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수성구에 있는 한 미혼모쉼터. 어린 미혼모 대부분은 가족과 학교, 사회에서 소외돼 외롭게 생활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기 쉽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
“내 아들 인생을 망칠 X.”
올해 열여덟살 미선(가명)이가 출산 후 동갑내기 남자친구의 엄마한테 처음 들은 말이었다. 미선이 엄마도 이에 질세라 대들었지만 “애는 낳은 사람이 알아서 해라. 우린 모른다”며 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미선이에게로 돌렸다. 그날, 미선이는 아기 아빠와 헤어졌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미선이는 “10대 미혼모가 아기 기르는 것 보다 힘든 게 뭔줄 아세요”라고 반문한 뒤 직접 결론도 내렸다.
“차가운 시선들. 구경거리 난 것처럼 꼬치꼬치 묻고, 불쌍해하고….”
초등학생 정도의 앳된 얼굴인 정미(가명·18)는 몇달전 시내버스를 탔을 때만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지난 6월, 산부인과에 가기 위해 언니와 같이 시내버스를 탔는데, 그때 승객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놀라움과 동정, 멸시같은 감정이 뒤섞인 승객들의 눈초리. 어떤 할머니는 혀를 차는 것 같았고, 또래는 손가락질까지 하며 신기해 했다. 정미는 “버스를 탄 10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후 정미는 진료병원을 집앞으로 옮겼다. 사람들과 마주치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10대 미혼모가 사회와 학교, 또래집단의 냉대로 두번 울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가르쳐야 할 학교는 방관하고 있고, 자치단체는 예산부족을 탓하며 관련 복지시설에 대한 법정 운영비도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 있다.
대구의 한 고교 교사는 “과거보다 미혼모 학생에 대한 시선이 더 악화된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동료학생들이 (미혼모에 대해) ‘남자하고 잤다’ ‘더럽다’는 식으로 대놓고 소문내 미혼모를 매장시키는 분위기”라면서 “카톡같은 SNS 때문에 전교에 소문 나는 일도 삽시간”이라고 했다.
또래의 차가운 시선은 미혼모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한다. ‘너, 어떡하다가 애가 생겼어?’ ‘애기 나올 때 얼마나 아픈데?’ ‘죽고싶었겠다.’ 미혼모가 또래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미선이는 “친구에겐 내가 임신한 것이 단순히 호기심거리밖에 안된다”면서 “자기 친구가 남친이랑 잤다면서 상담을 해달라고 조르는 아이도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미혼모자시설인 사랑뜰의 황운용 원장은 “양육 미혼모는 출산 뒤 학교에 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강하게 갖는다”면서 “미혼모를 냉대하는 사회적 인식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대구·경북, 아이 키우는 미혼모 지원시설 1곳뿐
학교포기 양육선택 후 ‘냉혹한 현실의 벽’ 부딪혀
지자체 예산부족 이유 시설 운영비 지원도 ‘열악’
상황이 이렇지만 학교 역시 학생 미혼모를 따뜻하게 거두지 않는다. 학교는 명예를 해친다거나 동료에게 악영향을 준다며 자퇴나 전학을 강요하기 일쑤다.
김정금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대구지부 정책실장은 “학생 미혼모 문제는 학교에서 달갑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어린 미혼모의 중심을 잡아주고 감싸줘야 하는 곳이 학교다. 학교가 이들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미혼모가 어디에서 배우겠느냐”고 반문했다.
학교를 자퇴하고 혼자 남겨진 미혼모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이들을 수용할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지원금도 쥐꼬리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5개월전 아이를 낳은 현아씨(가명·20)는 그동안 구청으로부터 매달 양육비 5만원을 받았다. 아이의 분유·기저귀 값만 한 달 20만원인데 턱없이 적은 돈이다. 그녀는 얼마 전 아기를 업고 해당 구청에 직접 찾아갔다. 복지 담당자는 “전산에 문제가 생겨 적게 지급됐다”면서도 예산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단 말만 반복했다. 미혼모의 지원사업 규정엔 15만원을 지원하도록 돼 있다.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를 지원하는 시설은 전국에 24곳이며, 대구·경북에는 딱 한 곳밖에 없다.
지자체의 지원은 더욱 부실하다. 대구시 동구에 있는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인 잉아터의 경우, 미혼모 보육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법정 운영비 105만원(미혼모 1인당) 중 76만원만 지자체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이는 전국 최저 수준이다. 대구시는 예산부족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 시설은 미혼모 1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2년간 양육 미혼모의 취업·경제교육은 물론 생활지도까지 도맡고 있다.
미혼모를 위한 정부 지원사업도 속 빈 강정이다.
여성가족부는 2010년부터 만 24세 이하의 미혼모에 대해 청소년 한부모 자립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주요내용은 △월 15만원 양육비 지급 △검정고시 학습시 수강비 및 교재구입비 지원(1인당 154만원 한도) △월 10만원 자립촉진수당 등이다. 부모 도움없이 홀로 가정을 꾸리는 미혼모가 독립가구로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그래도 떳떳하게 아들을 키워내고 싶다는 한 미혼모(19)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은 게 바람직하지는 않다. 하지만 힘든 여건 속에서 학교까지 포기하며 양육을 선택한 리틀맘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정재훈 인턴기자 jjhoon@yeongnam.com
이효설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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