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초 안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라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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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7-04   |  발행일 2014-07-04 제36면   |  수정 2015-01-30
[직업의 세계 業] 광고대행사 사람들
영남일보 위클리포유와 TBC ‘리얼인터뷰 通’이 지면과 방송으로 함께 찾아갑니다

한 사람의 첫인상이 결정되는 시간은 30초. 그 짧은 시간 안에 나에 대한 판단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그 시간도 길단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5초.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어…’ ‘저…’ 하면서 말을 고르다가 끝나버릴 시간에 단 한 문장, 단 한 장면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제 이들의 대답을 들어보자.

“광고는 남 잘되도록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꽤 괜찮지 않나요?”
◆ B&B커뮤니케이션즈 김종화 부사장 (56·광고대행사 경력 30년)

15초 안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라

“광고주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이다. 광고주가 성공하지 못하면 광고회사도 성공하지 못한다.” 김종화 부사장에게 광고주와 광고대행사의 관계는 갑과 을 관계가 아니라 동반자 관계다. 대구 최초의 광고대행사였던 거송기획에 입사해서 지금의 B&B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이 되기까지 꼬박 30년. 26세 때부터 지금까지 광고 외에는 그 어떤 일도 해본 적이 없는 천생 광고인이다.

아이 돌잔치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초대장에 어떤 문구를 써야 할까. 사진은 어떻게 넣으면 예쁠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는 게 부모들이다. 하물며 아이 돌잔치도 이럴진대 사업의 성패가 걸린 개업 행사나 제품 광고를 해야 할 땐 오죽할까.

1979년, 오일쇼크 이후 경제호황이 계속되면서 대구에서도 처음으로 광고대행사가 만들어졌다.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아 일일이 수작업으로 광고를 만들던 시절인 만큼 근무하던 직원만 해도 무려 100명. 당시 ‘광고계의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젊고 유능한 광고인들을 많이 배출해냈던 ‘거송기획’이 지금은 ‘B&B커뮤니케이션’(대구 동구 신천동)으로 그 이름을 바꿨다.

무려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B&B커뮤니케이션 김종화 부사장이 출근 후 처음 하는 일은 여전하다. 조간신문을 종류별로 읽는 것이다.

“결국 광고는 사회 전반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가능한 일이거든요. 광고주에게 컨설팅을 할 수 있으려면, 소비자들이 뭘 원하는지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광고 일의 매력이 바로 그런 거예요. 남 잘되도록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이잖아요. 그 사람이 잘되면 나도 성공하는 거니까. 다른 사람 돈 벌어주면서 내 돈 버는 직업, 괜찮지 않나요?”

그는 전형적인 ‘바른 사나이’처럼 보인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한 편의 짧은 공익광고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매일 보던 사물이 낯설게 느껴질 때 ‘쟁이’의 감각은 깨어난다”
◆ 광고국 성용석 국장 (45·경력 18년)

15초 안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라

“광고를 따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면 감이 딱 온다. 아, 우리가 됐구나…. 그때의 쾌감은 일단 한 번 느끼고 나면 그것을 알지 못하던 때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광고 일은 중독성이 강하다.”

대학 4학년 때 거송기획에 실습생으로 들어가 광고에 입문했다. 그사이 광고 일이 힘들어 전업을 하는 등 몇 번을 들락날락하면서 바람을 피웠으나 결국은 처음의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현재 지면 광고 디자인을 담당하며 B&B커뮤니케이션의 광고국장을 하고 있다.

성용석 국장의 책상엔 컴퓨터 모니터가 무려 세 대다. 하나는 작업용 모니터, 하나는 보조 모니터, 다른 하나는 검색창이 띄워진 PC모니터. 이 3개의 모니터를 넘나들면서 그는 광고 지면을 디자인한다.

“저희 일이 두서없습니다. 광고주에게 광고 시안 보내다가, 갑자기 디자인 수정사항이 생기면 그것부터 해주다가, AE들 미팅 일정 잡히면 광고 콘셉트 회의 하다가….”

그러다 보면 하겠다 해놓고 잊어버리는 일들도 생길 법한데, 어지간해선 그런 일이 없다. 해결해야 할 일은 ‘그때그때, 바로바로’ 처리하는 데다, 타고난 성격이 ‘꼼꼼이’다.

“특히 지면 광고 같은 건 글자 하나 잘못되면 광고를 안 하느니만 못하니까요. 같은 글씨를 두 번 세 번 반복적으로 확인하다 보면 나중엔 글씨가 낯설어져요. 매일 보던 사물이나 늘 보던 글씨가 낯설게 느껴질 때, 왜 그럴 때 있잖아요? 그 순간에 새로운 감각도 깨어나는 것 같습니다. 의심하고, 새롭게 보고…. 디자이너란 직업은 남들이 갖지 못한 감각기관 하나를 더 갖게 만드는 것 같아요.”

