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헤이트 스피치

  • 박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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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6-22   |  발행일 2013-06-22 제23면   |  수정 2013-06-22
[자유성] 헤이트 스피치

한국인이 많이 사는 도쿄와 오사카의 거리에서 “조선인은 떠나라” “죽여라”와 같은 무시무시한 구호를 외치는 일본 신(新) 우익단체의 시위가 부쩍 잦아졌다. ‘바퀴벌레, 구더기 조선인’과 같은 피켓을 들고, 파리채로 태극기를 때리는 퍼포먼스를 하며 행진하기도 한다. 일본 재특회(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 등이 중심이 돼 벌이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증오표현)’다.

헤이트 스피치는 인종, 민족, 종교, 국적, 직업 등으로 나뉘는 특정한 집단에 대해 사회적 편견과 폭력을 부추길 목적으로 행해지는 폄훼·위협·선동을 뜻한다.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조선인 학살도 헤이트 스피치가 부른 참극이었다. 흉흉해진 민심을 잡기 위해 일제는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지목했다. 신문은 ‘수상쩍은 조선인’과 같은 선정적 제목으로 조선인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겼다. 그 결과 수천 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했다.

중도성향의 아사히신문은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일본 내 헤이트 스피치가 90년 전 관동대지진의 암흑기를 떠올리게 한다며 ‘증오표현’을 비판했다. 아사히는 언어폭력은 단속 이전에 상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국 신화통신도 일본 헤이트 스피치를 “나치의 주도 아래 이뤄진 ‘수정의 밤(Kristallnacht)’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수정의 밤’은 1938년 독일 외교관이 한 유대인에 의해 살해되자 나치와 동조세력이 저지른 유대인에 대한 테러를 가리킨다.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의 지휘 아래 ‘분노한 독일 국민의 자발적 시위’로 위장한 유대인 학살의 전조(前兆)였다.

헤이트 스피치가 횡행함에 따라 우려스러운 것은 재일동포들의 처지다. 일본 수준으로 대응할 일은 결코 아니다. 타자를 존엄으로 대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확고히 심는 것이 그들에 대한 가장 큰 응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다문화 가정,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편견·폄훼가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헤이트 스피치, 우리부터 돌아볼 일이다.
박경조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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