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에서 사용하게 되어 있는 온누리상품권이 대형 프랜차이즈에서도 사용될 수 있어 영세상인 보호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온누리 상품권 사용이 가능한 대구시 중구 메트로센터에 있는 프랜차이즈점.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온누리 상품권이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지하상가 등도 시장으로 등록이 가능한 탓에 대형 프랜차이즈 역시 지하상가에 있으면 합법적으로 온누리상품권을 취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누리 상품권은 별도의 유통기한이 없어 이용객은 시간을 두고 전통시장이 아닌 대형프랜차이즈를 찾을 가능성도 그만큼 높은 상황이다.
■ 허술한 유통
20일 오후 대구시 중구 메트로센터. 총 403개의 매장이 밀집한 대구 최대규모의 지하상가인 동시에 대구에 등록된 149개 시장 중 하나다.
의류·휴대폰·화장품·음식점 등 전 품목에 걸친 다양한 매장이 있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빵집 및 커피숍, 대형 잡화점 등도 있다.
취재진이 처음 찾은 곳은 프랜차이즈 빵집인 파리바게뜨. ‘공룡 프랜차이즈’라 불리는 SPC그룹이 운영하는 파리바게뜨는 전국에 3천332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다. ‘동네 빵집’이 사라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온누리상품권의 취지와는 거리가 먼 셈.
하지만 4천700원 상당의 빵을 고른 뒤 1만원짜리 온누리상품권을 내밀자 점원은 아무렇지 않게 거스름돈을 줬다. 매장 직원은 “1만원 이하 상품권은 80% 이상 써야 잔돈을 현금으로 주지만, 온누리 상품권은 현금과 똑같이 사용해 그냥 잔액을 다 내준다”고 말했다. 물론 현금 영수증 발급도 가능했다.
소비자 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상품권 금액이 1만원 초과인 상품권은 금액의 60% 이상, 1만원 이하인 상품권은 금액의 80% 이상 사용하면 잔액을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상품권 2매 이상을 동시에 사용한 경우, 상품권 금액의 합계액을 기준으로 한다.
바로 옆에 위치한 던킨 도너츠와 할리스커피 역시 마찬가지. 온누리상품권을 이용해 도너츠 및 커피의 구입이 가능했다. 던킨 도너츠 역시 역시 SPC그룹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업체로, 전국에 907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다. 할리스커피는 국내 396개, 해외 7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다.
인근에 있는 잡화전문점인 ‘다이소’에서도 온누리 상품권은 현금처럼 사용됐다. 다이소는 한국과 일본 기업이 합작해 만든 상표로, 일본의 1000엔숍을 표방해 저렴한 가격으로 주방용품부터 생활잡화, 학용품 등 다양한 상품을 파는 곳. 대구·경북에는 64개, 전국에는 945개의 매장이 있다. 다이소 점원은 “온누리상품권도 당연히 사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메트로센터 내 GS25편의점에서도 사용이 가능했다. GS25편의점은 국내 편의점 대부분을 장악한 대기업인 GS, 롯데, 보광의 프랜차이즈 중 하나다.
온누리 상품권은 화장품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도 환영 받았다.
이날 찾은 달서구의 대표적 지하상가인 두류1번가. 한 화장품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온누리 상품권의 사용 가능 여부를 묻자 “겉모습은 상가처럼 보이지만 시장으로 등록돼 있어 당연히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두류 1번가에는 약 5개, 메트로센터 내에는 10여개의 국내 유명 화장품 프랜차이즈가 위치해 있다.
메트로센터의 한 업주는 “명절이 다가오면 온누리상품권으로 결제하는 사람이 부쩍 는다. 온누리 상품권을 구매해야 하는 공무원 및 직장인 가운데 전통시장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작년 대구 110억 판매 189억원 회수
상인들 “상상 안돼…다른 곳서 유통”
■ 전통시장 체감 못해
21일 대구시에 따르면, 2009년 3억4천만원어치 판매됐던 대구지역 온누리 상품권은 2010년 10배 가까이 늘어난 30억8천800만원으로 늘어난 뒤 작년에는 109억7천500만원으로 증가했다. 올 들어 대구은행 2억원, 종합유통단지 관리공단 1억원, 대구경북슈퍼마켓유통연합회 2억원 등 20일 현재까지 20억원 이상이 판매됐다.
