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탐색전이 이미 시작됐다. 인지도를 높이려는 e메일이 늘어나고,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보면 출마예상자들의 얼굴이 보이기도 한다. 대구시장이나 경북도지사 출마를 위해 직접 자문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대구시내 일부 구청장과 경북도내 상당수 단체장·국회의원이 대구시장이나 경북도지사에 도전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는 이야기도 나온 지 오래다. 일부는 올 연말 대대적인 세력형성과 선거자금 마련을 위해 책을 낼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다.
광역단체장(대구시장·경북도지사)이나 광역의원(대구시의원·경북도의원) 출마 예상자들의 경우 선거운동 방향을 정하기가 비교적 간단하다. 경선 또는 중앙당 낙점이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정당공천 가능성을 두고 출마여부를 고민하면 된다. 그러나 내년 선거에 나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가장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은 기초단체장(구청장, 시장·군수)과 기초의원(각 구의원, 시·군의원) 출마희망자들이다.
대구지역 구청장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A씨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사이가 좋지 않아 고민이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나갈 거고, 폐지되지 않으면 출마를 접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어차피 내년 지방선거도 특정정당 공천을 받아야 유리할 거고, 공천권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쥐고 있으니 정당공천제 폐지여부가 A씨에겐 출마여부를 결정하는 최고의 변수인 것이다.
아마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 출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대부분 A씨와 같은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 정당공천제와 관련해 코멘트를 한 사람은 내년 지방선거 책임자인 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이다. 유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정당 공천제에 기초한 현 지방자치제도에 부작용이 많다. 내년 지방선거 이전까지 정치권과 협의해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 효율성을 위해 폐지를 위한 충분한 논거를 제시해 추진할 것이다. 지방자치법 등 관련 법률 개정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유 장관의 말을 언뜻 들으면 정당공천제 폐지에 무게가 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대선 당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를 나란히 공약으로 내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해 현행 유지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달여 남은 4·24 재보선을 앞두고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에 대해 정당공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새누리당은 최근 공천심사위원회 대변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공약한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해 외부위원들과 회의를 가졌지만 다양한 이견이 있어 추후에 결정키로 했다. 좀 더 당 안팎의 여론을 수렴해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경북지역 국회의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안된다는 쪽이니 여론수렴 결과는 뻔할 것 같다. 민주통합당 정치혁신위원회도 지난 1월말 회의에서 이미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지 않고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결론을 냈다.
정치권이 정당공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은 정치신인발굴과 후보 검증, 책임정치, 비례대표제를 통한 여성 및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지방의회 진출 등이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할 뿐 숨은 저의가 따로 있다는 것을 대다수 국민은 알고 있다. 한마디로 돈과 권력을 담보할 수 있는 공천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지방자치가 뿌리내린 유럽의 경우, 지방선거는 주민들에게 맡기고 아예 정당이 얼씬거리지 않는다. 일본도 지방자치단체장은 99%가 무소속이다. 정당공천 제도가 도입돼 있지만 실제로 운영은 안 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지방자치를 20년 넘게 해 오면서 제도적으로 노하우가 많이 축적돼 있기 때문에 정당 없는 지방자치가 실현 가능하다. 정당공천제 폐지를 포함한 지방선거의 룰이 빨리 결정돼야 괜히 시간과 돈 낭비를 하는 후보들을 줄일 수 있다.
심충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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