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때문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고, 핑 도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뭔가 큰 병이라도 걸린 건 아닐까, 순간 당황되면서 기분이 좋지 않다.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온몸에 힘이 없고 기력이 빠지는 듯하다. 손바닥에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고, 식욕·의욕이 싹 사라진다. 이런 상황이 심해지면 대부분은 빈혈을 의심하고는 곧장 철분제를 구입한다.
그런데 빈혈만큼 포괄적이고 막연하게 사용되는 단어도 흔치 않다. 명백한 질환이고, 많은 사람이 겪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렇다면 빈혈은 어떤 질환이고,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
빈혈이란 순환하는 혈구의 수가 부족하거나 혈액중의 혈색소(헤모글로빈) 또는 적혈구의 양이 감소해 산소 운반능력이 저하된 상태를 말한다.
흔히 어지럼증(현훈)이라는 말과 혼동해 쓰고 있는데 어지럼증은 빈혈 외에도 기립성 저혈압, 심장 이상, 뇌혈관 이상, 이비인후과 질환, 신경과 질환 등 다양한 원인으로 생길 수 있다. 빈혈이 심하면 어지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증상이 없어도 빈혈인 경우가 있는 반면 어지럼증이 있어도 빈혈이 아닐 수 있다.
빈혈은 혈액검사로 정확히 진단되며 혈액검사 없이 자가 진단하는 것은 어렵다. 남자 성인의 경우 혈색소 농도가 13g/dL, 여자 성인의 경우 12g/dL 미만이면 빈혈에 해당된다.
빈혈증상으로는 식욕이 저하되고 운동시 호흡곤란이 오거나 심장이 심하게 뛰게 되며 맥박이 빨라진다. 또 쉽게 피로해지고 정력이 감소하며 실신, 어지럼증, 두통, 귀울림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심하면 저혈압 미열 부종 등이 나타나기도 하고 피부가 창백하거나 노랗게 보일 수 있다. 심장의 혈관 이상이 있을 때 협심증의 증상인 흉통이 동반되기도 하며, 사지의 혈관 이상이 있을 때 손발의 통증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빈혈은 그 자체가 최종 진단은 아니고 하나의 소견일 뿐이며, 원인을 밝혀 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빈혈의 원인은 혈액 검사만으로 밝혀지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골수검사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특수검사가 필요하다. 철 결핍성 빈혈 정도라면 일반의사의 진료로도 치료가 가능하겠지만 기타 빈혈은 대개 혈액학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하다. 빈혈이 있다고 무조건 수혈을 한다거나 원인검사 없이 빈혈에 좋다는 약을 사 먹는 것은 위험하다.
빈혈은 갑자기 핑 도는 듯한 느낌이 나면서 두통·피로감을 동반한다. |
빈혈의 원인은 첫째, 골수에서 적혈구를 잘 만들지 못하는 경우(철이나 기타 영양소의 결핍, 골수세포가 부족해지는 재생 불량성 빈혈, 골수에 암세포 백혈병세포 등 다른 세포가 침윤되는 경우, 여러 만성질환이 수반되는 빈혈)가 있다.
둘째, 혈액 내에서 적혈구가 쉽게 파괴(용혈성 빈혈, 유전성, 면역성)되는 사례도 있다.
셋째, 급성출혈에 의한 경우도 있다.
가장 흔한 것은 철 결핍성 빈혈이다. 철 결핍성 빈혈의 원인은 철 흡수량이 감소되거나 철 요구량이 증가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청소년의 경우, 성장이 지나치게 빠른 경우 철 요구량 증가로 빈혈이 발생한다. 가임기 여성은 월경과다나 임신, 성인 남성은 위장관내의 만성 출혈이 흔한 원인이며 위암, 대장암도 원인일 수 있다.
특히 장년기나 노년기에서의 철 결핍성 빈혈은 빈혈자체보다 원인 질환의 진단이 더 중요하다. 철 결핍성 빈혈은 대개 철분제제 복용만으로 쉽게 교정된다. 그러나 치료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원인이 되는 질환을 찾아 교정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면 대장암의 만성출혈로 철 결핍성 빈혈이 생긴 경우, 원인질환의 검사를 소홀히 한 채 철분 보충만으로 치료하면 환자는 증상이 호전된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빨리 치료했어야 할 대장암은 진단이 늦어져 완치 기회를 놓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철 결핍은 철분 공급으로 치료를 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수혈을 하거나 철분 주사제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경구 철분 제제를 복용하게 된다.
약물은 공복시(식사 30분 전)에 복용하는 것이 흡수가 가장 좋고, 투약으로 인해 위장장애를 호소하면 소량의 음식물과 함께 복용하도록 한다.
철분이 많이 든 음식으로는 쇠고기, 쇠간, 닭고기. 생선, 굴, 대합, 바지락, 김, 미역, 다시마, 파래, 쑥, 콩,팥, 잣, 깨, 호박, 버섯 등이 있다. 비타민 C는 철분의 흡수를 증가시키는 반면 커피, 홍차, 녹차 등은 철분의 흡수를 저하시킨다. 철분제의 복용으로 인해 대변의 색이 검어지며, 이는 약으로 인한 현상이므로 위장관 출혈에 의한 흑변과는 다르다.
투약 후 1주일 정도면 피로감이나 나른함 같은 증상은 호전되며 혈색소 수치가 정상으로 환원되는데 2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혈색소 수치가 정상으로 나타나도 2∼3개월간은 철분 제제를 더 복용해야 하며, 6개월 정도의 투약을 통해 체내에 철분을 저장해야 한다.
임호기자 tiger35@yeongnam.com
▨도움말= 도영록 계명대 동산의료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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