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 15도 내외면 돌강·30도 이상땐 너덜…돌의 모양·크기도 차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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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서봉과 비로봉 사이 계곡을 따라 돌강이 형성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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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가산산성 동편 등산로 초입에서 볼 수 있는 돌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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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주변 응해산에서도 너덜지대를 만날 수 있다. |
수백만년 전~1만년 전까지 지구는 빙하기였다. 빙하기는 1년 중 가장 따뜻한 달의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기간으로 물이 항상 얼음상태로 존재하는 기후다. 마지막 빙하기는 8만년~1만여년 전 뷔름 빙하기.
이때 해수면의 증강운동이 발생해 지금의 한반도 모양이 형성됐다. 당시 2천m이상, 즉 백두산과 같은 높은 산지를 제외하면 그보다 낮은 산지가 대부분인 한반도의 기후는 빙하기보다 약간 온도가 높은 주빙하기후(周氷河氣候)였다.
주빙하기후는 현재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등지에서 나타나는 툰드라 기후와 비슷하다.
툰드라 기후에서는 물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횟수가 많아지는데 9개월은 영하의 기온으로 동결, 3개월은 영상의 기온으로 융해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땅의 형태도 기후에 따라 변한다.
전영권 영남일보 위클리포유 대구지오(GEO) 자문위원(대구가톨릭대 교수)은 1986년 국내 얼음골 지역을 연구하다 백두대간 남쪽을 주목했다. 이후 너덜지대와 돌강 같이 우리나라에서 빙하기의 흔적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전국방방 곡곡을 샅샅이 뒤졌다.
전 위원은 달성의 비슬산과 밀양 만어산, 부산의 금정산이 한반도 후빙기 자취가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는 곳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돌이 크고 둥근
형태장축 방향성이 있어
긴 쪽이 상하로 위치
암괴류는 일본식 한자
◆돌강(암괴류)
돌강은 암괴류(Block stream)의 우리말이다. 암괴류(巖塊流)는 일본식 한자로 북한에서도 ‘돌이 강처럼 흘러가는 모습’이라 해서 ‘돌강’ ‘바위강’으로 부른다. 전 위원도 “‘~암괴류’보다 ‘~돌강’이라 부르는 게 훨씬 친근하고 이해하기도 쉽다”고 했다.
돌강은 후빙하기 동결·융해현상을 거쳐 생성된 지형이다. 화산이 폭발해 생긴 암석지대와 달리 마그마는 화산으로 분출되지 못하고 땅 속에서 서서히 굳어져 화강암이 되는데 화강암은 석영, 장석, 운모 등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은 ‘화강암의 나라’라고 부를 만큼 화강암이 많은 나라다. 화강암지대는 물이 잘 모이고, 지하수가 맑고 깨끗해 서울, 대구, 전주, 안동 등지의 대도시는 화강암 지대를 바탕으로 발달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돌산의 물은 세계에서 가장 양질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강암은 기온이 영하에서 영상으로 올라가면 얼어있던 지층 중 지표에 가까운 부분은 녹아 마치 밀가루반죽처럼 물렁물렁한 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의 지층을 활동층이라 한다. 활동층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연중 녹지 않고 얼어있는 영구동토층과 풍화와 침식을 받지 않는 바위층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지층들은 물이 통과하지 못하는 치밀한 불투수층이다.
푸석푸석한 돌이 많이 섞인 석비레 또는 푸석바위와 큰 돌(돌알 또는 핵석)로 구성된 활동층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약간의 경사만 있어도 아래쪽으로 서서히 이동한다. 이를 ‘솔리플럭션(Solifluction)’이라고 한다.
전 위원은 “솔리플럭션은 일정한 간격으로 똑바로 세운 도로경계석이 시간이 지나 저절로 삐뚤어지거나 넘어지는 원리와 같다”고 말한다.
산지 곳곳에 형성된 활동층은 계곡 쪽으로 매년 수~수십㎝로 서서히 이동한다. 그러다 빙하기가 끝나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멈춘다. 이후 비가 와서 이런 지형들 사이로 물이 흐르게 되면 모래나 진흙과 같은 작은 물질은 씻겨 내려가고, 무겁고 큰 돌만 남아 마치 바위가 강물처럼 흘러내려가는 모습이 된다.
돌강은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일본, 등지에서도 발달해 있다. 영국 다트무어에는 길이 900m, 경사 7도 규모의 돌강이 있고, 미국 펜실베니아주 지역에도 길이 800m, 경사 20도의 돌강이 형성돼 있다.
돌이 작고 뾰족한 형태
청송·의성·밀양 등
얼음골에 많이 나타나
희귀·미기록 이끼류
작년 158종 발견돼
◆너덜(테일러스·애추)
너덜은 너덜겅의 준말이다. 많은 돌들이 깔려 있는 산비탈을 가리키는 순우리말로 일부지역에선 돌너덜이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테일러스(Talus)’, 일본식 한자로 ‘애추(崖錐)’라고 부른다.