판매도 급증했고, 회수율도 대구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온누리 상품권을 담당하고 있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온누리 상품권 판매·회수 실적을 보면, 대구에서 지난해 110억원어치를 판매했고 회수된 금액은 189억원에 이른다. 이는 전국 최고 회수율(173%)로, 전국 평균(87%)보다 두 배가량 높다.
특히 2009년부터 발행한 온누리 상품권은 지금까지 대구에서 309억원어치가 팔렸지만, 회수율은 180%로 556억원을 거둬들였다. 타 지역에서 팔린 상품권이 대구에서 많이 유통됐다는 의미다. 반면 서울, 경기 지역의 회수율은 각각 63%와 56%로 대구보다 현저히 낮다.
하지만 전통시장 상인들은 이 같은 판매 상황을 잘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서문시장 한 상인은 “명절 등을 앞두고 단체장 등이 많이 오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온누리 상품권이 들어오긴 하지만 이렇게 많이 팔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서 “아마도 전통시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현행법상 마땅한 규제 방법은 없어
규모 등 가맹점 등록기준 강화 필요
■ 유통제도 개선 시급
온누리 상품권 가입점 가운데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 부적절하다고 지적받는 상점이 적지 않다.
21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홈페이지에서 온누리 상품권 가맹점 현황을 보면, 울산 중구 ‘젊음의 거리’에는 피자헛, 롯데리아, 맥도날드,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등이 등록돼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역 지하쇼핑센터’와 인천 부평구 ‘연신내 지하상가’에는 파리바게뜨가, 인천 남동구 ‘인천모래내전통시장’과 경기 수원의 ‘매산로테마거리’ 그리고 광주 동구 ‘충장로 시장’에는 CJ푸드빌의 ‘투썸플레이스’가 각각 가맹점으로 돼 있다.
더욱이 안동 중앙신시장에는 ‘삼성전자 대신판매장’이, ‘포항 중앙상가’와 ‘경주 중심가상가’에는 각종 등산과 골프의류 매장이 가맹점으로 등록돼 온누리 상품권을 합법적으로 받는다.
전문가들은 가맹점의 규모 제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등록 기준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백운배 교수(대구미래대 서비스 경영학과)는 “정부가 전통시장 및 상점가 특별법을 통해 대형 상점도 시장의 테두리 안으로 규정하며 생긴 문제다. 이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온누리상품권 정책의 대표적인 모순사례라고 볼 수 있다”면서 “현재는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지만 정부가 지금이라도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맹 사업을 진행한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진흥원은 관련법이 갖춰지기 전에 해당 시설이 ‘시장’으로 등록됐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가맹점 등록 취소를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온누리상품권 담당자는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등은 노점 등에서 어렵게 일하는 전통시장 상인보다 형편이 낫다. 그런데 이들에게 온누리상품권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또 다른 혜택이란 지적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상점가와 전통시장 내 대형 프랜차이즈도 관련법에 따라 가입할 수 있게 돼 있는 만큼 본사 직영이 아니면 이를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온누리 상품권 가맹점 가입에는 전통시장뿐만 아니라 유통사업발전법에 따라 지자체에 등록된 상점가 내 점포 등도 포함되기 때문에 일반 상가 등의 가입이 가능하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가맹점 등록을 취소하면 행정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한 이사는 “전통시장 내에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는 고객 유입 등의 효과가 있지만 일반 상점가 등에 입점한 경우에는 전통시장 활성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관련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온누리 상품권이 전통시장에서 제대로 유통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최우석기자 cws092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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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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