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연지리 보고서 대구GEO] 학계 봉수지 위치 ‘진실게임’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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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21   |  발행일 2014-11-21 제35면   |  수정 2014-11-21
달성군 마천산 옛 봉수대의 진짜 위치를 찾아라
[인문·자연지리 보고서 대구GEO] 학계 봉수지 위치 ‘진실게임’
달성군 다사읍 부곡리 1 일원 추정2 봉수지역.(왼쪽) 추정1지역세 발굴된 연조 흔적.
[인문·자연지리 보고서 대구GEO] 학계 봉수지 위치 ‘진실게임’
달성군 다사읍 부곡리 1 일원 추정2 봉수지역.(사진 왼쪽) 1830년 경상감사 박기수가 제작한 ‘영남여지’에 나타난 봉수대 표기.(가운데)



최원관 다사향토사연구회장 주장
경상감사 박기수 제작 ‘영남여지’
추정 2지역, 봉수지 표시돼 있어
주민도 ‘봉화산’ ‘봉골’로 불러

이철영 교수·김주홍 박사의 반론
발굴조사 결과, 추정 1지역 맞아
추정 2지역은 시계 확보도 안돼
옛 지도 지금보다 정확하지 않아


최근 달성군이 마천산 봉수지 복원 및 정비를 위한 마천산 봉수지 전통문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마천산 봉수지의 정확한 위치가 쟁점이 되고 있다. 논쟁에 불을 붙인 사람은 최원관 다사향토사연구회장이다. 최 회장은 2011년 3월 동양문물연구원이 발간한 ‘마천산 봉수지 문화재 정밀지표조사 보고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당시 보고서에는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산 40을 추정1봉수지로 하고, 달성군 다사읍 부곡리 1 일원을 추정2봉수지로 선정하면서 추정1이 추정2보다 옛 봉수지역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고서는 김재현 동양문물연구원장(단장)을 비롯한 자문위원, 조사원, 조사보조원 등 고고학과 역사학전문가 6명이 10개월간 마천산 봉수지에 대해 문헌 및 현장조사를 벌인 뒤 작성했다.

▲다사향토사연구회 최원관 회장 주장

최 회장은 “5년 전에도 이의를 제기했지만 2011년 보고서는 엉터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1830년 경상감사 박기수가 제작한 ‘영남여지’를 예로 들었다. 지도에는 서쪽 금호강 지역 방내 관방원(방천리)~달천진(금호강 나루)~박실원(박곡리)~마천원(이천리)~금천역(하빈 현내리)~동안진(낙동강 하빈면 하산리)을 거쳐 대구부에서 성주로 가던 옛길이 자세히 표기돼 있다. 지도에는 마천산 봉수지가 하동면과 하남면 사이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옛길의 능선인 마천역을 경계로 동쪽엔 이강서원이, 왼쪽엔 봉수지 표시가 있다.

그는 이곳이 바로 추정 2지역이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을 백지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밖에 최 회장은 부곡리 주민들이 2지역 일대를 봉골, 봉화산이라고 부른다는 사실과 주민 이수로(80), 손중헌씨(65) 등의 증언을 증거로 내세웠다. 특히 손씨로부터 방계 조부 손인원이 봉화지기를 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그는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에 사는 추지엽(82), 추교해씨(87) 등 주민의 증언을 통해서도 추정 1이 봉수지가 아니란 사실을 주장했다. 두 주민 모두 추정 1에서 6·25전쟁 전까지 정월대보름에 달집태우기를 했다는 것이다. 달집태우기 흔적이 봉수지로 둔갑됐다는 주장이다.

최 회장은 “마천산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하빈현에서 남으로 1리에 있는데, 일명 금성산(錦城山)이라고 불렸던 사실을 언급하며 추정 1지역이 성고개 또는 성터였다”고 주장했다. 실례로 하빈 현내리에 성고개, 금천역 등의 지명이 있는데 성고개는 옛성, 금천역은 마현령 옛길과 관련이 있으므로 성고개와 금천역은 봉수대와 전혀 무관하다고 했다.

