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123> 펭귄북스(Penguin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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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6-07  |  수정 2014-06-07 08:09  |  발행일 2014-06-07 제14면
[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펭귄북스(Penguin Books)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가볍고 부담 없는 책, 오늘날 문고판 서적의 효시라 불리며 페이퍼백의 혁명을 일으킨 브랜드, 펭귄북스. 원하는 책을 주로 빌려서 읽을 수밖에 없던 시대에 간편한 크기와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문학을 제공한 펭귄북스는 영국 출판업계를 뒤흔들고 국민들의 독서량을 늘리며, 현대 생활의 새로운 문화를 불러일으켰다.

펭귄북스(Penguin Books)는 1935년, 당시 보들리헤드(Bodley Head) 출판사의 전문경영인이었던 ‘앨런 레인(Allen Lane)’에 의해 처음 발간됐다. 어느날 여행을 떠난 앨런 레인은 열차에서 읽을거리를 구입하러 서점을 찾았는데, 대중잡지와 빅토리아 시대의 고전 소설들만이 놓여 있어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당대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저렴한 문고본으로 낼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하여 1935년 7월, 6펜스 가격의 문고본 10종을 발간했고 이것이 펭귄북스의 시작이 됐다.

펭귄북스에서 발간한 10종의 페이퍼백은 ‘무기여 잘 있거라’ ‘스타일스 저택의 죽음’ 등 당대 유명작가들의 작품이었지만, 이미 나온 소설들을 중절지 이하의 용지를 사용해 재발간한 것이었다. 이 페이퍼백 1권은 담배 1갑 가격에 불과한 6펜스에 출시됐는데, 출판계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없다는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펭귄북스의 출간이 통상 7~8실링에 판매되던 하드커버 도서시장에 위협이 될까 두려워하며, 앨런 레인의 계획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경계했다.

일반 서점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책값이 너무 낮아 이윤을 기대하기 어려웠기에 펭귄북스의 책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판로 문제에 부딪힌 펭귄북스는 서점에서 눈을 돌려 모든 상품이 6펜스 이하에 판매됐던 ‘6펜스 시장’ 울워스(Woolworth)에 페이퍼백을 보내 판매를 시작했다. 펭귄북스는 판매대에 놓이자마자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당시까지 보들리헤드에 소속돼 있던 펭귄북스는 1936년 출판사로부터 독립해, 한 달여 만에 100만부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1년 후에는 300만부 돌파에 성공한다. 출판계와 서점의 불신 속에서 이뤄낸 펭귄북스의 값진 승리였다. 이렇듯 펭귄북스가 페이퍼백의 상징이 될 정도로 큰 성공을 이뤄낸 요인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펭귄북스는 대중이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서적을 살 수 있게 해, 값싼 도서는 수준이 낮거나 낡은 서적이라는 당시 출판계의 발상을 깨뜨렸다.

둘째는 이들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인 표지 디자인에 있다. 기존에 책명이나 저자를 강조했던 다른 출판사와 달리 펭귄북스는 브랜드를 강조했다. 표지에는 단순하고 깔끔한 글자체와 장르에 따라 파란색, 초록색, 오렌지색 등으로 구분하는 컬러 코딩, 귀엽고 대중의 눈길을 끄는 펭귄 로고가 담겨 있다. 이전의 문고본들이 책의 디자인과 글의 질에는 무관심했던 것에 반해, 펭귄북스의 책들은 디자인과 양질의 내용까지 갖추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도서 판로 다변화의 성공 요인이 있었다. 최초 판매처인 6펜스 시장 울워스를 시작으로 철도역 서점, 신문가판대, 담뱃가게, 백화점, 체인 상점 등으로 판로를 확대하며 나아가 ‘펭귄큐베이터’라 불리는 자동판매기를 설치해 기존 판로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펭귄북스의 이전에도 페이퍼백 출판이 시도됐지만 펭귄북스의 성공은 한 단계 높은 혁명이었다. 당시 출판업계뿐 아니라 독서 문화에도 일대 변화를 가져오며, 이들의 폭발적인 성공은 해외로까지 퍼져나가게 된다. 오늘날 펭귄북스는 브랜드의 표지를 이용한 다양한 디자인 상품과 엽서 등을 선보이고, 빈티지 북을 수집하는 마니아층의 형성으로 출판 브랜드로서의 새로운 장을 시도하고 있다. <프리밸런스·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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