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구찌의 몰락과 부활

  • 입력 2012-02-18  |  수정 2013-01-11 11:52  |  발행일 2012-02-18 제14면
[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구찌의 몰락과 부활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구찌는 마구(馬具)사업으로 시작해 가방, 구두 등 클래식한 가죽 제품라인을 중심으로 수많은 시그너처 아이템을 탄생시켰다.

구찌의 창시자 구찌오 구찌는 피렌체에 구찌라는 작은 가방가게를 오픈한다. 호텔에서 상류층 고객을 수없이 접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번창시켜 1938년 부티크를 로마로 확장 오픈하게 된다. 구찌는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물자가 부족해지나 가죽을 대체하는 소재로 가방의 손잡이에 대나무를 이용한 ‘뱀부백’을 탄생시켰다. 이는 출시되자마자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아이템이 되고 구찌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떠오르게 된다.

수많은 아이콘을 창조한 구찌오 구찌가 숨을 거둔 이후, 구찌 사업은 그의 가족이 이어갔다. 네 명의 아들 중 둘째 아들 알도는 미국, 홍콩, 도쿄에 매장을 오픈하며 구찌를 국제적으로 확장시켰다. 이때쯤 구찌의 대표로고인 GG아이콘도 탄생한다. 이 GG로고는 캔버스 천에 프린트되어 구찌의 각종 제품에 이용되었고, 영화배우와 유명 인사들이 착용한 모습이 포착되며 럭셔리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막내아들 로돌포는 플로라 패턴을 존재하게 했으며, 이 패턴은 유럽 전역에 불티나게 팔리게 된다.

이렇게 사랑받은 구찌는 악명 높은 집안싸움으로도 유명했다. 그들은 매장운영부터 재산상속과 주식 소유 문제까지 마찰을 일으켰다. 둘째 아들 알도는 막내인 로돌포의 경영권을 축소시키기 위해 그의 아들 로베르토에게 향수 라인을 맡기고 홍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의 전략은 성공하는 듯했으나 판매율만을 높이기 위해 무분별하게 사용한 라이선스가 구찌의 명성을 깎아내리기에 이른다. 거기에다 알도의 둘째 아들인 파올로는 저렴한 가격의 세컨드 브랜드 ‘GUCCI PLUS’를 론칭하며 구찌의 이미지를 추락시켰다. 화가 난 알도가 파올로를 해고시켰는데, 도리어 그는 아버지를 탈세 혐의로 고발하며 알도는 교도소에 수감되게 된다.

한편 구찌오 구찌의 막내아들 로돌포에게는 마우리치오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로돌포가 죽으며 구찌의 지분 50%를 상속하게 되어 최고 경영자가 된다. 그는 세탁소집의 딸 파트리치아를 사랑하게 되어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그녀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구찌의 집안 며느리가 되자 파트리치아는 상류층의 사치와 허영에 물들며 화려한 삶을 즐겼다. 구찌는 파산 직전이 되고 가족간의 불화는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던 1995년 3월 어느 날 마우리치오가 괴한의 총격에 의해 살해된다. 충격적인 사실은 전 부인 파트리치아의 청부살인이었다는 것이다. 탐욕과 허영에 찌들어 살던 그녀는 잡혀나가는 순간까지도 모피 코트를 입고 나가야 하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영화같은 구찌 집안싸움은 구찌의 디자인만큼이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수많은 스캔들을 만들며 추락하던 구찌는 미국 지사장이던 도메니코 드 솔레가 CEO가 되며 완전한 주식회사가 된다. 그리고 1994년 새로운 수석디자이너 톰 포드에 의해 고급스러우면서도 섹시한 이미지로 탈바꿈한다. 1999년 백화점을 운영하는 PPR그룹과 제휴를 맺어 럭셔리 대기업의 소속이 되는데, 도메니코와 톰 포드의 무리한 요구에 PPR은 이들을 퇴출시키게 되고, 이들이 없는 구찌의 주가는 곤두박질 치는 듯했다. 하나 곧 새로운 CEO로 임명된 마크 리와 프리다 지아니니는 그들의 빈 자리를 확실히 채웠을 뿐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으로 구찌의 매출을 40% 이상 올려놓았다.

<프리앤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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