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한일협정은 양국 행정부의 일…일제피해자 개인청구권 법적으로 살아 있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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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1   |  발행일 2015-08-21 제34면   |  수정 2015-08-21
광복70년 창간70년…‘위안부·강제징용 문제 해결 앞장’ 최봉태 변호사를 만나다

② “한일협정은 양국 행정부의 일…일제피해자 개인청구권 법적으로 살아 있다”
지난 4월29일 워싱턴 등지에 거주하는 미주 한인들이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규탄하는 대회를 연 가운데, 최봉태 변호사가 일본이 강제위안부 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수용하며 사과하라는 요지의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얼마 전 미쓰비시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동원됐던 미군 포로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또 중국 징용피해자에게도 사과와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강제징용피해자에겐 소송이 진행 중이라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미쓰비시측 기무라 상무가 ‘미군 포로 900여명이 미쓰비시 탄광 등에서 혹독한 강제노역을 했는데 전쟁포로와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앞으로 이런 전철을 밟지 않고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동원됐음에도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우리에겐 한 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참 기가 막힌다. 사과라는 것은 전쟁범죄의 사실, 즉 팩트를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며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만 진정성이 있는 거다. 지금까지 일본은 한국 징용자에 대한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다. 강제성이 있니 없니 하면서 몇 명을 끌고 갔는지조차 조사하지 않고 있다. 8만명에서 20만명을 끌고 갔다는 이야기만 떠돈다. 끌고 간 일본이 자세히 알지 않겠나. 과거의 일이라 완벽한 자료가 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같이 조사라도 해보자고 제의하는 게 도리다. 일본은 있는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지금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는 거다.”


강제징용자에 대한 책임 이행
일본 최고재판소 2007년 판결

한국언론 일본에 속고 있어
양국 사법부 판결만 알아도
잘못된 보도 안한다


한국측 일제 피해자 103만명
1인당 1억원씩 해도 103조원
남북 합의해 반드시 받아내야

강제징용 전범기업 미쓰비시
지금 한국에서
아리랑3호 발사 용역 사업
승소한다면 채권확보 가능
집행 안되면 불매운동 해야


박근령씨 과거사 발언은
문제 해결 찬물 끼얹는 망언


▲미쓰비시의 재상고에 대해 승소한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나.

“강제집행을 통해서 채권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미쓰비시는 한국에서 아리랑3호 발사 용역사업을 하고 있다. 채권을 압류하면 된다. 한국의 법을 무시하는 일본 전범기업이 우리나라에서 돈을 번다는 게 말이 되나. 집행이 안 된다면 미쓰비시 상품 불매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쳐야 한다. 2007년 4월 일본 최고재판소가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일본정부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책임을 이행하라고 판결했다. 한국 대법원 판단 이전에 한국과 일본 정부가 먼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 정부는 일제 피해자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나.

“한국외교부와 일본외무성이 사실상 야합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1965년 한일협정 당시 보상금을 받았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한일협정은 팩트가 아니고 ‘청구협정 신화’일 뿐이다. 다시 말해 40년간 일제 피해자가 법적투쟁을 통해 일본에 책임이행을 요구하는 데 한일협정이 권리구제의 장애물이 되지 않음에도 협정이 장애물처럼 보이는 건 허상이란 말이다. 한일협정 체결은 양국의 행정부가 했다. 하지만 한국도 일본도 삼권분립국가다. 사법부가 동의하지 않았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2007년 4월 한국 강제징용자에 대해 일본정부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책임을 이행하라고 판결했다. 즉 개인청구권은 살아있다고 판결했다. 그것을 강제하라는 판결을 2012년 한국 대법원이 다시 했다. 그런데 지키지 않는다. 그걸 관철하라는 것인 데도 안 하고 있다.”

▲양국 언론의 책임은 없나.

