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메리 퀸트

  • 입력 2012-01-21  |  수정 2012-03-31 07:21  |  발행일 2012-01-21 제12면
[장현미의 브랜드 스토리]메리 퀸트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입은 1960년대 여가수 윤복희. 당시 대중의 비난도 많았지만 그녀는 본인의 결혼식에서도 미니스커트를 입은 당당한 여인이었다. 문화적 충격으로 큰 이슈화가 되었던 미니스커트를 처음으로 퍼뜨린 이는 60년대 모즈룩을 대표하는 영국 패션계의 자랑이자 미니스커트의 어머니 메리 퀸트다. 그녀는 영국 패션계에 미니스커트 열풍을 일으키며 여성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고 1960년대 런던을 세계패션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는 영국 런던 출생으로 골드 스미스 예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다. 졸업 후 메리 퀸트는 부유층 사람이 오는 고급 부티크에서 모자를 만들며 하루 종일 바느질해서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1955년 11월 친구인 알렉산더, 아치 맥네어와 함께 영국 첼시의 킹스로드에 ‘바자(Bazzar)’를 오픈했다. 당시 킹스 로드는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 앞 거리처럼 예술과 패션을 좋아하는 멋쟁이들로 가득한 거리였다.

당시 바자는 옷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숍이 아니라 도매상에서 옷을 사다 파는 식의 보세의류 매장이라 할 수 있었다. 메리 퀸트는 도매업자들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닌 대중에게 판매되는 무난한 옷을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곧 드레스 메이커 몇 명을 고용했고 그녀가 낮에 옷을 팔 동안 드레스 메이커들은 그녀의 아파트에서 그녀가 디자인한 옷을 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퇴근한 밤이면 혼자 옷을 마무리지었고, 그렇게 완성된 옷은 옷을 만들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그 다음날 모두 팔아야 했다.

195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패션이란 오트 쿠튀르를 점령한 부유층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메리 퀸트는 영국 젊은이가 좋아할 만한 옷, 자신도 있고 싶은 옷, 밝고 재밌는 옷을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으로 팔기로 했다. 특히 무릎 6∼7㎝ 위로 올라간 짧은 스커트는 당시 사람들에겐 파격적이었다. 영국인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으며 그녀의 디자인을 조롱했다. 하지만 10대는 달랐다. 메리 퀸트의 디자인에 열광했으며 이는 곧 매출로 이어졌다. 어느새 거리는 그녀의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이로 가득했으며 곧 메리 퀸트 스타일은 첼시룩, 혹은 런던룩으로 불리며 영국 10대 패션을 대표하는 스타일이 되었다.

사실상 미니스커트를 발명한 것은 메리 퀸트가 아니었다. 세상에 처음 내보인 건 앙드레 쿠레주와 존 베이츠였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미니스커트를 대중적으로 유행시킨 사람은 메리 퀸트다. 미니스커트란 명칭 역시 그녀가 좋아하는 자동차 브랜드에서 따온 것이였다.

그녀의 옷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고 넘치는 수요에 합리적인 가격까지 충족시키기 위해 대량생산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바자에서 디자인된 옷들은 ‘메리퀸트’라는 브랜드로 탄생했다. 이 후 메리 퀸트는 코스메틱 라인과 인테리어 라인까지 성공시키며 패션의 영역을 젊은이의 것으로 만들어놓았다. 파리 패션계가 전 세계의 유행을 주도하고 있을 때, 파리 밖에서 독창적인 디자인을 이끌었던 메리 퀸트. 그녀는 이런 공헌을 인정받아 1966년, 엘리자베스2세로부터 대영제국 훈장을 받기도 했다. 낡은 관습을 부정하며 자유분방한 그녀의 디자인은 뱅 헤어스타일, 짙은 스모키 눈 화장과 결합되어 전형적인 첼시룩을 창조했고, 여전히 전 세계에 걸쳐 메리퀸트 스타일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 <프리앤 메지스 수석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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