다. 부림홍씨가 다수지만 영천최씨 등도 함께 마을을 이루고 산다.

동쪽에는 소란들과 뒷질, 서쪽에는 보들막들과 앞질, 남쪽에는 오재들, 북쪽에는 오목들이 자리한다. 옛날 사람들은 이 들에서 다락논을 일구며 살았다. 본격적으로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라 한다. 가난은 대를 이어 갔지만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심정이었을까. 마을의 한 농부가 몇 그루 사과나무를 심었고, 아삭하고 새콤달콤한 사과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다락논에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지금은 능금마을로 이름 높다.

능금마을의 사과는 꿀 사과로 정평이 나 있다. 사과를 가르면 황금빛의 꿀이 과육에 박혀 있다. 풍부한 일조량과 큰 일교차가 만들어낸 맛이다. 아주 작은 나무에서도 튼실한 사과가 열린다. 지금 붉게 익어가는 사과는 ‘홍로’라 한다. 일명 ‘추석 사과’로 비싼 값에 팔린다. 마을은 지금 붉은 홍로 속에 폭 안겨 있다.

◆ 무수한 굽이 끝엔 하늘정원

동산리 마을 왼쪽으로 동산계곡이 산을 오른다. 계곡의 초입은 모두 사과밭이다. 사과밭이 계곡도 감추고 마을도 감춘다. 조금 오르면 매끄럽고 넓적한 바위를 타고 흐르는 계류를 만난다. 물길이 닿지 않는 바위에는 의자 따위가 뜨거운 계절을 막 보내고 동그마니 앉아 있다. 아직 탱탱한 그늘막도 보인다.

점점 골짜기는 좁아진다. 숲 그늘도 짙어진다. 어깨에 와 닿는 대기도 차가워진다. 이따금 나타나는 식당들은 한가롭다. 오가는 사람도 머물고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동산계곡은 예부터 수량이 풍부해 ‘멱바우’라 불렸고, 크고 작은 폭포가 스무 개가량 쏟아진다고 한다. 지금 계곡물은 아쉽지 않을 정도로만 흐르고, 길에서 폭포가 보이지는 않는다.

상류에 다다르면 계곡은 까마득한 저 아래에서 숲의 우듬지만을 드러내고 있다. 길은 굽고 굽어 굽을 적마다 볼록거울이 반짝인다. 몇 번을 놓치고도 헤아려진 수가 50여 개. 보이지 않는 길 저편이 50번이 넘는 길, 계곡 따라 4km다.

희부윰한 대기가 전신에 감돌 무렵, 보이는 것은 산마루와 산마루를 잇는 능선들과 그 너머, 또 그 너머로 이어지는 산정뿐. 산들에 휘감겨 어쩔 줄 모르던 몸이 하늘에 닿자, 산들은 뒷걸음으로 스르르 물러난다. 차가 오를 수 있는 길의 끝. 저 멀리에 송신탑 빼곡한 비로봉이 보인다. 차곡차곡 걸음으로 더 높은 곳을 향해 간다.

청운대 인근 비로봉이 가까운 산마루에 하늘정원이 펼쳐진다. 오랫동안 비로봉 근처는 군사시설로 출입 통제된 지역이었고, 사람들의 출입은 동봉까지만 허용됐다. 지난 5월 군위군은 군부대 등과 합의해 부대 부지의 일부를 분할, 하늘정원을 만들었다. 야생화 정원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 여기저기 놓인 벤치와 먼 데로 향하는 전망 데크. 하늘 아래, 하늘 속의 정원이다. 안개가 걷힌다. 바람이 분다. 햇살이 내린다. 어두워졌다가 밝아진다. 싸늘했다가 따스해진다. 온 몸으로 하늘과 가까워진다.

◆ 돌담 아름다운 아랫마을 대율리

옛날 어느 해 큰 홍수가 났고, 동산계곡에서부터 돌들이 깨지고 부서지며 와르르 내려와 마을을 덮쳤다 한다. 흔들리던 지축이 잠잠해진 후, 사람들은 이 돌들을 어떻게 치울까 고심했다. 그리하여 하나하나 돌담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동산리의 아랫마을 대율리한밤마을)에 돌담이 생긴 전설이다. 믿거나 말거나.

마을 뒤쪽으로는 위천이 흐른다. 마을 초입에는 근사한 솔숲이 우거져 있고, 집들은 돌담에 감싸여 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대청(大廳)이 자리한다. 서당으로 사용되었던 대청은 이제 노인들의 쉼터다. 마을의 모든 고샅길은 대청으로 모여들고 또 대청에서 흩어진다. 길들은 돌담길, 전체를 이으면 수천m에 달한다.

사람은 습관적이라 속으로 속으로만 걸어 들어간다. 마을의 속살이 품고 있는 오래된 돌담길은 여전하다. 풀이 자라고 꽃이 자라고 이끼가 덮인 고아한 길이다. 길 가는 조금 변한 모습이다. 큰 건물들도 들어섰고, 뮤지엄이나 카페라는 이름도 보인다. 식당, 슈퍼, 미용실, 방앗간은 똑같은 간판으로 정비되어 있다. 새로운 돌담도 쌓였다. 그 뽀얀 얼굴에도 이제 시간이 내려앉을 것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팔공산 한티재를 넘어 군위군 부계면으로 내려가 제2 석굴암을 지나 조금 가면 사과밭이 펼쳐진 능금마을 동산리다. 사과 따기 체험 등을 할 수 있고 숙박도 가능하다. 마을 입구 옆 산길로 오르면 동산계곡. 굽이진 산길의 끝까지 오르면 주차장과 하늘공원으로 오르는 데크 로드가 있다. 동산리에서 하늘정원까지는 약 7.3km. 주변 군사시설은 사진 촬영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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