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소 잃고 못 고친 외양간 어떡할까?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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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11   |  발행일 2015-06-11 제31면   |  수정 2015-06-11
[영남타워] 소 잃고 못 고친 외양간 어떡할까?

총체적인 비정상이다. 1년여 전의 참괴한 심정도 잠시, 반성과 다짐도 일과성으로 그치고 도로아미타불이다. 이번엔 메르스 늪에 빠진 것이다.

정부의 메르스 초기 대응을 복기하면 양치기 소년과 다를 바 없다.

지난달 20일 국내에서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자, 보건당국은 ‘전염력이 굉장히 낮아 2차 감염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다음날 처음으로 2차 감염자가 2명 나온다. 이어 확진자가 속출하자 보건당국은 또 ‘사망자도 없고 치사율도 제로’라고 언급한다. 이 말이 나온 날 사망자도 2명 발생한다.

정부의 오판과 궤변은 또다시 이어진다. 방역망이 뚫린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쇄도하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역사회로 확산은 절대 없다”고 한다. 3차 감염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의료 기관 내 감염’이라는 용어를 들고 나와 지역사회 감염과는 구분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논리는 ‘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지난 1년여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뼈아프게 체득한 교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갈팡질팡하며, 위기의 순간 국민을 이끌 리더십도 없다. 믿고 따르라는 정부 대응은 파렴치하게 구태의연하다. 메르스에 대한 국민 불안이 확산되는 그 순간, 청와대와 정치권은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옥신각신했다. 국민 건강은 뒷전인 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만 몰두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데자뷔다.

환자 발생 20일 지난 뒤, ‘코르스’라는 조롱을 당한 이후에야 정부는 심각성을 자각, 뒷북을 쳐댔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밥상은 엎질러진 것이다. 국민은 정부가 안심하라고 해서 안심하는 게 아니다. 정부가 적절하게 현안을 관리하고, 해결하고 있다는 신뢰를 줄 때 안심하는 것이다.

엎어진 밥상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선 지난(至難)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주안점을 둔 정책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통한 안전 확보였다. 관료 조직을 개혁해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적폐(積弊) 척결이라는 무시무시한 용어까지 동원하면서 개혁 의지를 보였지만, 관료 조직의 고질은 하나도 고쳐지지 않았다는 게 이번 사태로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이번에도 당국의 무능·무사안일·보신주의가 어른거렸다. 중동에 의료 수출하는 이 나라에서 기본 방역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았건만, 정부는 믿고 따르라는 말만 되풀이한 것이다. 특히 장관을 비롯한 관료조직의 굼뜬 움직임은 메르스의 뒷북 행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 인식 수준이 국민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감동의 드라마로 승화될 수 있고, 비극으로 막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이은 메르스 사태는 정부에 대한 불신만 더 키웠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복기도 제대로 하지 않은 모양새다. 바둑에서 복기는 단순히 판을 재연하는 게 아니라, 패착을 찾아내 다음 대국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목적이 있다. 지난 1년간 해경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 고위공무원 자리만 늘린 것 이외에 한 일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소 잃고 외양간을 못 고친 정부가 이번엔 질병관리본부 해체라는 성급한 대책을 내놓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이 때문에 세간에선 외양간을 선진 보건당국에 세를 줘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그렇다고 예서 주저앉아 있을 순 없다. 우리네 삶이 이로 인해 더 피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는 하루빨리 퇴치돼야 하고, 그러려면 성숙한 시민 의식과 적극적인 협조가 뒤따라야 한다. 삶은 그렇게 이어져야 하니까.
윤철희 1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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