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나이키

  • 입력 2012-09-08  |  수정 2012-09-08 07:52  |  발행일 2012-09-08 제14면
[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나이키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나이키(NIKE)’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스포츠 종합 브랜드이며 하나의 문화코드다. 가정마다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쯤은 소지하고 있을 만큼 ‘국민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스포츠시장을 장악하고 초대형 다국적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나이키 브랜드는 1960년대 대학 육상선수였던 필 나이트와 육상 코치출신인 빌 바우어만에 의해 시작됐다. 당시 그들은 일본의 운동화 제작업체인 오니츠카 타이거사의 러닝화를 미국에 들여와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판매하는 일을 했다. 판매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8천달러 물량의 타이거사 운동화를 모두 팔게 됐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떠돌아다니며 남들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일만 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궁리 끝에 자신들의 경험을 살려 육상선수에게 꼭 필요한 러닝화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한다.

1970년 어느 날 빌 바우어만은 아내가 와플 굽는 것을 보고 운동화 밑창에 와플처럼 격자무늬를 넣으면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조금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는 와플 굽는 틀에 고무화합물을 넣고 밑창을 구워내는 실험에 착수한다. 그리고 그것을 잘라 신발 밑바닥에 붙였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나이키의 ‘와플 트레이너 러닝화’였다. 이 운동화는 곧 육상선수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미국에서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운동화로 기록되고 있다. 선수들은 이 운동화로 인해 기록이 향상됐을 뿐만 아니라 마찰력과 쿠션 효과도 생겨 발의 피로감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최초의 제작 운동화가 큰 사랑을 받게 되면서 1974년 현재의 나이키라는 브랜드 명과 스우시 로고가 만들어지게 된다. 나이키라는 이름은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페르시아에서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던 그리스 병사가 기도를 올린 바로 그 여신의 이름이다. 승리의 여신인 니케의 상징적 의미를 브랜드화한 것이기에 스포츠 선수에게 나이키라는 이름은 더 큰 의미로 느껴졌을 것이다.

또한 니케의 날개와 옷자락의 흐르는 선을 따온 스우시(Swoosh) 로고는 평범한 미대생의 작품이었다. 필 나이트와 빌 바우어만은 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감이 임박하여 할 수 없이 스우시 로고를 선택하고 그 대가로 고작 35달러를 지불한다. 2011년 나이키 브랜드 가치가 139억달러까지 치솟은 것을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 이후로 나이키의 로고는 운동화 등 다양한 제품을 장식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브랜드의 로고가 되었으며 오늘날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하게 된다.

나이키는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를 통한 광고 마케팅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이키의 폭발적인 성장과 직결되는 인물이 바로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이다.

1984년 혜성같이 등장한 그는 당시 스포츠 브랜드계의 부동의 1위를 지키던 아디다스의 운동화를 즐겨 신었다. 그는 NBA 진출 이후 아디다스와 계약하길 원했지만 당시 아디다스는 미국 농구시장에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 반면 나이키는 조던을 위해 ‘이노베이션 키친’을 꾸리고 30여명의 디자이너를 투입해 ‘에어 조던’이라는 걸작을 내놨다. 당시 NBA 사무국은 색이 들어간 농구화를 신을 수 없도록 했지만 나이키는 매 경기 1천달러의 벌금을 대신 내주면서 검은색과 빨간색이 들어간 에어 조던을 그에게 신도록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나이키는 현재까지 에어 조던 시리즈로만 매년 1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프리밸런스·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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