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갱이(미끼)와 오징어(표적)가 활극을 벌일 때 원숭이(저격수·갈고리 바늘) 내려보내 ‘확∼’ 스릴
■ 갈고리 셋 달린 작살 모양의 야엔
전갱이를 뜯어먹느라 정신이 팔린 오징어를 급습하는 갈고리 모양의 바늘채비가 야엔(野猿=ヤエン)이다. 야생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타는 모습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0년 전 일본 미에현의 산에서 잘라낸 나무를 아래로 옮길 때 긴 밧줄에 나무를 달아 내린데서 유래되어 낚시채비에 접목된 것으로 전해진다.
34~40㎝ 정도 길이의 작살 모양 금속에 갈고리 모양의 바늘이 세 개 붙어 있으며, 원줄에 걸 수 있는 고리가 세 개 달려 있다. 이 세 개의 고리를 원줄에 걸면 오징어의 배 아래 쪽으로 내려간 야엔이 오징어의 다리와 몸통에 찍힌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자작할 수 있지만 야엔은 전체 무게 밸런스가 중요하다. 아래쪽이 너무 무거우면 갈고리가 아래로 처져서 목표물에 다가가기도 전에 오징어가 먼저 감지하고 도망가 버린다. 반대로 아래가 너무 가벼우면 내려가는 도중에 야엔이 원줄에 올라타 버려 줄과 함께 엉켜 버린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다이와와 야마시타의 야엔이 시판되고 있다. 보통 길이 별로 35~40㎝까지 S·M·L 세가지 종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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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갱이 대가리를 씹어 먹던 무늬오징어가 야엔에 걸려 낚여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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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는 죽은 전갱이를 먹지 않는다. 살아있는 전갱이를 원형 살림통에 넣어 산소기포기와 함께 두면 낚시하는 동안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다. 사각으로 된 살림통보다는 원형이 좋다. 사각 살림통의 전갱이는 그 안에서 헤엄치다가 모서리 각이 꺾이는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죽을 확률이 높다. 두레박을 준비해서 가끔 신선한 바닷물을 보충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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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줄을 원형고리로 만들어 전갱이의 꼬리자루에 묶는다. 이때 전갱이가 빠져나가지 않게 꼬리자루에 바늘을 묶는 경우도 있지만 바늘이 없어도 상관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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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엔낚시에 쓰이는 인터라인대와 삼각대. 갯바위 가이드 낚싯대를 써도 되지만 라인 트러블이 적은 인터라인대가 유리하다. 채비를 던진 후에는 이렇게 전용 삼각 거치대에 낚싯대를 거치해 두고 입질을 기다린다. 낚싯줄은 나일론줄 2~2.5호 정도면 무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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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엔낚시 전용릴. 앞뒤로 두 개의 드랙이 있으며, 방아쇠 모양의 클러치로 드랙의 장력을 풀거나 잠근다. 아래에는 줄의 장력을 좀 더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레버가 달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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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엔을 낚싯줄에 걸 때. 혼자라면 낚싯대를 옆구리에 끼고 원줄을 잡아내려 걸 수 있지만(사진) 2인 1조가 되어서 서로 상대편의 원줄에 야엔을 걸어주면 더 편하다. |
원숭이가 낚싯줄을 타고 내려간다. 물속으로 천천히 내려간 원숭이는 전갱이를 맛있게 뜯어먹고 있는 무늬오징어를 그의 날카로운 손톱으로 ‘확~’ 순식간에 낚아챈다. 마치 매의 발톱에 채인 병아리처럼 꼼짝 없이 걸려든 무늬오징어. 다시 물 밖으로 올라온 원숭이는 자신의 전리품(무늬오징어)을 주인(낚시꾼)에게 공손히 바친다.
