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3초백’ 루이 뷔통

  • 입력 2012-02-04  |  수정 2012-03-31 07:22  |  발행일 2012-02-04 제14면
[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 ‘3초백’ 루이 뷔통

세계최초로 사각형 여행 트렁크를 만들어낸 루이 뷔통. 루이 뷔통의 다양한 라인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것은 가방이며, 우리나라에서도 3초마다 한 번씩 볼 수 있다고 하여 ‘3초 백’이라는 별명으로 불러질 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루이 뷔통은 1954년 그레이 트리아논 캔버스로 제작된 사각형태의 트렁크를 선보였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사각트렁크였던 것이다. 이 트렁크는 왕실과 귀족들에게 사랑받으며 가게를 오픈한 지 5년 만에 수백명을 거느린 공장을 설립하게 된다. 1859년 그는 아들 조르주 뷔통에게 사업을 물려주게 되는데 당시 이미테이션이 늘어남에 따라 그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1888년 ‘다미에 패턴’(오늘날 시그니처 패턴)을 선보이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고가였던 루이 뷔통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모조품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조르주 뷔통은 아버지의 이름 ‘루이 뷔통’을 딴 로고를 탄생시킨다. 1896년 탄생한 이 로고가 루이뷔통의 상징 ‘모노그램’이다. 당시 제품에 브랜드의 로고를 프린팅한 것은 세계 최초였다.

이 후 전쟁이 끝난 뒤 대중화 시대가 열리게 되며 가볍게 되는 여행 가방을 원하게 되는데 조르주의 아들 가스통은 딱딱한 모노그램 원단을 부드럽게 만드는데 성공해 1932년 캔버스로 된 첫 번째 소프트 백인 ‘노에’를 선보인다. 이후로도 가스통의 아들 클로이 루이 뷔통이 계속해서 소재를 개발하며 1959년 면과 같이 부드러운 소재로 된 모노그램을 완성한다. 소재가 부드러워지자 디자인 역시 다양해졌는데, 1966년 ‘파빌론 백’은 아시아로까지 뻗어나갔다. 특히 일본에서 루이 뷔통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는데 가격이 프랑스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아 일본인들이 루이뷔통을 구입하기 위해 프랑스로 가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 결과 파리 본점은 프랑스인들이 아닌 일본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지만 1980년대를 거치며 가업형 경영 형식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이끌어갈 인물이 없었던 루이 뷔통은 질은 좋지만 촌스러운 브랜드로 인식되며 경영이 힘들어지게 되었다. 이 때 루이 뷔통을 사들인 이가 있었으니, 그는 프랑스 국립 행정학을 졸업한 엘리트 ‘베르나르 아르도’였다. 당시 미국에서 부동산 중계업을 하며 많은 재산을 모은 그는 유럽의 명품 브랜드들이 파산 직전이 되어 힘이 없어질 때마다 차례대로 사들였는데 모엣 샹동과 헤네시를 시작으로 크리스찬 디올을 사더니 루이뷔통 마저 인수해 버리고 만다. 프랑스 출신이지만 미국식 경영방식을 공부한 그는 브랜드들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그 틈을 파고들어 사업을 인수했고, 프랑스인들은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러한 비난도 곧 사라졌는데, 이유인 즉 망해가던 브랜드들이 전문적인 비즈니스 체계아래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해 나갔고 루이 뷔통 역시 전 세계 150여개의 단독 매장과 400여개의 백화점 매장을 소유할 정도로 엄청난 가치의 브랜드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크 제이콥스를 루이 뷔통 수석디자인으로 앉히게 되며 루이 뷔통은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소가죽위에 에나멜을 코팅한 ‘베르니’ 라인과 모노그램에 영문을 휘갈겨 쓴 ‘그래피티’라인 그리고 일본인 아티스트 다카시 무라카미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모노그램 멀티 컬러를 론칭하며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프리앤 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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