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한·곽경순·김재태·박재길·박인석 라이더(왼쪽부터)가 “달구벌대로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하자”고 제안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창남기자 argus61@yeongnam.com |
온난화로 고통받는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방법 중 한 가지는 바로 자동차 핸들을 놓는 것이다. 얼핏 보면 단순하고 쉬운 것 같은데 간단치 않다. ‘지금부터 교통카드로 버스나 지하철, 철도를 이용하자’고 작심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승용차가 주는 편리함과 신속성에 우리 몸은 너무 익숙해져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아편 같은 존재랄까.
반면 차는 타인의 생명을 끊임없이 앗아가고, 때론 운전자의 삶을 앗아가기도 한다. 음주운전이나 교통신호 위반으로 행인을 덮치는 등 사고를 내면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받게 된다. ‘마이카 시대’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이다. 게다가 호흡기 질환과 열섬 현상, 열대야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250만 인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대구의 교통 패러다임을 이제는 바꿔야 할 때가 왔다. 성장과 개발 지상주의만으로는 시민에게 웃음과 행복을 완벽하게 주지 못한다. 이제 생태와 환경, 그린에코라는 담론을 공론화할 때가 됐다. 타이밍도 나쁘지 않다. 차기 대구시장에게 대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짚어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우리 삶에 이제 ‘탄소 제로 라이프’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여기 두 바퀴로 자신은 물론 대구를 경쟁력 있는 도시로 바꿔보겠다고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영남일보 이번 주 Y인터뷰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자전거 마니아 5인방이 최근 한 자리에 모여 자전거 토크에 나섰다.
■ 토크 참석자
▲김재태 대구시자전거연합회 사무국장
▲곽경순 북구 모두 MTB 클럽회장
▲이병한 북구 자전거연합회 사무국장
▲박인석 수성구자전거연합회 사무국장
▲박재길 적토마MTB클럽 회장
-대구에도 자전거 인구가 급증했다.
김재태 국장= “올해 20년째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해마다 느는 것 같다. 이달부터 봄꽃이 피는데 주말이면 신천과 금호강 자전거도로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문제는 아직도 일부는 자전거 헬멧과 무릎보호대 같은 안전 장비를 갖추지 않고 타는 점이다. 실제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분석 자료를 보면 전국 기초단체 가운데 자전거 교통사고 1위는 대구 북구다. 또 달서구 역시 전국에서 3위다. 대구에 그만큼 사람들이 자전거를 많이 탄다는 것인데 이와 비례해 사고도 잦다. 안전 의식이 필요하다. 상대를 배려하는 라이딩 스킬과 매너를 배워야 한다.”
곽경순 회장= “북구에만 13개 자전거 클럽 동호회가 있고, 대구 사람들로 구성된 온라인 클럽만도 1천 개 넘는다. 그만큼 대구 사람은 자전거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는 27일에는 강북고를 출발해 실골인도, 조양공원, 신동 임도 30㎞ 구간을 달리는 칠곡MTB연합라이딩 대회가 열린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다보면 신천 자전거도로만 해도 온전한 자전거 도로가 아니라 보행자 전용구간과 운동기구 구간이 혼재돼 사고 위험이 크다.”
이병한 국장= “대구 250만 인구 가운데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하는 인구는 3%다. 이는 전국 대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전거 전용도로는 전체 700여㎞ 가운데 90㎞밖에 되질 않는다. 자전거 인구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자전거 전용도로도 늘어날 수 있다. 자전거 관련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대구시에 계속 요구를 해야 한다.”
박인석 국장= “수성구에도 현재 5개의 자전거 클럽이 연합해 활동하고 있다. 자전거에 관심 있는 수성구민이라면 누구나 활동할 수 있다. 자전거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생활체육 종목이다. 대구시생활체육회와 자전거연합회에서도 구·군 단위의 자전거 연합회 결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8개 구·군 가운데 연합회로 결성된 곳은 북구와 중구 등 4곳밖에 되지 않는다. 연합회에 참여하면 자전거 여행코스와 라이딩 아카데미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박재길 회장= “자전거 인구가 늘어나는 반면 부상자나 사망자도 급증하고 있다. 이에 필수적인 것이 자전거 보험이다. 구미와 상주시의 경우에는 시민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대구시는 머뭇거리고 있다. 250만 인구가 세금을 내는데도 10억원의 보험료 비용이 아깝다고 하면 말이 안 된다.”
복 받은 대구시민
대표적 분지 지형에다
낙동·금호강 잇는 전용길까지…
지역 향하는 전국 라이더 확산
명소마다 스토리텔링 입히면
훌륭한 관광자원 될 것
동호인 급증했지만…
북구에만 13개 클럽 있고
온라인클럽은 1000개 넘지만
온전한 전용도로 부족 등으로
교통사고율은 최상위권
안전의식도 키워야
갈 길 먼 에코도시
市, 자동차 중심 행정 여전
자전거보험 등 인센티브도 난색
세계 친환경도시 행보와 역주행
도심 잇는 전용도로 확충 등
적극적 지원 필요
-20년 전과 비교하면 대구에 차가 많이 늘었는데 이로 인한 사회적 기회비용도 크다.
