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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대한간질학회(현 대한뇌전증학회)는 ‘간질’이라는 용어 대신 ‘뇌전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공표했다. 이 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맞서며, 병명에 동반돼 있던 낙인과 제약을 없애려는 취지다. 따라서 뇌전증이란 새로운 질환이 아니라, 간질로 불러오던 질환의 새로운 명칭이다. 뇌전증은 2천년 전 히포크라테스가 질병으로 명명하고 치료법을 제시했을 만큼 오래 전부터 관찰됐던 질환이다. 도스토옙스키, 나폴레옹, 소크라테스, 고흐, 차이콥스키를 비롯한 다수의 역사적 인물이 뇌전증을 앓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뇌전증은 아주 흔한 질환으로 전체 인구의 약 1%가 앓고 있으며, 국내 약 40만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뇌전증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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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 동산병원 신경과 문혜진 교수 |
뇌의 전기적 이상으로 인한 흔한 질환
한때 ‘간질’로 불려…국내 40만 추정
뇌종양·뇌졸중 등 국소적 병변이 원인
어린 시절 유전적 인자에 의한 발병도
의식 잃고 눈 돌아가고 사지 뻣뻣해져
반응늦고 의미없는 행동…입맛도 다셔
환자 60%는 항경련제만으로도 호전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뇌종양, 뇌졸중, 혈관기형, 외상, 해마경화증 등의 국소적 병변에 의한 뇌전증은 증후성 뇌전증이라고 분류한다. 원인은 잘 모르지만 유전적 인자가 관여할 것으로 추정되는 특발성 뇌전증도 있다. 특발성 뇌전증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지만, 증후성 뇌전증의 경우는 발생 원인에 따라 발병시기가 다양하여 성인이 된 이후나 노년기에 발병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뇌전증은 말 그대로 뇌의 전기적인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의 명칭이며, 환자에게서 발생하는 개별 증세인 발작과는 구분된다. 뇌신경세포 중 일부에 과도한 전류가 발생되어 나타나는 개별적 신체증상은 발작이라고 한다. 이러한 발작이 특별한 유발요인(고열, 탈수, 저혈당, 저나트륨혈증 등) 없이 두 번 이상 반복해서 나타나는 경우 뇌전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발작 증상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의식을 잃고 쓰러져 눈이 돌아가고 사지가 뻣뻣해지고 떠는 양상(전신강직-간대발작)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멍해지면서 반응이 늦어지고, 반복적으로 의미 없는 행동을 하며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보이는 등의 양상(부분발작)이 실제로는 더 자주 관찰된다.
뇌전증이 의심되면 뇌파 검사(EEG)를 시행해 뇌전증파를 확인함으로써 뇌전증을 확진할 수 있다. 그러나 뇌파 검사는 민감도가 낮으므로, 한 번의 뇌파 검사가 정상이라도 뇌전증을 배제할 수는 없다. 임상적인 판단과 뇌파검사의 반복 시행이 필요할 수 있다. 뇌 MRI는 발작을 일으키는 구조적인 뇌병변을 찾기 위해 시행한다. 비디오-뇌파 검사는 문진과 기본검사에서 진단이 어려운 경우나 약물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아 수술적 치료를 고려할 때, 뇌전증의 정확한 진단과 병소 국소화를 위해 중요한 검사다.
◆ 뇌전증의 치료
뇌전증의 치료에는 크게 약물치료와 수술치료가 있다.
약물치료는 항경련제의 복용으로 뇌전증 치료의 가장 중요한 기본 치료법이다. 적절한 약물치료를 통해 뇌전증 환자의 약 60%는 발작 없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고, 약 20%는 수 개월에 한 번 정도의 드문 발작을 보인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항경련제는 16종에 이르는데, 항경련제의 선택은 뇌전증의 종류, 개별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므로 반드시 뇌전증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발작 조절이 잘 될 경우, 최소 2~3년 이상 치료를 지속하고, 발작 재발이 없고 뇌파 소견도 좋아지면 약물을 줄여나간다.
다음으로는 수술치료다. 전체 뇌전증 환자의 30%는 여러 종류의 항경련제를 복용해도 발작이 잘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으로 분류된다. 이런 경우 뇌전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뇌의 한 부분에 국한될 때 그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치료가 도움이 된다. 뇌전증을 일으키는 부위가 여러 군데이거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거나, 기능이 중요한 위치에 겹쳐 있는 경우에는 수술치료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해마경화증이 있는 내측두엽 뇌전증의 경우 수술을 통해 70% 이상 조절을 기대할 수 있어 수술치료의 좋은 적용 대상이 된다.
뇌전증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에게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매우 흔한 질환이다. 또한 약물치료와 수술치료를 통해 증상을 조절해 일상생활을 건강하게 영위할 수 있으며, 일부 환자에게서는 완치도 기대할 수 있다. 증상이 의심되는 경우(갑작스러운 의식소실, 기억하지 못하는 이상행동, 목격된 발작증세)에는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하다.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과 문혜진 교수는 “동산병원 신경과는 전문의가 뇌파검사, 비디오-뇌파 검사를 비롯한 모든 뇌전증 진단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며 “특히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동산병원 뇌전증센터는 신경과, 신경외과, 소아청소년과, 영상의학과, 핵의학과의 협진을 통해 환자에게 최상의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호기자 tiger35@yeongnam.com

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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