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퇴마: 무녀굴 유선, “악귀에 씐 엄마役…딸 생각나 소름 끼쳤다”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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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17  |  수정 2015-08-17 09:53  |  발행일 2015-08-17 제24면
영화 퇴마: 무녀굴 유선, “악귀에 씐 엄마役…딸 생각나 소름 끼쳤다”
공포와 스릴러물에 잘 어울리는 배우 유선은 “한정된 캐릭터가 싫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호러퀸’이라는 수식어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유선의 남다른 연기 의지와 열정이 다시 한번 꿈틀대기 시작했다. 빙의로 고통받는 여자와 그녀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퇴마사, 그리고 그들을 괴롭히는 원혼을 다룬 영화 ‘퇴마: 무녀굴’의 금주 역을 통해서다. 금주는 딸아이를 사랑하는 모성애 지극한 엄마지만 알 수 없는 힘에 빙의가 된 후 시종 음산하고 불쾌한 기운을 내뿜어야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출산한 지 얼마 안돼 정서적 안정과 평온이 필요했던 그녀의 일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닐지 걱정됐다. “게다가 해야 할 숙제가 정말 많은 역할이었다. 공포를 경험하고 공포를 주면서 이를 이겨내고, 그 가운데 빙의라는 소재의 주체가 돼야 했다.” 영화 데뷔작 ‘4인용 식탁’(2003)으로 시작해 꾸준히 공포·스릴러물의 현장을 경험해온 유선에게도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녀의 출연결정은 빠르고 분명했다. 한동안의 공백으로 쌓인 연기적 갈증을 풀어줄 최선의 카드라고 생각해서다. 여배우이자 실제로 딸을 둔 엄마로서 누구보다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는 그녀, 바로 ‘호러퀸’ 유선이다.

-영화에선 주로 호러물과 인연을 맺어왔다.

“내가 그런 캐릭터에 대한 로망이 있다. 강인한 여성, 남자 캐릭터와 대결해도 전혀 밀리지 않고 대등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여성에 대한 동경이 있다. 그래서 안젤리나 졸리가 맡았던 여전사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최근 ‘매드 맥스’의 샤를리즈 테론을 보면서 부럽고 흥분됐다. 정말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

-당신의 전작들에서도 대부분 녹록지 않은 캐릭터들을 보여줬다.

“촬영을 마치고 나면 어려운 숙제를 끝냈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 뭔가 큰 산을 넘은 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그래서 할 때는 고통스럽지만 어려운 숙제를 즐기고 반기는 편이다.”

-공포와 스릴러물에 잘 어울리는 편이다. 특히 표정과 분위기의 낙차 큰 대비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건 누구도 쉽게 따라오기 힘들 것 같다.

“어떤 배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장르에서 딱 연상되는 배우로 특화돼 있는 건 남들이 부러워 할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예전에는 왜 이런 캐릭터만 들어오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호러 퀸’ ‘스릴러 퀸’이라는 수식어가 자랑스럽다.”

-이번엔 빙의를 경험하는 인물인데.

“빙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고 두려웠다. 그래서 한편으론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감독님을 만나고 나서 그 부분에 대한 우려를 없앨 수 있었다. 이런 감독님이라면 내가 믿고 의지해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제일 중요한 건 역할을 맡게 된 순간부터는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는 거다. 그리고 그 캐릭터로 깊이 있게 들어가는 건데 감독님이 그런 믿음을 내게 주셨다.”

-레퍼런스를 참고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봐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을 했다. 감독님도 관련 영상이 있지만 보여주기가 애매하다고 했다. 빙의가 된 진짜 모습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냥 (연기로)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도 그 방법밖에 없다고 하셨다. 사실 빙의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자유로웠던 것 같다.”

-기독교인데 거부감은 없었나.

“성경에도 귀신 씐 사람을 예수님이 치유해주시는 대목이 나온다. 나도 귀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극 중 진명(김성균)은 도구를 사용하고 주문을 외우고 무속신앙에서 내려오는 방법으로 퇴마의식을 치른다. 이는 신부님이 나타나서 기도와 말씀으로 퇴마를 하는 할리우드 영화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우리는 토속신앙이 있기 때문에 우리만의 방법으로 퇴마를 한다. 그 부분에 대해 부정하거나 거부감을 느낀다면 출연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빙의를 경험했을 때 굿을 하고 거기에 의존해서 치료하면 되는구나 하는 식으로 관객들이 생각하게 되면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영화에는 목사님이 등장하고 기독교적인 퇴마 방법도 나온다. 그래서 좋았다. 무속과 기독교가 다른 방법으로 퇴마를 하고, 그게 균형이 이뤄져 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그런 부분에 대해 크게 공감하셨다.”

-연기를 하면서 공포스럽지는 않았나.

“‘검은 집’에서 사이코패스를 연기했지만 이건 정말 다른 차원이었다. 이번엔 악귀가 씌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이 무서운 것에 대한 공포를 뛰어넘는 것 같다. 내가 그 주체가 되어 몰입을 하고 계속 상상하고, 또 그런 정서와 분위기를 계속 내 머리 속에 떠올려야 한다는 게 힘들었고 두려웠다. 특히 아이를 키우고 있고 따뜻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가운데 그런 분위기에 빠져들어가야 하는데 과연 실제 삶과 작품 안의 캐릭터와 균형을 맞춰갈 수 있을까, 혹여 어떤 식으로든 아이한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났다. 촬영하는 과정에서도 그게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촬영을 하지 않을 때는 삶과 분리시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영화 퇴마: 무녀굴 유선, “악귀에 씐 엄마役…딸 생각나 소름 끼쳤다”



출산 후 첫 영화…엄마役 감정이입 자신
빙의엔 정답 없으니 자유롭게 풀어냈다
힘든 역만 선호? 고통 후 희열 즐기는 편
‘호러퀸’ 좋지만 다음엔 스릴러 하고파



-이번에는 CG와 특수효과 작업이 많은 편이다. 그만큼 혼자와의 싸움이 많았다는 얘기일 텐데.

“SF영화를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리우드 영화 메이킹 영상을 보면 악당도 없는데 혼자 허공에서 싸우는 모습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그것처럼 나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가상의 존재를 생각하며 연기했다. 정말 어려웠다. 어떨 때는 머쓱하기도 하고. 그만큼 많은 몰입과 집중이 필요했고 에너지 소비도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늘상 먹어야 했다.”

-당신에게 연기란.

“내 삶의 동력이다. 가장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주었던 동력이기도 하고. 나는 지독한 안전주의자다. 음식도 먹어본 것만 먹고, 늘 가던 곳만 가고, 사람들도 만나던 사람들하고만 어울린다. 결혼도 10년 넘게 사귀고 했다. 그렇게 안정적이고 편안한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연기에 대해서만은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의지와 열정이 생겨난다. 스스로 생각해도 되게 신기하다.”

-다음에도 호러물 제의가 온다면.

“캐릭터가 아주 색다르고 정말 매력적이어서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상 망설일 것 같다. 단, 스릴러라면 또 도전해보고 싶다. 반전이 있고 감정이 변화무쌍해서 종잡을 수 없는 그런 캐릭터라면 좋겠다. 어려운 숙제는 언제든 환영이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김현수 프리랜서 dada24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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