말을 듣고 보니 그의 얼굴이 새롭게 보인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사람이 새롭게 보이는 일, 흔히 있지 않은가? 어쩌면 광고나 디자인이라는 것도 단순한 ‘홍보’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도 알리고자 하는 것과 소비자의 ‘관계’를 새롭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시장에서 주워들은 아주머니의 한마디가 때론 명카피가 된다”
◆ 광고국 카피라이터 박진희 실장 (45·경력 18년)

15초 안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라

“내 이름 앞에 카피라이터, 그 다섯 글자가 붙는 게 꿈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진 않지만, 그 대신 24시간이 근무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광고 카피를 쓰는 건 문학을 하는 게 아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 주워들은 아주머니들 한 마디가 때로는 명카피가 되기도 한다.”

대학 졸업 후 광고 일을 시작했고 결혼, 출산, 육아를 하는 중에도 일손을 놓지 못해 프리랜서로 활동했던 못 말리는 카피라이터다.

오전 8시30분 아침 업무회의까지 끝나고, 10시가 다 돼서야 박진희 카피라이터가 출근했다. 게다가 오늘 출근했으니 내일은 휴일! 그는 월·수·금, 주 3일만 출근하는 진정한 ‘능력자’였다.

“직장인들은 부러워하겠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운전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머릿속엔 늘 광고문구만 생각하거든요. 직장인들이야 퇴근하면 일을 잊어버리겠지만, 광고인들은 그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는 24시간 벗어날 수 없죠. 정답이 없으니까.”

정답이 없는 일. 답을 찾는 게 목적인 사람들에겐 그것만큼 골치 아픈 일도 없을 것이다. 때로는 안목이 형편없는 광고주가 자신의 안목을 정답인 양 제시할 때도 있고,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소비자의 반응이 정답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정답이 없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틀린 답도 없다는 얘기! 그 자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면, 그는 이 일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한때는 제가 쓴 글을 보고, 사람들이 무슨 문학 하냐고 그러더라고요. 사실 참 힘들고 자존심 상할 때도 많았지만 생각해 보면 좋은 광고카피는 그 자체로 훌륭한 문장은 아니거든요. 핵심을 짚어내는 평범한 문장, 좋은 카피는 그런 것 같아요.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다른 것처럼, 알고 있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것! 그게 광고가 가진 설득력인 것이죠.”

역시 카피라이터다! 그의 얘기를 다 듣고 나니 단 하나의 간결한 문장만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이미 설득당했다.’


“1년 동안 촬영한 영상을 10분짜리로 만들어야 할 때도 있다”
◆ 영상제작국 최인욱 부국장 (43·경력 18년)

15초 안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라

“좋은 광고는 좋은 광고주가 만든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주는 최고의 광주와 작품성 있는 광고를 만들어보고 싶다. 때론 ‘광고주가 만족하니까 됐다’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가 광고인들에겐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창의성과 열정이 사라지는 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경력 18년. 영상제작국의 부국장인 최인욱씨는 세계 광고페스티벌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해보는 것이 꿈이다. 광고 일이 밥벌이가 아니라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에너지’라는 것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다.

30℃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그가 운동장에 서 있다. 무려 1년 동안 광고주의 행사 현장을 기록하는 일. 행사 현장이 제주도라면 제주도까지 간다.

“이건 기록의 성격이 강하니까 성실한 기록이 최고의 작품이 되는 겁니다. 홍보영상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니거든요. 15초짜리 상품광고를 해야 할 때도 있고, 40초짜리 공익광고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기록을 할 것이냐, 정보를 줄 것이냐, 이미지를 각인시킬 것이냐….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1년 동안 촬영한 영상은 몇 분짜리 작품이 되는 것일까.

“글쎄요, 한 10분? 15분?”

이건 뭔가 공평하지 않은 느낌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1년은 무려 52만5천600분이나 되는데 그걸 단 10분에 담는다고? 물론 365일 24시간 촬영을 하는 건 아닐 테지만, 도대체 찍은 분량의 얼마를 잘라내야 10분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시간은 길지 않아야 한다면서, 이것도 넣어달라 저것도 넣어달라고 하시는 분이 많거든요. 그런 요구사항을 다 만족시키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가죠. 고생은 고생대로 다 했는데, ‘이게 뭔가?’ 싶은 결과물이 나오고,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편집을 하는 거예요.”



광고대행사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우리의 촬영과 취재가 어디에서 끝나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들이라면 이럴 때 아마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을 텐데. 도대체 어떤 단 하나의 문장으로 그들의 열정과 노력을 정리해야 하는 것일까?

그다지 아이디어가 없는 나는 뾰족한 수가 없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그저 두 손바닥을 마주칠 뿐이다. 짝. 짝. 짝.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 이건 진심 어린 제작진의 박수소리다.)

글=이은임 방송작가 sophia924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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