야엔(野猿)낚시. 들 야(野), 원숭이 원(猿)의 일본 발음이다. 한자 뜻을 그대로 풀어보면 ‘야생 원숭이’가 된다. 야엔낚시는 제주도와 거제도 등 일부 지방을 중심으로 서서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신기법의 무늬오징어 낚시다. 무늬오징어를 낚는 기다란 갈고리 바늘이 원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마치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타는 것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200년 전인 1889년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야엔낚시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건 5년여 전이다. 1997년 초여름 일본 야마시타 한국총판인 성광물산(대표 김선관)이 야마시타 본사 직원들과 함께 거제도에서 본격적으로 야엔낚시를 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조과가 없었고, 야엔낚시가 꾼들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8년 7월 한국다이와정공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야엔 전문꾼인 오카다겐지씨가 제주 가문동방파제에서 야엔낚시를 성공시켰는데, 이 장면이 낚시방송과 매체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국내에 상륙하게 된다.
야엔낚시는 기다림의 미학과 머릿속에 그려지는 낚시과정의 짜릿한 형상화에 그 묘미가 함축돼 있다. 말하자면 야엔낚시는 낚시의 전 과정이 하나의 영화필름처럼 촤르륵~ 돌아간다.
#1. 루어(에기)가 아닌 생미끼(전갱이) 사용 #2. 오징어를 발견하고 달아나는 전갱이 #3. 전갱이를 공격하는 오징어 #4. 긴 다리로 전갱이를 감싸고 끌어들여 덮친 후 이동하는 오징어 #5. 전갱이를 대가리부터 뜯어먹는 오징어 #6. 드디어 원숭이(야엔)가 물 속으로 하강 #7. 정신없이 전갱이를 뜯어먹고 있는 오징어를 원숭이가 ‘확~’.(아직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8. 무늬오징어를 낚아챈 원숭이(야엔)가 낚시꾼의 손동작(릴링)에 따라 천천히 수면 위로 헤엄쳐 올라오고 #9. 원숭이를 불러내는 낚시꾼은 최대한 공을 들인다. #10. 무늬오징어를 꽉 움켜 쥔 원숭이가 물 밖으로 무사히 나올 수 있도록 조심조심 낚시꾼은 릴을 감은 후 #11. 무늬오징어를 잡은 원숭이가 완전히 수면 위로 올라오면 뜰채로 함께 떠낸다.
11개의 장면처럼 야엔낚시는 물 속 전갱이와 무늬오징어의 활극을 상상하게 만든다. 낚시꾼은 머릿속에 그려지는 전갱이와 오징어의 활극에 맞춰 기다리거나, 혹은 과감한 릴링으로 타이밍을 포착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그 어떤 종류의 게임, 혹은 도박도 따라오지 못할 긴장감이나 짜릿함을 선사한다. 이것이 바로 야엔낚시의 매력이다.
야엔은 또한 장비나 채비가 복잡하지 않고 스릴과 박진감이 넘치는 매력적인 낚시다. 게다가 생미끼를 쓰기 때문에 루어(에기)처럼 액션 테크닉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입질 빈도가 아주 높다. 실제로 에깅에는 거의 입질을 받을 수 없는 포인트에서도 이 야엔으로는 잦은 입질을 받는 경우가 많다. 10월 초 이후 본격적인 오징어 시즌이 열리면 야엔낚시로 손맛과 입맛을 한껏 느껴보는 건 어떨까.
◆ 낚시과정 및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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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엔낚시 물 속 시뮬레이션//①원투한다. ②전갱이가 자유롭게 헤엄치게 한 후, ③가는대로 놔둔다. ④오징어가 접근해 전갱이가 도망칠 때 원줄이 풀려나간다. ⑤오징어가 전갱이를 덮쳐 끌고 가면 드랙이 강하게 풀려나간다. ⑥다른 장소로 이동한 오징어는 전갱이를 대가리부터 뜯어 먹는다. ⑦조심스럽게 릴을 감으면서 야엔을 투입한 후 릴의 베일을 닫고 챔질한다. |
앞서 야엔낚시를 한편의 야생다큐처럼 표현했는데, 포인트 도착 후 채비 순서와 무늬오징어를 낚아내는 전 과정은 10단계로 나눠진다.
① 삼각대 거치 - 포인트(갯바위·방파제)에 도착하면 야엔낚싯대를 거치할 삼각대를 편다.
② 전갱이 묶기 - 원줄 끝에 동그란 원을 만들어 살림통에 든 산 전갱이 중 팔팔한 놈을 한 마리 골라 그 꼬리에 원줄을 묶는다.
