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버버리

  • 입력 2012-03-03  |  수정 2012-03-31 07:23  |  발행일 2012-03-03 제14면
[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버버리

‘영국이 낳은 것은 의회 민주주의와 스카치 위스키, 그리고 버버리 코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클래식한 영국 스타일의 상징인 버버리지만 그 시작은 누구보다도 혁신적이었다. 버버리는 세계 최초로 방수 원단인 ‘개버딘’을 발명했으며, 세계대전 당시 장교들을 위해 만든 트렌치 코트는 전 세계 유명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오늘날에는 버버리 프로섬을 중심으로 의류, 가방, 소품 등에서 한층 젊어지고 감각적인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1856년 영국의 햄프셔주 베이싱 스톤에서 21세의 토마스 버버리는 작은 옷가게를 운영했다. 비가 자주 오는 영국의 레인코트는 고무로 만들어져 있어 굉장히 무겁고 불편한 옷이었다. 가볍고 활동하기 편한 레인코트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던 토마스 버버리는 영국의 양치기나 농부, 마부들이 눈이나 비가 올 때 걸치던 옷을 보게 됐다. 다른 직물보다 가볍고 물빨래가 쉬운 이 옷은 그러나 거친 느낌의 디자인 때문에 작업복으로만 사용되고 있었다. 이 소재를 기반으로 토마스는 무수한 실패 끝에 드디어 새로운 소재 개발에 성공했고 이것이 오늘날 개버딘 원단이다.

개버딘은 미리 면사를 방수처리하여 직조한 후 또 한번 방수처리를 해 완벽한 방수기능을 자랑했으며 보온력뿐 아니라 여름엔 더운 열기도 막아주었다. 그러면서도 놀랍게도 무게까지 가벼웠다. 토마스 버버리는 개버딘의 특허를 출원했고, 이 원단은 해외에서까지 주문이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1891년 지금의 버버리 브랜드가 탄생하게 되었다.

개버딘은 영국 군대의 귀에까지 들어가 ‘타이로켄’이란 군용 방수복으로 제작되었는데 단추없이 벨트로 코드를 여미는 것이 특징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 이어 2차 세계대전에서는 총을 메었을 때 마찰이 많은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어깨에서 가슴까지 패치를 달았으며, 먼지와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도록 손목부위를 벨트로 조을 수 있게 디자인 되었다. 이것이 곧 버버리 트렌치코트의 시초였다.

수십만명의 장교들이 입던 버버리 코트는 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가져가 일상생활에서도 입기 시작하자 곧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1920년 트렌치코트의 안감으로 처음으로 ‘노바 체크’를 사용했는데 이는 곧 버버리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인기는 계속되어 영화배우들은 너도나도 버버리 코트를 입고 연기하였고 대중에게 버버리가 고급스럽고 로맨틱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하지만 1990년대가 되며 급속도로 변화되는 사람들의 취향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던 버버리는 구시대적 아이템으로 전락하고 만다. 버버리 체크는 너무 쉽게 카피 대상이 되었고 버버리를 판매하는 매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 역시 고급스럽던 브랜드 이미지를 순식간에 추락시켜 버렸다. 이렇게 추락하던 버버리를 구한 사람은 1998년 새로운 CEO가 된 뉴욕의 삭스피스 에비뉴의 여사장이었다. 그녀는 하이패션 모델의 선두 주자였던 스텔라 테넌트와 사진작가 마리오 테스티노를 고용해 광고를 통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질 샌더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로베르토 메니체티를 영입하여 화려한 색상을 도입, 여성의 몸매라인을 살린 실루엣이 들어간 트렌치 코트를 선보이며 다시금 부활하게 된다.

버버리는 2001년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만나며 절정에 이른다. 2003년 최상위 라인인 버버리 프로섬 라인을 발표하여 혁신적이고 모던한 스타일을 전통과 조화시켜 젊고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탈바꿈시켰고 놀라운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지만 퇴색되어 버릴 뻔한 버버리는 고비를 넘기고 오늘날 젊고 감각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찬사를 받고 있다. <프리앤 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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