“한국언론이 일본에 속고 있다. 기자들이 일본 외무성이 발표한 내용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려 반복해서 전달한다. 일본을 안다는 관료, 지식인도 마찬가지다. 오락가락한다. 일본 언론도 사실에 근거해 보도하지 않고 있다. 양국의 사법부가 판결했던 상식적인 내용만 알아도 오보를 안 한다. 한국외교부도 이를 방조하고 일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다. 일본기업이 한국인 강제징용자들의 돈을 일본정부에 공탁해둔 것이 3억엔 정도다. 일본에서 소송 때 이를 2천배로 환산해 소송을 했는데 6천억엔, 우리 돈으로 10조원 정도다. 한국 정부는 이 공탁금을 찾아오는 것에도 제대로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005년 아베가 총리를 하기 전 직접 그에게 물어봤는데 안 줬다고 하더라. 준 사람이 안 줬다고 하는데 한국 외교부는 독립축하금이니 경제협력기금이니 하면서 받았다고 한다. 한국정부가 받은 건 플랜트, 건축자재 이런 거다. 그건 화폐가 아니다. 한일협정은 굴욕적으로 맺었다. 남북이 합의해 다시 받아야 한다. 사실 통일이 안 되면 법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래도 받았으면 보상을 하든지 해야지. 한국 측 피해자가 103만명이다. 1인당 1억원씩 해서 103만을 곱하면 103조원이다.”

한편 최 변호사는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관련, 2006년 일본군 강제위안부 피해자 64명을 대리해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해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 국가의 부작위로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받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8월30일 “위안부 피해자들의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 가능성과 구제의 절박성,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국가에 보호권을 행사할 작위의무가 있다”고 위안부들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법과 관련해 현명한 방법은 없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의 안을 한국 정부 협상안으로 공식화하는 것이다. 2011 헌재의 결정 이후 정부가 협의를 계속 하고 있으나 문제 해결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정부의 대응과 비공개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당국자 간 해결책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없을 뿐더러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피해자들은 1992년부터 아시아연대회의를 통해 해결안을 구체적으로 가다듬어 왔다. 지난해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쿄에서 현실적 해법을 만들었다. 지난번과 비교해 요약하자면 입법에 의한 사죄가 아니더라도 번복할 수 없는 사실 인정과 사죄를 할 수 있다면 입법에 갈음해 이를 용납하겠다는 것이다. 또 그 사죄에 대한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일본이 배상금을 지급한다면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문제 해결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그외 역사교육 등의 과제는 장기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을 제시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한·일 당국자가 책임자 처벌까지 포함하는 장단기적 과제를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인 것처럼 호도하는 게 문제다. 그러면 피해자들이 살아있을 동안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한국 정부는 아시아연대회의의 안을 정부 공식 입장으로 정하고 전 세계에 공론화해야 한다. 일본 정부의 답이 부당하다면 중국 등 주변국가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연대하자고 해야 한다. 올해 연말 한·중·일 정상회담이 강제위안부 할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대통령 친동생인 박근령씨가 일본의 포털사이트와 인터뷰에서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더 이상 사과할 필요가 없고, 강제위안부에 대해서도 이제 한국정부가 보살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또 신사참배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것은 일본에 대한 내정간섭이라고 했다. 일왕에게는 ‘천황폐하’라는 극존칭까지 썼다.

“문제 해결에 찬물을 끼얹은 용납할 수 없는 망언이다. 강제위안부 할머니가 47명이나 시퍼렇게 살아계신다. 일제 피해자를 위해 외롭게 싸워온 평화활동가에 대한 모욕이다. 이런 시대착오적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건 우리가 친일부역자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일제청산을 하지 못하면 통일도 어렵다. 남쪽이나 북쪽이나 냉전을 이용한 분단기득권자들이 있다. 군작전지휘권을 미국에 맡기겠다는 ‘똥별’들이 문제다. 민족의 운명을 외세에 맡기겠다는 건데 후세 역사가들이 무엇이라 기록할지 두렵지 않나.”

최 변호사에겐 ‘골리앗을 이긴 다윗’외에도 ‘21세기 독립군’ ‘작은 거인’등 별명이 많다. 그는 또 ‘대구헌법 초안자’이며 ‘민변(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초대 대구지부장’ ‘대구참여연대 초대 사무처장’이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도 만들었다. 이외에 대구지역 시민단체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그가 일제강점기 피해자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1994년부터 97년까지 일본 도쿄대 법대 대학원에서 유학을 할 때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현지 일본 변호사들과 양심적인 일본 시민을 보고 감명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미션을 찾은 것이다. 대구에 와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도 그때 결성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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