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北의 재발견. 22] 외씨버선길 ‘만추의 청송 3개구간’ (上·첫째 둘째길)

  • 배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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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1-16   |  발행일 2012-11-16 제39면   |  수정 2012-11-16
기암·전설·하천·폭포·민초의 애환 서린 마을·시골시장·수달생태공원·농촌전통테마마을·99칸 송소고택·소망의 탑·한지공장…
길 위의 '살아있는 박물관'
[慶北의 재발견. 22] 외씨버선길 ‘만추의 청송 3개구간’ (上·첫째 둘째길)
청송∼영양∼봉화와 강원 영월까지 총 170㎞에 걸쳐 이어진 외씨버선길이 최근 전 구간 개통됐다. 사진은 외씨버선길 중 첫째길인 주왕산 달기약수탕길을 걸으며 마지막 가을정취를 즐기고 있는 모습.


청정오지 산허리를 돌고 돈다. 산허리를 돌아서면 끊어질 듯하던 길이 다시 좁다랗게 이어진다. 그렇게 170㎞가 이어진다. 청송·영양·봉화와 강원도 영월에 걸쳐 마을길과 산길을 잇는 도보 여행길, ‘외씨버선길’이 최근 전 구간 개통됐다. 영양 출신인 조지훈 시인(1920~68)의 시 ‘승무’에서 이름을 땄다. 전체 구간이 언뜻 버선의 선 모양을 닮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의 길, 외씨버선길은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서러웠던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애환의 길이기도 하다. 청송 주왕산에서 영월 관풍헌까지는 모두 13개 구간으로 연결돼 있다. 그중 청송 구간은 주왕산 달기약수탕길, 슬로시티길, 객주 김주영길로 3개구간이다. 가을색 짙은 이달 초 청송구간을 걸어보았다.

◆ 첫째길, 주왕산 달기약수탕 길

산은 정상에 오르는 게 맛이라지만, 이렇게 한가롭고 편안한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행복하다.

외씨버선길 첫번째 길은 주왕산을 넘는다. 주왕산 길은 계곡의 폭포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싱그럽다. 또 우뚝 솟은 기암, 골짝과 폭포에는 숱한 전설이 전해진다. 곳곳에 주왕의 슬픈 전설도 널렸다. 세상에 보기 드문 기암, 괴석과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폭포는 마냥 신비스럽다.

길은 주왕산 국립공원탐방 안내로에서 운봉관까지 18.5㎞다. 6∼7시간 거리로 외씨버선길 청송구간 중 가장 길다.

주왕산 초입의 대전사는 주왕의 아들 이름을 딴 절이다. 고려 보조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무학대사와 서거정·김종직 등 수많은 선지식과 석학들이 이 절을 거쳐 갔다. 길은 주방천을 따라 평탄하다. 노약자나 어린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게 흙길이다.

길가 주방천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으로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계곡이다.

길가에서 아들바위를 만난다. 여인이 뒤로 돌아서서 돌을 던져 바위 위에 떨어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의 바위다. 주왕이 신라군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자하산성을 지나니 급수대와 병풍바위·학소대·시루봉이 길 좌우측에 늘어서 있다. 기암괴석은 남한에서 보기힘든 빼어난 절경이다.

급수대에는 신라시대 선덕왕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선덕왕이 후손이 없어 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에게 왕위를 돌려주려다 각간 김경신이 내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이곳 주왕산으로 숨어든 김주원이 이 절벽 위에다 은신처를 지었다고 한다. 절벽 위에 물이 없어 주방천의 물을 길어올려 식수로 써 급수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떡시루처럼 생긴 시루봉은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 밑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야기 거리가 풍성한 기암괴석을 지나자마자 눈앞에 폭포가 나타났다. 제1폭포 ‘용추폭포’다. 제1폭포를 지나 움푹 패인 바위의 모습이 절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제2폭포 ‘절구폭포’와 옛날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제3폭포 ‘용연폭포’를 만난다. 대전사에서 제3폭포 용연폭포까지는 내주왕의 넉넉한 품에 안긴 푸근한 느낌을 주는 편안한 길이다.

제3폭포 바로 위로 내원마을 가는 갈림길이 있다. 한때 전기없는 마을로 언론에 여러차례 소개됐던 마을은 수질오염 등의 문제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주민들을 모두 이주시켜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인적이 끊기면서 마을은 가을 억새풀과 온갖 야생조수류 천국이 되었다. 짐승들이 대낮에도 여기저기에서 몸을 비비며 짝짓기하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까지는 산길이 산책수준이었다면 내원마을 갈림길에서부터 금은광이 삼거리까지는 본격적인 등산길이다.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살던 집터와 흔적이 보인다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돌로 축대를 쌓아 평평한 집터를 만들었다. 참나무를 구워 숯을 만들던 사람들이 살았던 터다. 일제강점기까지 이곳에 숯가마를 짓고 숯을 구워냈다. 이들은 또 봄에는 산채를 채취하고 가을이면 송이를 따서 이 길을 따라 청송장과 진보장에 내다팔았다.

고개 정상은 해발 719m.

금은광이 삼거리가 나온다. 금은광이는 옛날 이 부근에 금과 은을 캐는 광산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과 내원마을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아침에는 은빛이고 저녁에는 금빛노을이기 때문에 붙었다는 또다른 설이 있다.

산길 떡갈나뭇잎 소리를 들으면서 내려간다. 너구마을이다. 한때 수십 가구가 살았던 곳이라 집터가 여기저기 많다. 너구마을은 네귀퉁이가 만났다고 하여 너구동이라 붙여졌다. 임진왜란때는 의병들이 숨어살았던 곳이고 일제 때까지 목탄 생산터였다.