너덜지대는 우리나라 산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지형으로, 눈으로 보기에 돌강과 매우 흡사해 전문가가 아니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너덜 역시 주빙하기 환경에서 형성됐다. 지표에 노출된 거대한 절벽바위의 쪼개진 절리나 틈 사이로 수분이 스며들어 얼게 되면 틈 사이가 점점 더 벌어진다. 결국 절리를 경계로 수많은 큰 바위들이 만들어지고, 그 바위는 자체 무게를 견디지 못해 거대한 절벽바위로부터 굴러 떨어져 절벽 아래 무수히 많은 각진 돌들을 쌓아놓게 된다. 이때 절벽바위로부터 돌이 굴러 떨어진 이동방식을 ‘암석낙하(Rock fall)’라 하여 돌강을 형성시킨 솔리플럭션과 구별하고 있다.
돌강과 너덜 둘 다 주빙하기 환경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형성과정과 이동방식은 뚜렷이 구별된다. 예를 들어 돌강의 돌은 고온 다습한 땅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주로 크고 둥근 형태인 반면 너덜은 지면에 노출돼 있던 돌이 한랭 건조한 상태에서 수분이 들어가 결빙된 다음 부서졌기 때문에 작고 뾰족한 것이 많다. 또한 돌강은 장축(長軸)방향성이 있어 돌의 긴 쪽이 상하로 위치한 반면 너덜지대 돌은 일정한 방향성이 없다. 가장 큰 특징은 경사다. 돌강이 경사 15도내외의 완만한 지형에 있다면 너덜은 경사 30도 이상의 급경사 지형에 형성돼 있다.
너덜지대나 돌강을 산행할 경우 바위들이 널려 있어 발자국 흔적이 뚜렷하지 않으면 방향을 잘못 잡을 수도 있고, 특히 안개가 끼었을 경우 방향을 잡기 힘들다. 또한 눈이 쌓인 겨울에는 바위 사이 구멍을 눈이 덮는 경우가 많아 발목이나 다리를 다칠 우려가 높고 비가 내릴 경우에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전 위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너덜지대는 한여름에도 고드름이 맺히는 얼음골에 많다. 경남 밀양 천황산, 충북 제원 금수산, 청송 얼음골(굴), 의성 빙혈 등지가 다 너덜지대”라고 밝혔다. 이밖에 경남 함양 지리산 얼음골, 전북 진안 풍혈 등지도 너덜지대다.
너덜지대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던 북방계식물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의성 빙혈에서 백두산과 낭림산 바위틈에서 자라는 한들고사리가 발견되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국내 8군데 얼음골에서 세계적 희귀종인 담뱃대이끼와 석회구슬이끼, 통모자이끼 등 국내 희귀·미기록 이끼식물 158종을 발견하기도 했다.
탑처럼 쌓인 형태로
금강·설악·가야산 유명
팔공산·비슬산과
경주 남산에도 많아
◆탑바위(토르)
탑바위는 말 그대로 ‘탑같이 쌓은 바위’란 뜻이다. 학술용어로는 ‘토르(Tor)’라고 부르는데, 원래 영국 남서부 콘월반도 다트무어 지역의 토속방언인 켈트어 ‘토르’에서 유래됐다.
화강암은 땅 속 깊은 곳으로부터 지표면 가까이로 올라오게 되면 위에서 누르는 크나큰 압력이 줄어들게 돼 약간 팽창한다. 이때 팽창된 화강암은 그 암석 표면에 수직 또는 수평 형태의 많은 균열된 틈이나 선들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을 ‘절리(Joint)’라고 부른다.
이러한 수평·수직의 균열이 마주치는 곳은 다른 곳에 비해 쉽게 수분이 들어와 풍화를 받게 된다. 이 과정을 ‘심층풍화’ 또는 땅 속에서 진행된다고 해 ‘지중풍화’라고도 한다. 균열선을 따라 풍화와 침식이 진행되면 절리간격이 넓어져 화강암 기반은 돌알과 푸석바위로 나뉜다. 나중에 푸석바위가 제거되고 나면 커다란 돌알만 쌓여 탑바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화강암 지질로 구성된 산지에서 주로 발달하는데 금강산, 설악산을 비롯해 북한산, 매화산, 가야산, 속리산 등지가 유명하다. 대부분 수려한 경치로 이름난 명산이다.
전 위원은 “대구·경북지역에선 팔공산과 비슬산에서 탑바위가 잘 발달해 있다. 팔공산의 경우 기도처로 유명한 갓바위와 동봉 아래 서편 능선에 위치한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유명하고, 케이블카 휴게소 부근에 위치한 바위도 전형적인 탑바위다. 경주 남산의 불상은 탑바위에 새겨진 게 많다. 대구 앞산의 경우 화강암으로 구성된 산지가 드물어서 잘 발달하지 못하며 있더라도 수려한 경관을 볼 수 없다”고 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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