김 국장= “자동차로 인해 목숨을 잃는 대구시민이 줄지 않고 있는데도 대구시나 경찰은 계속 자동차 중심의 행정과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언론이나 전문가의 시각도 자동차 중심에 갇혀 있다. 도로 정체나 주차공간 부족 문제로 인한 불편만 강조될 뿐 이런 현상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분석하거나 문제 제기를 하려는 움직임이 없다. 시내 주차장 요금이 비싸다면 차를 끌고 나가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주차장 요금이 비싸다고 언론에서 비판하면 대구시가 꼬리를 내리는 식(요금 인하)이다. 이는 분명 자동차 중심의 시각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캐나다나 유럽 등 선진국에 가면 1시간 시내에 주차하면 2만원에 가까운 주차료를 내야 한다. 물론 물가 차이도 있지만 자전거와 전기차 등 친환경 교통수단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나라에서 자가용은 대접받지 못한다. 하지만 대구를 비롯해 한국은 여전히 자동차 중심으로 모든 게 결정된다.”
박 회장= “도로에 차가 늘어난 만큼 운전자들이 자전거에 대해 배려나 인식을 전혀 하지 않는다. 자전거도 엄연히 차다. 도로교통법 제2조 17호 가-(4)에는 자전거를 차로 규정하고 있다. 또 1949년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작성되고, 1952년 3월26일부터 발효된 도로교통에 관한 협약을 보면 자전거를 차로 보고 있다. 자동차 운전자는 우선 자전거가 차도에서 차와 함께 주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대구시도 이제 더 이상 인도 위에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적극적으로 확대해 대구 도심 도로에 ‘차 반 자전거 반’인 시대가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곽 회장= “일부 자전거 라이더들은 차도에서 자전거를 타면 위험하다고 하는데 이는 오해다. 한 설문조사를 보면 자전거를 적극적으로 타는 사람의 81%가 차도를 통해 자전거를 타고 있고, 일반적으로 외출용으로 자전거를 타는 응답자의 76%는 인도가 아닌 차도에서 자전거를 탄다. 이는 차도가 자전거를 타는데 훨씬 편리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민들의 의식이 아직 부족하다.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걷거나 운동을 하면서 사고로 인해 안타까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줄지 않고 있다. 또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면 매연을 많이 마신다고 하는데, 사실 디젤차 뒤를 따라다니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대기 환경에서 바람방향 등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더라도 매연을 많이 마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동차 내에서 공기 오염으로 인해 호흡기질환에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도시마다 명물 자전거 도로가 있는데 대구와 비교하면 어떤가.
김 국장= “사실 대구사람들은 복이 많다. 대구의 지형 자체가 분지 아닌가. 산 아래쪽은 대부분 평지다. 자전거 타기에 매우 좋다. 더군다나 대구에는 금호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다. 낙동강 국토종주 자전거 도로를 타고 관광을 위해 대구를 찾는 라이더도 적지 않다. 그런 면에서 대구 팔공산과 앞산, 비슬산 등 명산에 얽힌 스토리텔링을 통해 포인트마다 표지판과 스토리보드를 입히면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될 것이다. 대구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대구시 공무원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탁상행정으로는 진정한 현장 수요자를 위한 정책이 나올 수 없다. 특히 차기 시장으로 당선되는 분은 앞으로 대구를 친환경 그린 도시로 선포해 자전거 전용도로 확충과 친환경 교통수단 이용에 따른 인센티브 제공 등 적극적인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박 국장= “서울은 한강을 중심으로 자전거길이 연결된다. 대전은 갑천을 중심으로 한 자전거 도로가 멋지다. 창원의 경우 ‘누비라’라는 자전거 인프라가 인상적이었다. 공업도시 특성 상 시민의 건강을 배려한 자전거 수리, 대여 시설 등이 많고 휴식시설도 적지 않아 편리하다. 그러나 대구는 갈 길이 멀다. 특히 도심과 도심을 연결하는 자전거 전용도로 확충이 시급하다. 또한 자전거 관련 시민단체끼리 잘 뭉쳐야 한다. 대구시도 해마다 자전거 관련행사를 하면서 이용자 중심의 보다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탄소제로 도시, 에코그린 도시로 대구가 변화하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김 국장= “어릴 적부터 대구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러나 항상 느끼는 것은 대구가 변화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공직사회가 단적인 예다. 시민의 눈높이 수요에 맞춘 정책을 개발하고 예산을 잘 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자전거 행정을 봐도 그렇다. 애초에 자전거와 인도 혼용도로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모든 구·군에 확충해야 했다. 몇 년 전 서구청에서 자전거 정책을 담당했던 한 공무원을 정말 칭찬하고 싶다. 당시 서구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었다. 그러나 두류공원 네거리에서 북비산로터리에 이르는 구간까지 자전거 전용도로를 깔았다. 물론 상가와 가까운 도로에는 자동차가 불법 주차를 일삼았다. 그 공무원은 24시간 계속해서 불법주정차 딱지를 발급했다. 그런 노력을 하다 보니 운전자들은 얼씬도 못했다. 오로지 자전거만 달릴 수 있는 도로가 확보된 것이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혈세로 자전거 도로를 만들면서 그냥 선만 긋고 볼라드만 세운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현장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곽 회장= “대구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어떻게, 어떤 절차에 따라 할 것인가가 문제다. 나는 개인적으로 생태주의자는 아니지만 대구에 정말 후세대가 만족할 만한, 쾌적한 친환경 인프라가 많이 들어섰으면 좋겠다. 세금으로 ‘콘크리트’만 늘리지 말고 집을 지어도 숲을 동시에 늘려, 시민이 살기 좋은 곳으로 대구가 변했으면 좋겠다. 자전거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타야 한다. 차는 가급적 세워두고, 자전거나 친환경 교통 수단으로 활동하는 시민에게 대폭적인 혜택을 줘야 한다. 차기 시장과 지도층, 시민단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구가 얼마든지 친환경적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정리=이창남기자 argus6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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