너구마을을 지나 달기폭포에 이른다. 옛날 물깊이를 확인하려 명주실을 넣었지만 그 끝을 알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영글어가고 있는 사과밭을 따라 내려가면 달기약수터가 나온다.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약수백숙으로 시장기를 채우니 그간의 피로가 눈 녹듯 녹아든다.

[慶北의 재발견. 22] 외씨버선길 ‘만추의 청송 3개구간’ (上·첫째 둘째길)
주왕산 달기약수탕길에서 만난 제2폭포 ‘절구폭포’

◆ 둘째길, 슬로시티 길

두 번째 만난 슬로시티길은 청송읍 월막리 운봉관에서 시작해 파천면 송강리 청송전통한지장까지 11.5㎞구간이다.

고택에서 전통가옥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을 따라 우리네 부모님이 다닌 옛길을 추억하고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길이다.

운봉관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청송도호부의 객사다. 운봉관을 지나 청송전통시장까지는 평탄한 마을길이다. 전통시장에는 온갖 농특산물들이 즐비하고 아직도 장돌뱅이들이 5일장을 찾아 다닌다. 옛날 보부상과는 달리 지금은 차량에 물건을 가득 싣고 다닌다. 주왕산을 찾는 관광객들은 시골장터를 사람냄새가 풀풀난다며 즐겨 찾는다.

전통시장에서 용전천을 넘어 강변길은 걷기가 편하다. 수달생태공원과 함게 시작하는 초록색 보도 블록이 깔린 아름다운 길이다. 강변길을 벗어나자 넓은 들판에서 벼수확이 한창이다. 풍년을 노래하는 아버지들의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오솔길을 접어들면 고택이 즐비한 덕천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덕천마을 입구에는 청송심씨 본향이라고 쓴 큼직한 자연석이 눈에 띈다. 마을은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돼 마을길도 황토색으로 잘 가꾸어져 있다. 청사초롱 가로등이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을에는 송소고택을 비롯해 많은 고택들이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마치 조선시대 양반가를 온 듯하다.

그중 송소고택은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250호로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청송심씨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1880년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리로 이주하면서 건축했다. 청송 심부자 집으로 더 많이 알려진 송소고택은 전국에서 흔치 않은 99칸 집으로 공간구성이 특이하고 조선 시대 상류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2011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되기도 한 이 고택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한번은 떼도둑이 들어와 집을 마구 파손할 때 안방마님이 도둑질하러 왔으면 훔쳐나 갈 것이지 왜 부수느냐며 곡간 열쇠를 내어주며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한 후 남은 것으로 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덕천마을을 나와 덕천교를 지나면 관리 왕버들이 나타난다. 왕버들에 대한 애틋한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채씨성을 가진 처녀가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전쟁이 나자 아버지에게 출병을 하라는 영장이 떨어졌다. 이 딱한 사정을 들은 이웃 젊은 일꾼이 대신 출정하겠다는 말에 너무도 기뻐서 결혼을 약속했다. 총각은 떠나기 전날 우물가에 나무를 심어놓고 잘 돌보라고 한 뒤 전쟁터로 떠났으나 3년이 지나고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자 처녀의 아버지는 처녀도 모르게 다른 사람과 정혼을 해버렸다. 뒤늦게 사실을 안 처녀는 결혼식 전날밤 그 나뭇가지에 목을 메고 죽었다. 그런데 얼마 후 이 버드나무 옆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자 동네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처녀의 넋이라 생각했다.

용전천을 따라 걷는다. 갈대숲이 끝없이 이어진다. 지난 여름 강태공과 다슬기를 줍는 아낙들의 생각에 웃음이 난다. 생회를 쳐먹어도 될 만큼 하천은 맑다.

다시 강을 건너니 아름드리 노송이 울창한 중평솔밭이다. 야외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캠핑축제장으로 도시민들의 안식처다. 자녀들과 하천에서 물고기잡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돌바리를 건너니 옛날 추억이 절로 생각난다.

이제까지 평지였다면 이제부터 다시 산으로 오른다. 고개에 오르자 소망의 탑이 반긴다. 큰소원은 잘 안들어주니 조그만 소원을 빌어보라고 한다. 주민들은 어른은 소원이 많아 잘들어 주지 않지만 아이들은 소원을 잘들어준다고 전한다.

산등성이의 사과밭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니 천연기념물 192호 신기동 느티나무를 만난다. 300년 전 안동장씨 입향시조가 심었다는 이 느티나무는 봄에 나뭇잎이 어느 쪽에서 먼저 나오느냐에 따라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병든 시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짜 먹여 살려냈다는 박씨부인의 전설이 담긴 효부각을 지나면서 종점인 청송전통한지공장에 이른다. 한지장 이자성씨는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청송한지를 직접 만든다. 한지체험을 해보는 뜻 깊은 시간도 가질 수 있다.

[慶北의 재발견. 22] 외씨버선길 ‘만추의 청송 3개구간’ (上·첫째 둘째길)
[慶北의 재발견. 22] 외씨버선길 ‘만추의 청송 3개구간’ (上·첫째 둘째길)


☞첫째길 주왕산 달기약수탕길

주왕산국립공원 → 주왕산1폭포 → 달기폭포 → 달기약수터 → 운봉관 거리 : 18.5㎞, 주왕산국립공원안내센터~주왕산1폭포~주왕산3폭포~너구마을~달기폭포~달기약수터~운봉관 소요시간 : 6~7시간

☞둘째길 슬로시티길

운봉관 → 청송전통시장 → 송소고택 → 중평솔밭+징검다리 → 소망의 돌탑 → 청송한지체험장 거리 : 11.5㎞ 소요시간 : 4~5시간

글·사진=배운철기자 baeu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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