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남성해방에 관하여

  • 입력 2013-08-10   |  발행일 2013-08-10 제23면   |  수정 2013-08-10
[토요단상] 남성해방에 관하여

진정한 남녀평등 위해선

남자로서 누리는

특권 내려놓아야

남녀의 해방을 위해선

함께 연대해야 돼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을 놓고 네티즌들은 ‘존경’에서 ‘조롱’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 그의 죽음에서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죽음을 무릅써가며 극단적 퍼포먼스를 벌인 것은 생의 막다른 골목에 달했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으리라. 아무튼 그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가 받는 고통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 대표의 주장에 공감한 것은 ‘일베’라는 사이트에서 노는 막장 네티즌들만이 아니다. 일베와 관계없는 많은 남성들이 성 대표의 주장에 적어도 일부나마 공감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실제로 많은 남성들이 이 사회에서 ‘남자’ 노릇하느라 고통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성 대표의 죽음이 환기시켜야 할 공적 의제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어야 한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면서 여성은 경제적 하층의 남성에게는 일자리를 놓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가 되었다. 심지어 ‘골드미스’라 불리는 여성들은 웬만한 남성보다 경제력이 우월하다. 사회 전체로는 여전히 여성의 지위가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으나, 하층남성들의 눈에는 여성의 지위가 자기들과 같거나, 심지어 더 높아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런 눈에는 당연히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이 부당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부’를 공격한다.

게다가 사회의 통념은 여전히 남자가 여자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할 것을 기대한다. 경쟁의 규칙이 남자에게 유리하다 보니,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하다. 문제는 그 경쟁에서 밀려난 남자들이다. 그들은 여자보다 경제적으로 나을 게 없으나, 사회적 통념은 그들에게 부당한 성역할을 부여한다.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다. 이 부당함에 대한 불만이 ‘더치페이’에 대한 요구로 나타나고, 그 요구를 우습게 여기는 여자는 ‘김치녀’라 공격을 받게 된다.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이나, 남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관행은 남녀가 아직 평등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취업, 승진, 보수의 측면에서 여성이 불리하다보니 정책적으로 여성을 우대하는 것이고, 남자는 돈 벌고 여자는 살림하는 게 당연시되다보니, 돈 버는 남자가 돈 못 버는 여자의 밥값을 내주는 관행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이나 관행을 없애는 지름길은 그것의 원인이 된 성적 불평등을 없애는 데에 있으리라.

남성의 울분을 대변하려 했다면 ‘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활동을 했어야 한다. 상황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없다 보니, ‘김치녀’나 ‘여성부’를 공격함으로써 훼손당한 남근의 상처를 치유하는 ‘심리적’ 자위로 흘러버린 것이다. 남성연대는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 입법화하는 시민단체라기보다는 자극적 언행으로 사회적 관심을 끄는 노이즈 마케터에 가까웠다. 그 경향이 결국 ‘투신’이라는 극단적 퍼포먼스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억압하는 자는 그 억압하는 행위로 인해 자신도 억압당하기 마련이다. 가령 불평등 사회에서 남자들은 사회적으로 여자들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진다. 하지만 그 짐은 남자가 여자보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독점하기 때문에 짊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남자’로서 사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남자로서 누리는 특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여성해방은 남성해방 없이 불가능하고, 남성해방은 여성해방 없이 불가능하다. 해방을 위해 남녀는 연대해야 한다.

하필 차별받는 여성을 공격하는 이유는 뭘까? 그 바탕에는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가부장제적 의식, 즉 ‘내 비록 다른 남성에게는 뒤졌지만, 적어도 여자들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남성들은 우선 이 가부장제의 허위의식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여성과 남성의 연대로 성차별이 사라지는 날, 여성만 우대하거나 남자만 밥값 내는 것은 이상한 제도나 관행으로 여겨져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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