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문경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했던 이모씨(35)는 몇 년 전 대구에 새 둥지를 틀었다. 결혼 후 자녀까지 뒀지만 변변한 직업이 없어 늘 궁핍한 생활을 했다.
그러다 대구에서 후배 서모씨(30)를 만나면서 다시 어긋난 생각을 하게 된다. 3년 전 구미의 한 직업 소개소 일을 하면서 경찰을 사칭해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에게 금품을 뜯어냈던 시절을 떠올렸던 것. 불법체류자들은 신분상의 약점 때문에 쉽게 신고를 할 수 없기 마련이다.
이씨는 자신의 범행에 그림자 역할을 할 사람으로 서씨를 낙점했다. 당시 사업실패로 의기소침해 있던 서씨는 이씨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범행 준비는 이씨가 도맡았다. 일단 경찰의 필수품인 수갑을 인터넷쇼핑몰에서 구매했다. 범행은 한 달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범행수법은 간단했다. 외국인 밀집지역인 성서공단, 달성공단 주변 원룸을 찾아가 무작정 노크를 한 뒤 혼자 있는 이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인기척이 없고, 무리를 지어 살거나 저항이 심한 외국인은 범행대상에서 일찌감치 제외시켰다.
첫 피해자는 달성군 논공읍 한 원룸에 거주하는 중국 여성 림모씨(24)였다. 이씨는 림씨에게 “경찰인데 단속나왔다. 외국인등록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순간 림씨가 당황하는 모습을 본 이씨 등은 불법체류자임을 직감하고, 곧바로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인계하겠다”고 협박했다. 강제출국이 두려웠던 림씨에게 이들은 “눈감아 주겠다”며 현금 200만원을 요구했다. 월급 대부분을 이미 가족에게 송금해 돈이 없다고 하자 이들은 80만원을 강탈했다.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까지 동행해 그 자리에서 돈을 인출해간 것이다.
이 같은 수법으로 이씨는 외국인 여성 5명을 포함해 총 8명으로부터 300만원을 뜯어냈다. 피해자의 국적도 중국,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다양했다. 이씨는 과거 한국말을 못하는 외국인에게는 외국인 지인에게 통역까지 시키며 자신이 경찰임을 입증시키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씨의 범행은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피해자를 일일이 설득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피해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범죄피해 불법체류자의 통보의무면제’를 일일이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경찰은 이후 ATM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대구경찰청 외사계는 14일 이씨를 구속하고, 같은 혐의로 서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씨가 자신의 범행 노하우와 불법체류자의 약점을 이용해 궁핍한 삶을 해결하려 했다”면서 “경찰은 불법체류자 단속을 주목적으로 수사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