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속 예술가들 .32] 도예가 기현철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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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2-19   |  발행일 2013-02-19 제24면   |  수정 2013-02-19
“자연과 호흡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나를 보여주고파”
[전원 속 예술가들 .32] 도예가 기현철
자신이 운영하는 펜션에서 포즈를 취한 도예가 기현철씨. 활짝 웃는 모습과 소탈한 생김새에서 자연과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의 여유와 넉넉함이 느껴진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전원 속 예술가들 .32] 도예가 기현철
[전원 속 예술가들 .32] 도예가 기현철


1968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2002년 대구 신미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석갤러리, 대백프라자갤러리, 갤러리G 등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서울 통인화랑, 부산 마린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떠난 고향

도예기술 익히고 15년전 다시 정착

"자란 곳인데다 혈육도 곁에…

이런 편안함이 작업에도 큰 도움”


집 앞·뒤 마당서 직접 차 재배

경제적 문제로 펜션도 운영

"차인 연수원 목적으로 지은 건데…

조만간 본래 역할로 되돌려야죠”



경주란 도시가 주는 이미지는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푸근함과 정겨움이 느껴지는 도시다. 야트막한 산들과 오래된 전통가옥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경주는 음식으로 치면 담백하면서도 긴 여운을 주는 맛이라고나 할까. 첫술에 입맛을 확 끌어당기기보다는 입 안에 두고두고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고, 음식을 삼키고도 은은한 향이 오래도록 남는 맛이다. 그래서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어진다.

도예가 기현철은 경주시 내남면 구토란마을에 둥지를 틀고 있다. 구토란마을은 경주의 이같은 특징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한적하지만 왠지 사람의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푸근함을 주는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마을 뒤에는 소나무가 무성한 숲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기씨의 집은 마을 가장 안쪽이라고 할 수 있는 뒷산자락에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도예기술을 배웠던 그는 15년 전 이 곳에 터를 잡고 도자기를 직접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여기서 생활했습니다. 어른이 아직 이 마을에 사시고, 할아버지 산소도 이 곳에 있어 자연스럽게 이 곳에 가마를 만들고 살림집을 지었지요.”

그의 집 바로 아래쪽에 어른 집이 있고, 그의 집 위쪽에는 할아버지 산소가 있다. 어릴 때부터 자라온데다 이렇게 혈육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으니 이 곳이 정겹고 편안할 수밖에 없다. 이런 편안함이 그에게 안정감을 주고, 이는 작업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기씨의 집은 여러 측면에서 눈길을 끈다. 그는 도자기를 구우면서 펜션도 운영한다. 처음에는 도예가가 왜 펜션을 운영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씨의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6~7년 전쯤 이 펜션을 지었습니다. 집 모양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는 펜션으로 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차인들의 연수원으로 지었지요. 도자기를 만들다보니 차인들과 교류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고, 이들이 차와 관련한 수업, 세미나 등을 할 마땅한 장소를 찾지못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차인 연수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기씨가 운영하는 펜션은 일반 펜션과는 달랐다. 펜션이라고 말을 하지않으면 경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그만 기와집이었다. 집 전체의 모양새도 그렇고, 나무로 군불을 때서 방을 데우는 것도 전통한옥 방식 그대로다.

그래서 힘들지만 차와 관련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집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도예가이니 당연히 도자기를 만들고 굽는 작업실을 지어야 했다. 도자기를 굽는 가마의 경우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전통장작가마로, 나무를 때 도자기를 굽는다.

“차인 연수원으로 지었지만 당장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펜션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원래 역할을 하도록 할 것입니다. 차인들이 마음놓고 차에 대해 연구하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곳 말입니다.”

차밭도 1천300㎡나 된다. 집의 앞마당과 뒷마당에 차밭을 일궈 직접 차를 재배한다. 차나무를 가꾸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특히 올해처럼 추운 날씨에는 차나무가 얼어죽기 쉬워 늘 긴장을 늦추지말고 세심히 관리를 해줘야 한다.

기씨는 집에서 키운 차나무에서 찻잎을 따서 직접 차를 만든다. 이 차를 자신이 빚은 도자기에 우려내 차실에서 마신다.

집 마당 곳곳에 연못까지 만들었다. 4개 연못 중 3곳에서 백련을 키운다. 백련은 봄부터 여름에 걸쳐 아름다운 꽃을 피워 이 곳을 찾는 이들에게 볼거리를 주는 것은 물론 차의 재료로도 쓰인다.

차실은 그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장으로서의 쓰임새도 갖추고 있다. 차실 사방에 다완, 찻잔 등을 전시해 차를 마시면서 도자기를 보는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그가 사는 공간은 모든 것이 전통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같은 전통방식은 자연의 순리를 그대로 끌어안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전원 속 예술가들 .32] 도예가 기현철
기현철의 작품들


그의 작품도 그가 살아가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도자기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별다른 기교가 없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약간 비뚤비뚤한 것이 못생겼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결코 밉지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못난 듯한 것에서 정겨움이 느껴진다. 기씨는 도자기를 시작할 때부터 어떤 것에 매달리지 않았다고 한다.

“도예가란 길을 걷게 된 것도 우연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도자기 굽는 것을 좋아했지만 제가 도예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안했지요.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히 친구들과 도예원에 놀러갔다가 도자기의 굽 깎는 것을 보고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습니다. 실제 도자기를 구워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예를 평생 업으로 삼기로 했지요.”

그는 도자기를 구울 때도 어떤 모양과 형식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두지 않고 자신이 그때 느낀 감정대로 만든다고 한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달항아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달항아리의 부드러운 곡선과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모양새가 좋아서라고 말한다. 달항아리는 펜션을 지으면서 다소 소홀했던 도예에 좀더 몰입하게 해주는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펜션을 운영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때는 모든 일을 다 때려치우고 도자기 굽는 일에만 전념하려고 펜션 운영을 포기할 생각도 했지요. 하지만 벌여놓은 일이라 쉽지가 않더군요. 이 때문에 혼란스럽고 안정을 찾기 힘들었는데 달항아리라는 새로운 작업이 마음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의 작업실에는 몇개월 동안 만들어놓은 달항아리가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아직 실험단계라서 모자란 부분이 많다고 말하는 그가 만들어낸 달항아리가 작가를 많이 닮은 듯했다.

하회탈처럼 늘 웃고 있는 눈매를 비롯해 넉넉함이 느껴지는 얼굴생김새. 아무렇게나 묶은 긴머리, 소탈한 옷차림 등은 별다른 꾸밈없이 넉넉함을 주고 보면 볼수록 정겨움을 느끼게 하는 달항아리를 연상케 했다.

그에게 “편안함을 주는 모습이 달항아리와 많이 닮았다”고 말하자 그는 이 곳 생활에서 느낀 점 하나를 말했다.

“자연은 그냥 겉으로 보면 늘 같은 모습이고, 별다르게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시간 그 모습이 달라지고, 자연 속 생명체들은 그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지요. 다만 사람들이 이것을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자연속 생명체들의 치열한 삶을 이 곳에서 발견했습니다. 이런 삶들을 마주하니 어떻게 제가 변하지 않고 안주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그의 작품 또한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변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스며있다고 말한다. 찻잔, 다완 등을 주로 만들다가 최근 달항아리 제작에 전념하는 것도 이런 노력의 하나이다.

“자연에 동화되는 삶을 살다보면 사람이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야 자연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으니까요. 자연과 함께 살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작가정신을 보여주고 싶은 게 제 바람입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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