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길이가 긴 비슬산 너덜겅(사진 위와 중간)과 돌강(맨 아래)이 청명한 겨울하늘 아래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화강암이 만들어 낸 돌江·너덜겅·돌탑 등 한곳에서 관찰 가능
야너우드·블루록 등 외국의 것보다 수려한 세계 최대 규모 경관
“대구에 빙하기가 다시 찾아왔다.”
이번 겨울 한반도를 찾은 한파를 두고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이다. 빙하기만큼 혹한이었을 리 만무하지만 예년에 비해 대구의 추위는 매서웠다. 달구벌분지를 남북으로 감싼 팔공산과 비슬산 정상 부근에 한겨울 내내 눈이 쌓여있는 풍경도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럼 실제 빙하기 대구의 모습은 어땠을까.
대구, 그 중에서도 비슬산은 빙하기 한반도 기후의 비밀과 자취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비슬산뿐만 아니다. 대구주변 팔공산, 가산, 응해산에도 빙하기 대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흔적이 도처에 남아있다. 다만 비슬산보다 규모가 작을 뿐이다. 서거정이 지구상에 빙하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대구십경에 공령적설(公嶺積雪) 대신 비슬암괴(琵瑟巖塊)를 넣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슬산은 세계에서 가장 멋진 빙하기 시대 볼거리를 가졌다. 비슬산은 백두산·금강산·설악산처럼 이름난 산은 아닐지라도, 영국 다트무어(Dartmoor)의 야너 우드(Yarner Woods),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블루 록(Blue Rock), 시에라네바다산맥의 돌강(Block stream), 호주 타스마니아(Tasmania)의 마운틴 바로(MT. Barrow)보다 훨씬 아름답고 수려한 빙하기 자연관찰학습장이다.
비슬산은 화강암이 만들어낸 천혜의 자연유산인 돌강, 너덜겅, 돌탑지대를 바로 한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등잔 밑이 어두워서 가치를 과소평가, 우리는 비슬산의 보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알리지도 못했다.
빙하기 대구를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언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겨울이다. 금강산이 왜 겨울에 개골산(皆骨山)이라 불리는지 상상해보라.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겨울산은 온통 개골산이다. 겨울산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발가벗겨버린다. 낙엽이 떨어지고 이끼도 말라버려 앙상한 뼈대만 남은 겨울산의 매력은 바로 돌과 흙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눈과 얼음이 다 녹아 한기를 느끼지 못하기 전에, 봄이 와서 진달래에게 눈길을 빼앗겨버리기 전에, 홀딱 벗은 대구주변의 산으로 떠나보자. 칼바람을 맞아 다 흩어져버린, 산머리 뒤로 펼쳐지는 구름 한 점 없는 블루스카이를 바라보면서 그레이 톤에 절은 안구를 씻어보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다.
이번 호 대구지오(GEO)팀은 세계 최고의 길이와 규모를 자랑하는 비슬산 돌강, 바위강(암괴류·Block stream)을 비롯해 너덜겅(애추·Talus), 돌탑(Tor)을 만나러 비슬산, 팔공산, 가산, 응거산 일대를 답사했다.
이번 취재에는 전영권 대구지오 자문위원(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이 동행해 빙하기 대구의 비밀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전 위원은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2003년 비슬산 돌강을 천연기념물 제435호로 지정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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