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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는 3년반 전 쓰나미로 인한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역이다. 동북부에 있는 이곳은 많은 농산물을 생산해왔다. 원전이 바다에 인접해 일본산 수산물은 현재 우리나라 주부에게는 금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산 농산물도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예 일본 식품 전체를 멀리하고 있다. 한국 언론 등에서도 방사성물질 바다 누출 가능성을 보도하는 등 우리 시각에서는 일본에서의 생활을 편하게 보기 힘든 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후쿠시마의 주민들은 농사를 짓고 있고, 많은 일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그 농산물을 먹고 있다.
최근 일본 동북부를 여행하면서 후쿠시마현의 한 휴게소에 들렀다. 먹음직스러운 복숭아 사진과 함께 ‘지역특산물 신선한 후쿠시마 복숭아’라는 문구가 담긴 입간판이 놓여있었다. 그 뒤로 우리나라 휴게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복숭아 상자를 쌓아놓고 상인들이 복숭아를 팔고 있었다. 일본답게 소포장으로 담긴 복숭아를 꽤 많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고 있었다. 값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저렇게 쿨하게 원전, 그것도 사고가 난 지역의 농산물을 사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광경이었다.
놀라운 마음을 전하자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가 거든다. 자기 연구실에 후쿠시마가 고향인 후배가 있는데 부모가 농장을 하고 있어서 최근 정성껏 키운 배추를 가져왔는데 차마 아무도 그 배추를 먹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후배는 자기도 부모에게 원전사고 이후 벌레도 없을테니 농약을 안 쳐도 되지 않느냐 투의 말을 했다가 혼났다고 하면서 지금 자기 부모가 농사를 안 지으면 그 땅은 영영 버려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하더란다. 그렇다. 그 땅은 생산기능을 잃어버리는 순간 황무지로 변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일본인이 아무렇지 않게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먹고 있는 까닭인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일본사람들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가 안전하다고 하면 그걸 그대로 믿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고 따른다. 원전사고 당시에도 외국인은 극도의 불안감으로 수입 생수를 구해 밥을 하는 소동을 벌였어도 일본 사람들은 수돗물을 사용했고 일본산 생수를 마셨다. 학교에서도 교수들이, 학장이 공개되는 방사선 수치를 믿으라고 학생들에게 자신있게 말했고 학생들은 동요 없이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런 국민에게 일본정부는 줄곧 왜곡된 사인을 보내고 있다. 마침 광복절에 일본을 여행했더니 일본으로서는 패전일인 15일에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보냈다. 각료들은 100명이나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이웃 중국과 한국이 반발한다는 반응까지 일본 TV를 통해 보면서 복숭아를 사던 일본 사람을 떠올렸다. 우리나라나 중국이 왜 일본 각료의 신사참배를 반대하는지, 전범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일본 사람들이 생각을 할까. 세계가 분노하고 있는 위안부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가 설명하듯이 군수자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양식 있는 인사들이 양심선언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일본은 극우 코드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이웃임에 틀림없다. 일본의 서해, 일본해라고 부르는 우리나라 동해를 끼고 해안선을 달렸다. 끝없는 니가타의 수평선과 모래언덕을 보았다. 우리나라 해수욕장에서 유실되고 있는 모래가 저 니가타의 모래언덕에 쌓인 것일까. 해운대가 모래를 사서 해수욕장을 넓혔다던데 저 모래를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좋으면 바로 우리 땅이 보일 듯도 했다. 임진왜란 때는 저 바다를 따라 일본 전선이 달렸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있는 북송선도 저 바다를 통해 북한으로 사람을 수송했을 것이다. 더 이상의 아픈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류현순 한국방송공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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