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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목요철학인문포럼이 열린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시청각실을 어르신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아직도 지적 갈증을 느낀다는 이들은 “고학력 노인들을 위한 여가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
대구지역 세미나실에 새로운 단골손님이 나타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미나가 열릴 경우 이와 관련된 학문의 전공학생이나 관련종사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어르신들의 청강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일 오후 1시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시청각실. 150석 좌석이 꽉 찼다. 세미나는 2시부터 시작하지만, 상당수 어르신이 행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 강의실 귀퉁이에 준비된 간이 의자를 들고 통로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리안내를 맡은 도서관 직원은 “152석이 전체 정원인데 250명 정도 왔다”고 했다.
이날은 계명대 목요철학인문포럼에서 ‘바위에 새긴 문학- 선사 및 고대 미술 속 하이브리드 형상에 대하여’를 주제로 한 강연이 있었다. 강사는 국내 최고의 암각화 전문가인 동북아역사재단 장석호 책임연구위원이 맡았다. 이 포럼에는 현재까지 국내는 물론, 세계 최고의 석학이 강사로 참여해왔다.
전체 250명 중 90% 이상이 머리가 희끗하다. 60대 이상 고령자들이다. 중절모를 쓴 정장 차림의 어르신, 트레이닝복에 등산화를 신은 어르신들은 한 손에 책과 펜을 들고 강의실에 들어왔다.
오세철 중앙도서관 열람봉사과장은 “어르신들 덕분에 포럼이 대박이 났다. 주제가 어려운 만큼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며 “일부 젊은 층에서 ‘일찍 와도 자리가 없다’고 항의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고 했다.
도서관 직원들에 따르면 이곳 세미나 단골 어르신들은 여러 부류가 있다. 먼저 은퇴한 교수나 전직 고위공무원이 대표적이다. 이 강좌 수강생 중 20~30명이 이런 부류다. 자기가 평생 몸담았던 분야에 관한 세미나에 들러 열심히 듣고 질문하는 식이다. 배움도 좋지만 사람을 만나러 오는 실버족도 있다. 강의를 들은 뒤 차 한 잔에 담소하며 그날 강의를 비롯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취미 치고는 고급 취미인 셈이다.
어르신들이 세미나장의 단골이 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가시설 부족을 첫 요인으로 꼽는다. 황남희 박사의 논문 ‘한국 노년층의 여가활동 유형화 및 영향노인 분석’(2013)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노년층의 72%가 특별한 여가활동 없이 심심하게 살고 있다.
어르신들의 고학력화도 주된 원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0년만 해도 60세 이상 연령층 중 전문대 졸업 이상 학력자가 10만7천여명으로 전체의 3.24%에 불과했지만, 2010년엔 전체 노인의 10.3%(78만3천여명)가 전문대 이상 졸업자로 파악됐다.
이날 강의에선 무려 1시간 동안 질문이 쏟아졌다. 진행자가 질문 기회를 중간에 잘라야 할 정도로 손을 드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반구대 암각화 논란의 핵심을 질문하거나 이집트의 샤머니즘에 대해 물었다. 강사는 학계에 미발표된 연구결과까지 예로 들어가며 성실하게 답변했다.
전직 고교 교사인 정청일씨(70)는 “3년째 이 포럼에서 문·사·철을 배우고 있다. 주변에 퇴직 후 자신들의 지적 갈증과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세미나나 포럼 등을 찾아다니는 노인들이 적잖다”며 “정부는 물론 지역사회가 고학력화에 따른 노인들의 욕구에도 눈을 돌려 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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