③ 채비투척 - 낚싯대를 들어 머리 위로 반원을 그리며 원줄에 묶인 전갱이를 멀리 날린다.
④ 낚싯대 거치 - 원줄에 묶인 전갱이가 제멋대로 헤엄쳐 가도록 놔두는 과정이다. 이 때 릴에 감긴 뒷줄을 풀어 느슨하게 해준다. 일반 스피닝 드랙릴이라면 드랙을 열어 주고, 야엔전용 릴이라면 클러치를 뒤로 젖혀 드랙이 풀려있도록 해준다.
⑤ 무늬오징어 접근 - 초릿대가 까딱까딱거리는 건 묶여있는 전갱이가 헤엄치다가 원줄의 반경을 벗어나려 할 때다. 그러다가 무늬오징어가 접근하면 위협을 느낀 전갱이가 도망치려 하는데, 이 때 원줄이 짧게 드랙을 차고 나간다. 드랙에 ‘찍~ 찌익~!’ 소리가 난다.
⑥ 전갱이 공격 - 완전히 전갱이를 덮친 무늬오징어는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서 전갱이를 먹는다. 전갱이를 움켜쥔 무늬오징어가 이동할 때 낚싯대의 초릿대는 물속으로 처박힐 듯 강하게 휘어진다. 이 때 빠른 속도로 원줄이 드랙을 차고 나간다. ‘찌지직~ 찌지지지~익~’ 하는 드랙 풀리는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⑦ 전갱이 먹음 - 다른 장소로 이동한 오징어는 드디어 전갱이를 대가리부터 뜯어 먹는다. 이 때 바로 야엔을 내리지 않는다. 오징어가 완전히 대가리를 먹은 후 그 맛에 홀려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시간은 대략 2~3분. 일본에선 5분에서, 길게는 10분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있지만 제주도에서 직접 해보니 2~3분이면 오징어가 완전히 전갱이 대가리를 먹어 버렸다.
⑧ 야엔투입 - 낚싯대를 세워 살살 릴링을 하면서 전갱이를 끌어온다. 이렇게 전갱이를 끌어와도 전갱이 먹기에 정신이 팔린 무늬오징어는 절대 전갱이를 놓지 않는다. 발 앞 20m 정도까지 끌어온 후 초릿대 끝 원줄에 야엔을 달아주면 세워진 낚싯대의 경사각을 따라 미끄러지듯 야엔이 내려간다. 야엔을 달 때는 낚싯대를 옆구리에 끼고 혼자 해도 되지만 동료가 있으면 동료에게 야엔을 맡기는 게 편하다.
⑨ 오징어 걸림 - 야엔은 원줄을 따라 물 속으로 내려가서 전갱이를 먹고 있는 오징어의 배 아래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이 때 깜짝 놀란 오징어는 먹물을 내뿜으며 최대속력으로 뒤로 달아난다. 이때 드랙이 미친듯이 풀려나가며 ‘찌지지~익 찌직 찌지지지~익~!’ 소리를 낸다.
⑩ 랜딩 - 야엔에 한 번 걸린 오징어는 웬만해서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한다. 낚싯대를 세우고 천천히 릴을 감아주면 된다. 야엔에 걸린 오징어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침착하게 뜰채로 떠낸다.
월간낚시21 기자 <블로그 penandpower.blog.me>
■ 현장에서 크릴 밑밥 뿌리면 카드채비로 전갱이가 줄줄이
야엔낚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살아있는 전갱이를 얼마나 많이 확보할 수 있는가다. 일본인들은 전갱이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에는 아직 야엔낚시를 위한 살아있는 전갱이를 파는 데가 없다.
그러나 걱정할 건 없다. 우리나라 전역의 바다에서 쉽게 전갱이를 낚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가 있는 곳이라면 현장에서 바로 전갱이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전갱이 낚시는 아주 쉽다. 방파제 직벽에 크릴 밑밥을 뿌리면 바로 수십 수백 마리의 전갱이 떼가 떠오른다. 이 때 카드채비 바늘에 크릴을 끼우고 그대로 채비를 내리면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전갱이가 줄줄이 달려 올라온다. 물론 낚싯대를 써서 더 멀리 원투하면 좀 더 굵은 씨알의 전갱이를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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