▲봉수전문가 2인의 반론

이에 대해 지난 9일 달성군에서 열린 마천산 봉수지 전통문화사업 종합정비계획 용역 중간보고회에 참석했던 이철영 울산과학대 교수를 비롯한 봉수전문가 LH공사 김주홍 박사는 반론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로 봉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두 전문가는 지난 6월 실시한 문화재발굴조사 결과 추정1지역 봉수지 내에 석축으로 된 방호벽과 출입구가 양호한 상태로 보존돼 있으며, 4개의 연조(불을 피우는 불 아궁이)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가장 큰 증거로 내세웠다. 또 최 회장이 주장하는 추정 2지역에선 대응봉수인 성주 용각산성 내 각산봉수와 화원 성산 봉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되는 증거라고 했다. 실제 동양문물연구원이 낸 보고서에도 2지역(해발 180m)에선 각산봉수가 높은 산들에 가로막혀 시계가 확보되지 않으며, 성산 방향은 죽곡산(해발 196m)에 가려 성산의 동쪽 일부만 보인다고 했다. 또 옛 지도에 표기된 봉수지가 지금의 지도와 같이 정확하지 않아 오류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최 회장의 주장과 달리 “옛성과 성고개, 역 등은 방어상 중요하고 교통의 요충지에 설치되는데 봉수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유사시 파발꾼이 봉수와 함께 신호를 전달한다. 또 성주 각산봉수도 용각산성 내에 있고, 김천의 감문산 봉수도 감문산성 내 위치하기에 성과 봉수를 따로 떼어 설명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즉, 산성 내에 봉수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달집태우기에 대해선 이천마을에선 3곳, 새터 마을에선 2곳에서 이루어진 사실도 상기시켰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봉수대에서 항상 불이 붙는 모습을 보아왔던 조상들이 봉수가 사라진 뒤에도 유사한 형태로 계승시켰던 사실이 다른 지역에서도 여러 차례 나타나는 바, 특별히 추정 1지역이 달집태우기만 했던 곳은 아니라고 했다. 인근 집성촌인 추계추씨 종친회와 청주양씨 종친회 종원의 추정 1지역이 봉수지라는 증언도 확보했다.

▲현장답사

지난 14일, 기자는 최 회장과 함께 추정 1지역과 2지역을 각각 답사했다. 이어 16일에는 최 회장과 다사향토사연구회원, 이 교수, 김 박사 등과 함께 또 2곳의 현장을 답사했다. 1지역과 2지역이 봉수지라는 쌍방 간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옛 고갯길인 마현령을 중심으로 오른편 1지역에선 두 봉수전문가의 주장대로 연조가 발굴됐고, 사방이 훤하게 트여 시계가 좋았다. 대응봉수인 성주 각산봉수와 화원 성산봉수도 잘 보였다. 석축도 일부 무너진 곳도 있으나 원형을 거의 보존하고 있었다. 다만 봉수지의 집터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마천산 봉수지 안내판도 인근 여러 곳에 설치됐다.

김 박사는 “1지역은 내지봉수의 일반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2지역은 마천산 문양배수지에서 봉화산으로 약 10분만 걸어가면 나온다. 2지역은 대나무 숲과 가시덤불에 둘러싸여 있다. 이곳은 문양역에서 내린 등반객이 찾는 마천산 등산로로 낮은 구릉이다. 키 큰 참나무와 소나무 등에 가려 대응봉수였던 성주의 각산과 화원 성산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등반객의 출입이 빈번하다. 2011년 5월 2지역 인근 등반로 바위에 누군가 ‘봉화대길’이라고 홈을 판 흔적이 보였다. 대나무 숲을 헤치고 들어가자 봉분이 여럿 보였다. 봉분은 석축으로 둘렀다. 동양문물연구원이 낸 보고서엔 이곳에서 기와편과 자기편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으나 전형적인 내지봉수와 달리 공간이 좁다고 했다.

김 박사는 “이곳은 건물지가 폐쇄되면서 내부에 무덤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 회장은 “봉수지 옆에 집터가 있는 것은 마땅하다”며 “주변에 있는 나무를 베고 시계를 확보하면 대응봉수는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서울 남산 봉수는 조선 초기 봉수인데 허물어져 수원화성에 있던 조선 후기 봉수를 본떠 잘못 복원했다”며 “봉수 양식도 시기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이 교수는 “봉수가 자주 끊어지는 등 효율성이 문제가 되자 봉수 폐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고 봉대의 사이가 너무 멀거나, 달려가서 보고할 수 없기 때문에 간봉(間烽)을 설치한 경우도 많았다. 경상도를 비롯해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경우는 숱하게 있다. 만약 추정 2지역의 시계가 확보돼 대응봉수가 확실히 조망될 경우 추정 1지역에서 2지역으로 봉수를 옮겼을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달성군은 마천산 봉수지 복원으로 2014년도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전통문화공모사업에 선정돼 국비 6억4천만원을 받아 놓은 상태다.<협찬> (주) 지오씨엔아이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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