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2월 설립돼 내년이면 창립 60주년을 맞는 성광성냥(의성군 의성읍) 직원이 습기에 강한 검은색 발화연소제가 발린 하절기용 성냥개비 건조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성광성냥은 지난달 30일 ‘경북도 향토뿌리기업’ 인증을 받았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하루에 한 갑 두 갑, 일 년에 열두 갑/ …감추고서 정문을 나설 때…”
군복무를 했던 50대 이상 남자라면 누구나 한때 즐겨 불렀던 노래 가사다.
이 노래가 나오게 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공장이 인천에 있었기 때문이다. 광복 직후 설립된 인천의 성냥공장은 세월을 뒤로 한 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 피란민들에 의해 설립된 의성의 성냥공장은 아직도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성냥공장으로 버티며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1954년 2월 설립된 성광성냥(대표 손진국·의성군 의성읍 도동2리)은 1회용 라이터의 급속 확산으로 인천을 비롯해 용인, 천안, 논산, 영주, 진영 등지에서 호황을 누리던 성냥공장들이 하나둘 씩 문을 닫거나 업종을 전환할 때도 꿋꿋이 성냥을 고집했다.
성광성냥은 내년이면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이젠, ‘인천의 성냥공장’이 아닌 ‘의성의 성냥공장’으로 노래 가사가 바뀌어야 할 듯하다.
문제는 이 공장의 미래도 그리 밝지 않다는 데 있다. 손진국 대표의 차남 손학익 상무가 광고기획사를 병행하며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성냥공장 직원들의 급여를 주고 있을 정도다.
성광성냥은 지난달 30일 경북도가 올해 처음으로 지정한 ‘향토뿌리기업’에 선정됐다. 도는 향토성과 역사성이 있고 30년 이상 지역경제에 버팀목 역할을 해 온 장수기업 27개사를 선정해 향토뿌리기업으로 인증했다.
향토뿌리기업 인정 기념 공식 현판식도 이곳 성광성냥에서 열렸다. 국내 유일의 성냥공장이란 상징성과 환갑에 가까운 역사성을 고려했다.
54년 설립 당시 사원이던 손 대표가 직접 안내를 맡아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복규 의성군수, 경북도의원 등 행사 참석자들에게 성냥 제조과정과 성냥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과거로 가는 타임캡슐을 탄 듯 생산현장의 생생한 모습에 김 도지사는 물론, 향토뿌리기업으로 선정된 다른 업체 대표들 모두 전통산업의 보존 필요성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한때 200여명이 근무하며 구내식당이 번성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성광성냥은 80년대 후반부터 난방·취사 방식의 변화와 1회용 라이터의 대중화 등으로 산업의 쇠퇴와 함께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 대표의 성냥 사랑은 가업승계로 이어졌다. 15년 전 일반회사에 다니던 둘째아들 학익씨는 적자만 쌓여가는 일인 줄 알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두 말 없이 받아들였다. 손 상무도 성냥에 대한 사랑만큼은 아버지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공장 사무실이 방이었을 당시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손 상무는 “경영압박으로 8년 전 1t짜리 윤전기(성냥 제조기계)를 방글라데시에 팔았을 때는 사실 폐업까지 생각했다”며 “하지만 8명밖에 되지 않는 직원이자 동료인 아주머니들이 끝까지 남아 있겠다고 해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머지않아 대전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 각각 1개씩의 성냥공장이 생길 것이라고 장담한 손 상무는 “쓰나미 등 큰 재해가 발생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불을 지피는 도구다. 라이터는 물에 한 번 젖으면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지만, 성냥은 말리면 언제든 다시 쓸 수 있다”며 “이젠 성냥공장을 일반 산업과 같은 개념으로 봐서는 안된다. 유럽은 물론, 일본에서도 이미 성냥을 재난대비 용품으로 인정해 유사시 바로 생산라인이 가동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품질을 높이면서 재난대비 시설·용품으로 체계화한 일본에서는 1980년 이후 대부분 문을 닫았던 성냥공장이 현재 5곳 가동중이며, 이들 모두가 200∼300명씩 근무하는 대기업이라고 손 상무는 전했다.
전 세계 4성급 이상 호텔에 비치된 성냥은 모두 이들 일본 성냥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국내에서는 불교 용품점과 동해안 일부 어부들만이 성냥을 필요로 하고 있을 뿐이다.
“솔직히 100년 기업 자신 없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라며 한숨을 내쉬던 손 상무는 “광고기획사를 하게 된 것은 성광성냥의 적자를 메워보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성냥의 관광상품화 계획도 고려됐다”며 “하지만 4년 전 직접 제작한 의성군 관광명소(14곳)가 담긴 작은 성냥에 대해 의성군조차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현실에서 향토뿌리기업 지정이 기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임성수기자 s01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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