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 樂] 제3부 대구의 새로운 지도 (4) 삼덕동 마을 만들기

  • 이은경 이지용
  • |
  • 입력 2014-07-01   |  발행일 2014-07-01 제8면   |  수정 2014-07-01
담장 허물자 ‘마을’이 돌아왔다

t

[Fun & 樂] 제3부 대구의 새로운 지도 (4) 삼덕동 마을 만들기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살았던 적산가옥을 보수해 개관한 삼덕동 빛살미술관. 빗살무늬 토기가 생활용품이면서 예술품이었던 것처럼 문화와 예술이 삶의 현장과 생활을 통해 만나야 한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Fun & 樂] 제3부 대구의 새로운 지도 (4) 삼덕동 마을 만들기
[Fun & 樂] 제3부 대구의 새로운 지도 (4) 삼덕동 마을 만들기
빛살미술관 옆 마고재. 1948년 지어진 개량한옥이다. 아이들이 이곳 마당에서 놀 때 마고할머니가 지켜주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담았다. 마을 축제 때 주 무대로 사용되며 도예체험공방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Fun & 樂] 제3부 대구의 새로운 지도 (4) 삼덕동 마을 만들기
삼덕동 주민센터 앞에 세워진 자전거 보관소 조형물.
[Fun & 樂] 제3부 대구의 새로운 지도 (4) 삼덕동 마을 만들기
삼덕동 지역아동센터. 삼덕동 201번지, 담장 허물기 1호집이다.
[Fun & 樂] 제3부 대구의 새로운 지도 (4) 삼덕동 마을 만들기
담을 허물고 무대를 만든 뒤 예쁜 벽화로 꾸민 삼덕초등학교 교정. 연못에는 갈대와 부들, 청포, 연꽃 등 습지식물이 심겨 있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정신적인 빈곤은 거대한 담을 통해 공고해진다. 풍요는 사적 이익의 틀을 만들고 담은 그것이 외현된 것. 나와 너, 내 것과 너의 것을 구분하려는 본성이 담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담을 허문다는 것은 그런 구분 따위를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마을이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도시에서 ‘마을’을 ‘만든다’는 작업은 담을 허무는 것에서 시작됐다. 사람들은 이웃사촌으로 함께 살던 예전의 마을을 복원하고, 21세기 삶에 맞도록 마을에 새로운 옷을 입혀 공동체를 살려냈다. 대구시 중구 삼덕동. 매일매일 ‘새로운 희망’이 만들어지고 있는 이곳에서.

◆생명력 있는 마을의 귀환

삼덕동 201번지. 1996년 이곳으로 이사 온 김경민 대구YMCA 사무총장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집의 담을 허무는 일이었다. 허문 담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조경석을 설치하고, 꽃을 심고, 길을 내고, 놀이마당을 만들었다. 그 공간을 이웃들에게 내주었고, 집은 자연스럽게 마을의 사랑방이 되었다.

담을 허물자 마음의 벽도 허물어졌고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넓어진 골목 위엔 동네 박물관과 이색 놀이터가 들어섰으며, 수시로 축제나 이벤트 행사가 열렸다.

김 사무총장은 “물리적 환경은 쉽게 만들고 변화할 수 있지만,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일단 유대가 끊어지면 다시 살리기 어렵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는 단순한 도시계획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덕동 주민센터도 1999년 담장을 허물었다. 은행나무가 자연스럽게 마을의 나무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대구YMCA는 2009년 구청과 주민센터를 설득해 벽화를 그리고 평상을 설치했다. 주민자치센터를 시작으로 삼덕초등학교, 빛살미술관, 동부교회, 마고재 등 10여곳의 담장이 허물어졌다.

담장허물기 1호인 삼덕동 201번지는 여러 차례 기능이 바뀐 뒤 현재 지역아동센터와 마을만들기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딸린 점포는 녹색가게로 이용되다가 일부 공간은 희망자전거 개발·수리센터로 사용되고 있고, 나머지 공간은 커뮤니티 비즈니스와 연계한 사회적 기업인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멀쩡한 담을 왜 허무노. 도둑이 들면 우짜라고…. 돈이 남아도나”라면서 혀를 끌끌 차던 주민들도 변화하는 마을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담장 허물기에 동참한 주민들은 사랑방 격인 삼덕동마을만들기센터에서 주민회의를 열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다다미 건축물을 개조해 동네 갤러리도 열었다. 병뚜껑으로 벽화 그리기, 암각화 벽화, 타일 벽화 등 10여곳에 벽화작업을 완성, 마을 전체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바꿔나갔다. 병뚜껑과 계란껍질로 벽화를 만들다 보니 동네 주민들이 질리도록 계란반찬을 먹어야 했던 일과 8천여개의 병뚜껑을 일일이 구하느라 동네에서 병뚜껑을 찾아볼 수 없었던 일 등은 이 동네에선 유명한 일화다.



◆마을 살리기는 아직도 진행 중

삼덕동 마을에 가장 많은 주민들이 모이는 날은 매년 5월5일을 전후해 ‘머머리섬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머머리섬’은 김포시에 있는 유도(留島)라는 섬의 옛 이름. 큰 홍수에 떠내려 온 섬 하나가 자리를 잡은 것이라고 하는데, 삼덕동 마을 잔치에서는 세상의 큰 흐름에 밀려 가까스로 삶의 자리를 지키는 곳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순항하던 삼덕동 마을 만들기도 2006년 동네가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고시되면서 홍역을 앓았다. 10여년 마을 만들기의 성과가 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 재개발을 막고 주민들을 화합시키기 위해 고민해 낸 축제가 바로 머머리섬 축제다. 축제를 할 때마다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아이들도 태권도, 웅변, 동화구연 등 스스로 장기자랑도 하고 다문화가정의 어머니들은 그들 나라의 전통문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김 총장은 “아파트 미분양 사태로 시공사들이 철수하면서 삼덕동에서 재개발의 열기는 시들고, 자연스럽게 마을만들기 운동은 계속될 수 있게 됐다”며 “마을만들기 운동이 위기를 맞은 재개발 시기에도 주민들과 함께 김장 나누기는 물론 집수리 등을 해주며 서로 소통했으며, 인형마임축제를 개최함으로써 화합을 도모해 마을 만들기가 유지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삼덕동에 몰아친 재개발 바람은 느슨했던 삼덕동 마을 만들기 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를 낳았다.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원룸이 잇따라 개발되는 지금, 마을은 또 다른 변화에 마주하고 있다. 근 20년간 진행된 삼덕동 마을 만들기 운동의 원형을 지켜내고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벽화를 만들겠다고 계란 껍데기를 빻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병뚜껑을 줍던 아이들이 이제 마을에서 활동가로 열심히 뛰고 있다. 도시의 마을은 계속 바뀐다. 그 변화 속에서 ‘도시인 듯 도시 아닌, 도시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그들은 입을 모은다.

누군가의 눈에는 초라해 보이고 낡아 보일지라도 삼덕동은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자식들을 키워 낸 마을이고, 코흘리개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난 곳이며, 담을 허문 자투리 마당과 골목길 사이 일생의 기억이 녹아있는 공간이다. 아직 충분히 살 만한 이곳에서 ‘사람이 마을을 만들지만, 돌이켜보면 마을이 사람을 되살려 내기도 한다’는 진리를 배우게 된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